거지 중의 은사(隱士) (1)

  • 등록 2024.08.14 14: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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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24) 아사(雅士, 바르고 깨끗한 선비)와 거지 (5)

진자명(陳子明), 옛 부하에게 사기 치며 구걸하다

 

역사에는 벼슬하다가 거지로 전락한 후 사람들에게 어떤 동정도 받지 못하는 사인이 있다. 진자명(陳子明)이 바로 그이다.

 

진감(陳鑑), 자는 자명(子明), 광동(廣東) 사람으로 명(明)나라 말기의 공사(貢士)다. 청(淸)나라 순치(順治) 때에 화정〔華亭, 현 상해 송강(宋江)현〕 현령에 발탁되었다. 진자명은 사람됨이 험악하고 외지어 타인을 비방하기를 즐겼다. 나중에 직권을 이용해 양식을 횡령하니 파직되어 감옥에 갇혔다.

 

만기 출소 후 생계가 막막해지자, 아무 때나 옛 부하였던 관리들을 찾아가 먹을 것을 요구하였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은밀하게 숨겨진 일이나 단점을 캐내기도 했다. 심지어 관부에 고발까지 하니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 입에 풀칠하지도 못하게 되자, 마누라와 함께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80세까지 살다가 결국 얻어먹지 못하여 굶어 죽었다.

 

평상시에도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거지를 대하는데 진자명 같은 나쁜 자가 궁핍해져서 거지꼴하고 구걸하며 돌아다니니 가련하게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낡은 버릇을 고치지도 않고 계속 사기치고 협박하며 재물을 가로채다가 결국 굶어 죽었으니, 어찌 인과응보라 하지 않겠는가.

 

거지 중의 은사(隱士)

 

산과 들, 강호에 은거해 관직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은사(隱士)라고 한다. 은사는 특수한 사회현상의 하나다. 예부터 지금까지 존재한다. 상황이 다를 뿐이다.

 

『논어·계씨』에 “숨어 지내면서 그 뜻을 추구한다”라는 말이 있다. 은사란 뜻이 없는 것도 아니요 세상사와 절연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각자 지향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각자 처지와 고락이 다를 뿐이다.

 

『순자·정명』에 “천하에는 은사가 없고, 버려진 착한 이가 없다”라고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사기·화식열전』에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가 높은 명성을 얻으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인가?”라는 말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은거하면서 이름을 떨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부지기수다.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이 유명한 은사가 아니던가. 삼국시대의 제갈공명(諸葛孔明)도 산야에 은거했던 은사였다. 이름이 떨치자 나중에 유현덕(劉玄德)이 삼고초려 해서 산문을 나서게 하고 마침내 평생의 큰 뜻을 펼쳐 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는가.

 

은사란 ‘숨다’〔은(隱)〕에만 뜻을 두었다고 할 수 없다. ‘숨다’(隱)의 뜻은 ‘나타내다’〔현(顯)〕에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뜻을 펼치고 꿈을 이루는 것이다.

 

오중(吳中) 동정산(洞庭山)의 거지 은사

 

은사(隱士)의 길은 여러 가지다. 불문에 은거하기도 하고 도교에 은거하기도 한다. 초야에 묻히기도 하고 고향에 내려가기도 한다. 상업계 여러 분야에서 장사하며 은거하기도 하고 몰래 거지와 같이 행동하면서 은거하기도 한다.

 

거지와 같은 부류에 은거한 은사가 가장 청빈하다고 할 수 있다. 상황도 복잡하기 그지없다. 어떤 때는 숨었다가 어떤 때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해, 일정치 않다.

 

예를 들어 청나라 때에 오중(吳中) 동정산(洞庭山)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거지가 살았다. 미친 듯한 모습으로 낮에는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밤에는 사당에 숙박하였던 숨은 군자다. 일찍이 왕요봉(汪堯峰)이 그가 지은 절구 시가 몇 수를 기록하였다. 예를 들어 이렇다.

 

“건곤이 크다는 걸 믿지 않고 초연히 세상에서 무리를 짓지 않네. 삼협의 물을 입으로 토해내고 만방의 구름을 발로 밟네.”

 

“형태가 있는 것은 모두 가짜인데 형체가 없는 것이 어찌 진짜이겠는가? 무생지(無生地)를 깨달으니 매화가 이웃에 가득하네.”

 

“등불 휘황하니 이 밤 경축하고 밤 깊으니 사내와 계집이 서로 부르지 않네. 얇게 만든 낡은 주렴 위의 하룻밤의 꿈인데 명조가 현 왕조라는 게 무슨 상관이랴!”

 

“일 장으로 구름 뚫고 위쪽에 이르니, 호수와 푸른 산 모두 망망하다. 건곤은 내가 능히 질 수 있나니, 밝은 달 맑은 바람 아래가 너무 바쁘다.”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다. 아무 근심 걱정 없다. 여유롭고 기쁘다. 행각승으로 다니다가 밤이 되면 사당에 머문다. 당연히 푸대접이다. 쉽고 통속적인 시어 중에 강호에 은거하는 거지의 마음을 간간히 표출하고 있다.

 

“건곤은 내가 능히 질 수 있다.”

 

은사 거지, 구걸한 돈으로 책을 사다

 

청나라 때 일이다. 어느 날, 복주(福州) 서시(西市)에 거지 한 명이 나타났다. 키는 작고 갸름한 얼굴에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베로 만든, 울퉁불퉁한 자루 하나를 들고 있었다. 비틀비틀 걸으면서 때때로 시구를 읊조렸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뒤쫓아 갔다. 빈 터에 다다르자 그 거지가 자루를 땅 위에 내려놓고는 안에서 종이를 꺼내 넓게 깔았다.

 

위에는 “사해(四海)에 쓸모없는 사람은 괴롭다”라는 해서로 된, 돈과 같은 크기의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래에는 절강(浙江)에서 복건(福建)으로 친지를 찾아 나섰는데 만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미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니 여러분이 돈주머니 끈을 풀어 도와주십사 등의 작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둘러싸 구경하던 사람들은 가련하다 여겨 몇 십 매의 동전을 던져주었다.

 

거지는 많든 적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천히 자루에서 책을 꺼내 큰소리로 낭독하였다. 맑고 시원시원한 목소리였다. 읽는 책 내용에는 여러 은어가 포함돼 있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거지는 몸을 굽혀 땅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서 돈주머니에 넣고서는 늠름한 모습으로 서점으로 들어섰다. 구걸한 돈으로 책을 사서는 허리춤에 메고 어정어정 걸어 나갔다.

 

이상하다 여긴 사람이 거지에게 물었다.

 

“당신, 어찌 남는 돈이 있어 책을 샀소?”

 

생각지도 못하게 거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이 홍곡(鴻鵠)도 아니면서 어찌 나의 뜻을 안다고 하겠소!”

 

말을 마친 후 소매를 툭툭 털고는 떠나갔다. 그곳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구걸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녔던, 은거하면서 큰 뜻을 가슴에 품은, 은사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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