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는 ‘남에게 빌어먹는 사람’이다. 한자어 개걸(丐乞), 걸인(乞人), 걸개(乞丐), 유개(流丐), 유걸(流乞), 화자(花子, 化子)가 같은 말이다. ‘거지’의 옛말인 ‘것 ㅸㅏ Δㅣ’는 15세기 문헌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거지’는 한자인 ‘걸(乞)’과 ‘어치’가 결합한 말로 ‘거러치’, ‘거러지’, ‘거어지’로 변했다1)고 해석하기도 한다.
‘빌어먹다’는 ‘돈이나 곡식, 물건 따위를 거저 달라고 빌다’ 뜻이다. 같은 말은 ‘구걸(求乞)하다’, ‘걸식(乞食)하다’, ‘동냥하다’이다.
‘동냥’은 ‘동령(動鈴)’이라는 불교용어에서 왔다. 동령은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강하게 일으키기 위해 흔드는 도구다. 여러 불교의식은 물론 스님이 걸식 수행의 한 방편으로 탁발하는 과정에서도 흔들었다. 이 동령이라는 말에 ‘거지 등이 구걸하는 행위, 또는 그렇게 해서 얻은 물건’이라는 속된 의미가 결부되었다. ‘동녕’을 거쳐 ‘동냥’이 됐다는 해석이다.
빌어먹는 사람의 상황이나 방법은 여러 가지가 뒤엉키어 복잡하다. 임시방편으로 시장 거리나 가게, 골목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기적으로 걸식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거지 신분으로 구걸은 하지 않고 여러 범죄에 가담한 사람도 있다.
따라서 거지의 역사를 고찰하려면 먼저 무엇이 거지인가? 거지의 종류는 어떻게 되는가? 거지가 생기게 된 사회와 문화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1. 어룡혼잡의 신비스런 세계
한자 ‘걸개(乞丐)’ 명칭
한자어 걸개(乞丐)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걸개’라는 호칭과 그 본래 함의를 봐야 한다. 한자 ‘걸(乞)’의 뜻은 ‘희구(希求)하다, 기구(祈求)하다, 구하다, 빌다’ 이다. 동시에 반대말로 쓰여 ‘주다’ 뜻으로도 쓴다. 상반된 뜻이 한 글자 속에 있다.
‘개(丐)’는 ‘匄’로도 쓴다. 갑골문에서는 대부분 제사(祭祀) 용어로 사용하였다. 신령에게 구걸(애걸)하다 뜻이다.
예를 들어, “崇雨,匄於河(숭우,개어하)”가 그것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재앙이 되니 하신(河神)에게 영험을 구한다는 말이다. 본의와 같이 ‘주다’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비한 재물이 헤아릴 수 없어 백성에게는 하나도 줄 수 없었다.”(『위서(魏書)·식화지(食貨志)』)라고 하였다. 이 두 글자를 합하여 ‘걸개(乞丐)’가 됐지만 여전히 서로 모순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재미있는 모순된 자의(字意) 현상도 이치에 맞는다고 하겠다. 기구(祈求)하고 비는 사람의 개괄적인 목적은 주는 것에 있다. 줄 수 있어야 기구하고 비는 것을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걸개’에 타인에게 주기를 바라는 뜻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토취(討取)’ 뜻도 있다. ‘독촉하여 받다, 받아 내다, 요구하다’ 뜻이다.
“동완(東莞)의 장봉세(臧奉世)는 나이 스물이 넘어서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를 읽고 싶었는데 남에게 빌린 책을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이에 매형 유완(劉緩)에게 남에게 받은 명함이나 편지의 빈자리가 있는 종이를 달라고 요구〔걸개(乞匄)〕해 손으로 책 한 권을 베꼈다.”(『안씨가훈(顔氏家訓)·면학(勉學)』)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걸개(乞匄)’은 바로 ‘토취(討取)’ 뜻이지만 장봉세는 결코 남에게 빌어서 먹는 거지는 아니었다.
오늘날에 통용되는 거지를 가리키는 말인 ‘걸개(乞丐)’는 음식, 재물을 달라고 요구해 살아가는 사람이고 일종의 자발적인 사회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걸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북송시기 이방(李昉) 등이 편집한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이미 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진 동네와 궁벽한 마을에 마의(馬醫, 수의사), 술집 주인, 거지, 머슴, 그리고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아이들은 모두 ‘개(앞잡이)’이다”라고 하였다.
또 “초법(鈔法, 지폐를 발행해 유통시키는 법)이 행해지자 아침에는 부상(富商)이었는데 저녁에는 거지가 되었다”2)라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지폐를 금은, 주전을 대신해 유통되기 시작한 후 아침까지는 부유한 상인이었는데 저녁이 되면 구걸해서 살아야하는 거지 신세가 되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생겨났다는 말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 옛날 문헌을 보면 ‘거지’는 ‘거00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중국어 ‘걸자(乞: 빌 걸, 子: 아들 자)의 발음을 그렇게 써 놓은 것이다. ‘걸’에 접미사인 ‘자(子)’가 연결된 단어이다. ‘자(子)’는 중국어의 접미사인데, 우리말에 와서는 두 가지 음으로 읽혔다. 하나는 ‘자’이고 또 하나는 ‘지’다. ‘판자(板子)’는 ‘판자집’일 때에는 ‘판자’이지만, ‘널판지’일 때에는 ‘판지’로 읽는다. 주전자, 감자, 사자, 탁자 등의 ‘자(子)’는 ‘자’로 읽지만, 가지(식물의 하나), 간장 종지, 꿀단지 등의 ‘자(子)’는 ‘지’로 읽는다. 남자와 여자 생식기의 이름 끝에 ‘-지’가 붙은 것도 모두 이것 때문이다. 따라서 거지는 ‘걸지’에서 유래되었는데 ‘ㄹ’이 탈락하여 거지가 되었다.(안도)
2) 제126권 『왕씨견문(王氏見聞)』 인용 ; 『주자어류(朱子語類)』 제130권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