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라는 이름으로 사기 치거나 도둑질하거나 건달이 되는 등 사회 치안을 해치는 범죄행위를 자행하는 사람이 많았다. 송나라, 원나라 이래로 그 해로움은 극심해 졌다. 화갑이 넘은 늙은 거지 노파가 사기에 골몰하기도 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항주(杭州)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당시 항주에는 야간에 승객을 태워 강을 건네주는 선박이 있었다. 한밤중에 100리를 가는데 남녀가 뒤섞여 건넜다. 남녀 승객이 머무는 칸 사이에는 판자 하나가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인화(仁和)현(縣)1)에 풍류를 즐긴다고 자처하는 장(張) 씨 성을 가진 경망스러운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소년이 배를 타고 부양(富陽)으로 가고 있었다. 옆 칸에서 자신에게 웃는 듯 마는 듯 주시하는 여인이 있었다.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니면 뭐겠는가.
밤 12시 경이 되어 승객 대부분이 잠을 청할 때였다. 장 씨 소년은 판자 너머에서 자신의 하체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꼈다. 소년은 기뻐 아예 양물을 꺼내 어루만질 수 있게 하였다. 손을 뻗어 상대를 만졌다. 여인이 틀림없지 않은가. 몸을 일으켜 상대를 덮쳤다. 아무 말도 건네지 않은 채 운우의 정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닭이 울 때가 되자 장 씨 소년이 몸을 일으켜 자신이 있던 칸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런데 상대방 여인이 단단히 껴안은 채 놔주지 않았다. 소년은 여인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여기고는 더 정열적으로 사랑을 나눴다.
날이 서서히 밝아올 때, 소년은 자신과 함께 있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백발이었다. 대경실색하자 여인이 말했다.
“나는 본래 길거리에서 빌어먹은 거지 노파요. 올해 60살이 넘었소. 남편도 자식도 친척도 없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한탄했는데 지난 밤 지나칠 정도로 그대에게 흠뻑 사랑을 받았소. 속담에 하룻밤 부부라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였소. 하룻밤이지만 깊고도 깊은 인연을 맺은 셈이오. 지금 당신은 내 남편이오. 어떤 예물도 필요 없소. 그저 당신만 따를 거요. 죽을 먹으라면 죽을 먹고 밥을 먹으라면 밥을 먹을 것이오. 어떻소?”
장 씨 소년은 놀라고 난처해져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여러 승객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 잠에서 깨서는 한바탕 웃어 제쳤다.
나중에 소년에게 2백 량을 주고 사례하게 하자 거지 노파는 그제야 손을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거지 노파가 밉살스럽기는 하지만 실로 가련하기 그지없다. 장 씨 소년은 자업자득일지니. 그래도 그 황당한 행동거지에는 동정이 간다.
시골 어린이를 유괴해 동냥질시키고 따르지 않으면 죽였다
청나라 도광(道光) 17년(1837) 9월, 화중〔禾中, 가흥(嘉興)〕 삼탑사(三塔寺) 남쪽에 시골 아낙네 왕(王) 씨가 살고 있었다. 시댁과 친정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때가 첫 곡식을 수확한 때라 보보(餑餑, 중국식 간식)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친정집에 갈 채비를 하였다. 남편은 이튿날 시내로 나가 장사하여야 했기 때문에 빨리 돌아오라고 부탁하니, 부인은 그러마라고 답하고는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갔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도 무슨 까닭인지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남편이 처갓집으로 가서 장인에게 상황을 물으니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 없자 어쩔 수 없이 귀가하였다.
그날, 집을 나선 후 저수지를 따라 걷다가 만수산(萬壽山) 북쪽 1리 쯤에 다다랐을 때 건너편 기슭에 정박해둔, 얼룩조리대로 지붕을 엮은 배인 약포선(箬包船)이 보였다. 급히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배를 불러 세운 후 약포선까지 태워달라고 하였다.
가까이 가자 어린 거지 둘이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투고 있었다. 어린 거지가 손에 보보를 들고는 다른 거지에게 욕을 해댔다.
“어제 사부가 말했잖아. 네가 비럭질을 해오지 못했기 때문에 네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고 했잖아. 이 보보는 내게 상으로 준 거란 말이야. 네가 왜 뺏어!”
농부가 가까이 다가가서 광주리에 닮긴 보보를 보았다. 자기 아내가 만든 보보처럼 보였다. 어린 거지에게 물었다.
“네 사부는 이 보보를 어디에서 가지고 왔니?”
어린 거지가 답했다.
“어제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 사부에게 저수지를 건너게 해달라고 불렀어요. 사부는 배를 몰고 기슭으로 건너가 그들을 태워주고 돈을 벌었어요. 가지고 있던 보보 광주리로 대신 갚은 거예요. 지금 이거 몇 개 밖에 남지 않았단 말이에요.”
말을 듣자마자 농부는 곧바로 장인에게 달려가 알렸다. 사람 수 십 명을 모은 후 각자 몽둥이를 들고 배에 올라가 나이 든 거지 두 명을 붙잡았다.
배를 수색하였다. 뒤쪽 선실에 항아리 여러 개가 놓여있었다. 열어보니 항아리에 잘려진 시체가 가득 들어있었다. 팔다리가 잘려나갔거나 몸통이 잘린 시체들이었다. 오래된 시체도 있었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듯 보이는 시체도 있었다.
작은 항아리 하나는 진흙으로 입구가 봉해져 있었다. 비틀어 열어보니 농부 아내와 아들의 머리가 담겨있었다. 아직 마르지 않아 선혈이 낭자하였다.
거지들을 묶어서 관부로 압송하였다. 읍령(邑令)이 심리하며 추궁하자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그 나이 든 거지 둘은 배를 타고 강호를 유람하면서 전문적으로 시골 어린이를 유괴해 동냥질시키면서 살고 있었다. 유괴한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렸다고 하였다. 흉악하고 잔인함에 모두 치를 떨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