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거지'를 시작하며

  • 등록 2024.02.27 10: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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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1)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정말 쉽다.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만 하면 된다. 어떤 사람도 나보다 높지도 낮지도 않다는 생각만 하면 된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는 사람답게 사는 게 그리 쉽지 않다. 왜 그럴까.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도 전 까마득히 오랜 세월 저편에서부터, 나만 살아남아야 하고 나만 더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유전자에 박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정과 학교, 나아가 사회에서 끊임없이 무한 경쟁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은 아닐까. 거기에 인격, 상식, 이성, 합리, 교양, 예의, 정서 등, 가장 인간적인 인간성보다는, 생존과 그에 대한 맹목만을 키워왔기 때문은 아닐까.

 

출세와 소유에 대한 집착과 강박에서, 잠시만, 아주 잠깐만이라도 벗어나본다면, 세상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존, 이 단어를 떠올리면 ‘거지’〔걸개(乞丐)〕가 어른거린다. 거지를 알면 사회의 일면을 알 수 있다.

 

 

부자 동네에는 구걸하는 거지가 없다. 동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자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동정심이 더 많다. 가난한 사람이 거지에게 더 동정심이 많다는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게 납치당한 후 온갖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에는 거지가 된 최기동 할아버지는 자신도 걸인이면서 무려 40년을 자신보다 못한 걸인을 보살폈다. 거지를 위해 밥을 얻으러 다녔고 노상에 쓰러져 죽어 가는 사람을 데려다 돌봐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항상 입버릇처럼,

 

“아직도 빌어먹을 힘이 내게 있으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거지는 사회 집단의 하나다. 여러 가지가 마구 뒤섞여 있는 어룡혼잡(魚龍混雜)의 구성체이다. 복잡하고 기이하며 다양하다. 대단위 사회로 보면 여러 가지가 뒤엉키어 복잡한 단원 단계다. 소단위 사회로 보면 불결함, 추악함, 죄악이 교차하는 미만성(瀰漫性)1) 단체다.

 

이 난잡한 복합체는 창기(娼妓), 노름꾼과 같이 사회의 악성 종양으로 간주되어 왔다. 거지는 창기, 노름꾼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거나 인과관계인 경우도 있고 전체적, 포괄적 관계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중국 거지에게는 ‘개방(丐幇)’과 같은 조직이 있었다. 청대 말기에 팔기의 자제도 ‘방주(幇主)’, 거지 두목이 되기도 하였다. 통속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사조영웅전(射鵰英雄傳)』은 ‘홍칠공(洪七公)’이 방주인 거지 집단과 그 집단에서 파생된 여러 문파를 묘사하였다.

 

“거지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처럼 장구하다.”

 

“원시 공동체가 해체된 이후 거지는 줄곧 존재하였다. 거지는 역사의 변천에 따라 자신의 피부색과 생존 방식을 조용히 바꾸었다.”

 

중국의 고대와 근대 역사에 천태만상의 거지 부류와 거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 습속, 평가들이 존재하였다. 기괴하고 황당하며 추악하기도 한, 정의롭기도 하였고 풍자적이기도 한 거지는 그야말로 역사문화의 축소판이다.

 

거지역사의 서질(書帙), 연이어 이루어진 두루마리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 색다른 취향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사회 풍속사이다.

 

중국 거지의 역사는 장중함과 해학적인 정취 사이에서,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제, 중국 거지의 역사2)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미만(瀰漫)이란 연기나 안개가 자욱한 것, 물이 가득 찬 것을 뜻하는 한자어이다. 미만성(瀰漫性, diffuse)이라 함은 의학용어로 “어떤 병이 넓은 부위에 걸쳐 퍼져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2) 본 글은 『中国乞丐』(曲彥斌,遼寧古籍出版社, 1994)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다음은 현재 찾을 수 있는 중국의 거지와 관련한 서적이다 : 『中国的乞丐群落』(劉漢太, 江蘇文藝出版社, 1987); 『中国乞丐大揭密』(程剛, 吉林摄影出版社, 1999); 『中国古代乞丐風俗』(王光照, 陝西人民出版社, 2004); 『奇丐:古今故事大搜奇』(殷偉,中國文史出版社, 2006); 『叫街者:中國乞丐文化史』(盧漢超, 社會科學文憲出版社, 2012); 『時空上下:中國的乞丐次文化』(盧漢超, 稻鄉出版社, 2012); 『中国古代乞丐』(王俊, 中國商業出版社, 2015); 『中国古代的乞丐』(岑大利,‎高永建,商务印書館, 2021)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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