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밑바닥 거지의 의협(義俠) ... 인류 일원으로 생존 추구

  • 등록 2025.07.09 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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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56) 거지와 강호의 여러 부류 ②

의로운 거지가 사람들에게 재난을 방비하라고 경고하다

 

만약 ‘옜다! 하고 던져주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라는 말이 사람인 거지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가치를 표출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거지의 기본 인격 관념과 의협(義俠)의 관념이 동시에 내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밑바닥에 처해 있지만 결국은 인류의 일원으로 자신의 생존을 추구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타인을 도와주려 한다. ‘선을 쌓고 덕을 행하는’ 것이다.

 

원나라 인종 연우(延祐) 첫해에, 몸에 검은 옷을 걸친 거지가 큰 바가지를 한 손에 들고 수군 방책과 장경(張涇) 부두 사이에 있는 술집에서 구걸하며 돌아다녔다. 술을 마실 때마다 외치고 다녔다.

 

“소(牛)가 온다.” 

 

그리고 수군 방책과 인가의 벽에 ‘불(火)’ 자를 쓰고 다녔다. 사람들은 역겹다는 듯이 욕을 해대며 글자의 흔적을 지웠다. 나중에는 거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해 겨울, 해적 우대안(牛大眼)이 유가항(劉家港)에서 태창(太倉)까지 약탈을 자행하였다. 수군 방책과 장경 부두는 불바다가 되었다. 그때서야 사람들이 당시 그 거지가 재앙을 암시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평민에서 말단인 보잘 것 없는 거지가, 일이 터지기 전에 암시라는 방법으로 도적과 화재를 예방하라는 경고를 던졌다는 것은 일종의 ‘의협의 담력’이 아닌가? 그 거지는 그런 특별한 방법으로 현지인들이 보시해준 은혜를 보답하였다.

 

거지 장이(張二), 외구를 물리치는 데에 공을 세웠으나 공신으로 자처하지 않았다

 

적이 들여 닥쳐 국가가 위급한 지경에 처했을 때 거지들이 가지고 있던 의협의 기개는 왕왕 민족 결기로 전화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명나라 때에 어디 출신인지는 분명하지 않은 장이(張二)라는 거지가 있었다. 그 거지는 훌륭한 잠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1개여 월 동안 별다른 음식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다.

 

“힘차고 민첩하게 사지를 넘나들었다.”

 

가경(嘉慶) 33년(1554)에 왜구가 침탈하자 장이는 태수의 부하로 들어가 항전에 참가하였다. 태수가 그에게 적진으로 들어가 정탐하고 오라고 명할 때마다 장이는 예리한 무기를 들고 헤엄쳐 적진으로 들어갔다. 적선을 만나면 배 바닥에 구멍을 내 침몰시키기도 했다. 수시로 적의 심장부에 들어가 상황을 정탐하면서 왜구의 수급을 베어다 헌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태수는 은패를 주면서 장이에게 위로금을 전달하려 했으나 받지 않았다. 술로 위로하니 받겠다고 하였다.

 

왜구의 난이 평정되고 난 후 논공행상하려 할 때, 장이는 백호의 직책을 계승하여야 했다. 군현에서 예복까지 하사하려 했다. 그러나 모두 거절하면서 거지로 살기를 원했다. 밤에는 사찰에서 잠을 자면서도 낮에는 미소 지으면서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런 그에게 후인이 감탄하였다.

 

“만 번 죽을 위험에 드나들면서 큰 어려움을 바로잡고 큰일을 이루었으나, 길게 휘파람 불며 부귀영화를 거절하였다. 그래, 동해의 빈한한 사람으로 살았으니 노련(魯連)선생이지 않는가!”

 

이처럼 공로에 따른 이익과 관록을 마다하고 외부 침탈을 당한 국가를 위하여 죽음조차 피하지 않는 기질은, 거지 신분인 장이가 의협의 인격을 승화시켰다고 하겠다. 적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으면서도 여전히 구걸로 살아가고 다른 부귀를 추구하지 않았으니, 의협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비교해 보자. 현귀 출신이면서 이익만을 쫓거나 몸을 팔아 부귀영화를 추구하면서 부끄러움도 없이 적에게 투항한 변절자가 예나 지금이나 많지 않던가. ‘천민’인 장이라는 거지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라 어찌 하지 않겠는가.

 

거지의 지위가 비천해 구류(九流) 중에서 말단에 위치해 있었던 까닭에, 그중에 ‘의협’의 일들이 많았지만 문자 기록으로 남긴 것이 극히 적고, 사서나 전기 같은 전당에 들어가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진 ‘구비(口碑)’ 문학 속에는 인구에 회자하는 문장이 전송되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ac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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