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한 사람이 높은 벼슬에 오르면 그 딸린 식구도 권세를 얻는다〔계견승천(鷄犬升天)〕라고 하였다. 외척으로 얻은 파벌관계, 종족 관념은 중국문화 전통 속에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고 깊이 뿌리 박혀 있다. 그런데 신사들은 그 친척과 친우, 벗이 거지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가문의 명예를 잃고 조상을 욕되게 하는 데에는 방법이 없다.
소자첨〔蘇子瞻, 소식(蘇軾)〕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천하의 현사를 두루 아끼었다고 전한다. 스스로 “위로는 옥황상제를 곁에서 도울 수 있고 아래로는 비전원(悲田院)의 거지도 곁에서 도울 수 있다”라고 자부하였다. 벗이 거지라 할지라도 결국 벗은 벗이다.
상국(相國)의 증손자, 시를 지어 구걸하다
청나라 때에 상국 문공공(文恭公) 왕욱령(王頊齡)의 증손, 즉 왕유문(王幼文) 원외의 손자가 시가지를 돌아다니며 걸식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가 구걸할 때에는 연화락(蓮花落)1)을 부르지 않고 시를 지었다. 점포 사람들 모두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에 늘 그에게 많은 돈을 보시하였다.
그의 부모가 그를 집안에 가둬두기도 하고 묶어두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도망쳐서는 늘 하던 대로 걸식하였다. 밤에는 시내의 돌 위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나중에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본래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현귀한 가문 출신이 기꺼이 걸식을 행하며 즐거워했으니, 가풍을 훼손하고 가문을 욕되게 했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어찌할 것인가, 본인이 좋아서 그러한 것인데.
황실(皇室) 노태야(老太爺), 개방(丐幇)에 가입하다
청나라 광서 중엽에, 수도 남성(南城) 난광(暖廣)에 살던 거지 무리 중에 황조 종실 출신 노태야가 한 명 있었다. 걸식을 달갑게 여겼다. 때때로 창포, 마괘자를 입은 귀인이 다가와 안부를 전하고 돈을 전달하였다.
노태야는 성격이 좋지 않았다. 아무 때나 타인과 싸움했다. 난광 관원이 사람을 시켜 포박하려하니 노태야가 말했다.
“너희가 나를 묶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러나 나를 놓아주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짐짓 화난 체하며 말했다.
“포박하는 것으로 그칠 줄 아느냐, 곤장을 때릴 것이다.”
당시 곤장을 치려면 포박을 풀어야 했다. 포박을 풀 때 노태야의 바지 위에 황대(黃帶)가 둘려있었다. 선례에 따르면 종인부(宗人府) 이외에 다른 관원은 종실 사람에게 형벌을 내릴 수 없었다.
“가시오. 곤장도 때리지 않을 것이오.”
어쩔 수 없이 풀어주었다. 현귀 종인 중에 거지 무리에 가입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거지가 됐어도 여전히 종친 특권을 향유하고 있었던 모양이고. 일반인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특별한 거지였다.
친척과 친구 중에 거지가 있으면 가문의 명예를 손상시키기도 했으나, 사인 중에도 거지와 벗을 맺은 경우도 있었다. 청나라 때 산동 내양(萊陽)에 풍아한 사인 강학재(姜學在)가 있었다. 자는 실절(實節)이요, 황제 근신의 둘째아들이다.
그는 동정동산(洞庭東山)을 유람하면서 돈이 있는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상양승사(相羊僧寺)에서 기념으로 절구시를 벽에 쓴 거지를 초청한 후 상좌에 앉혀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며 함께 술을 마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거지는 강학재의 손은 잡고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나의 지기입니다.”
강학재는 기뻐서 이후에도 자주 그와 담론하였다. 나누지 않은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만났다. 사찰 스님이 거지를 무시하여 떠나라고 하자, 거지는 스님의 뺨을 한 때 때린 후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강학재가 일부러 그 거지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강학재가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고 비난했으나, 강학재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바로 ‘아래로는 비전원(悲田院)의 거지도 곁에서 도울 수 있다’고 한 소동파와 같은 기개다.
제왕장상, 사인학자 모두 거지 출신도 있고 거지로 전락한 부류도 있다. 그 친척이나 친구도 예외는 없다. 거지와 친구를 맺기도 하고 거지를 상좌에 앉히고 교류하기도 하였다.
송나라 원나라 이래로 거지 집단이 점차 추락하여 본뜻이 변질된 이후에도, 곤궁해져 거지로 전락하거나 자의적으로 거지가 된 현재(賢才) 은사(隱士)가 적지 않았다.
1) 몇 사람이 간단히 분장하고 대나무 판을 치면서 노래하는 통속적인 가곡이다. 보통 노래의 매 단락마다 ‘蓮花落, 落蓮花’라고 메기는 소리를 붙인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