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몸부딪혀 느낀 제주도내의 시민단체는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에 힘겨워 보였다. 시민운동가들의 제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개별로 보면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무소불위의 도정의 권력 앞에서는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얼마 전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5월 16일, 제주시 동지역내 200m 공공하수도거리제한이 삭제된 도시계획조례안이 상정되자마자 가결된 것이다. 무에 이깟일로 놀랬냐고 반문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겠지만, 이제 막 신문 속의 제주를 보기 시작한 나로서는 5월 초에 수면 위로 떠오른 이 중차대한 안(案)이, 5월 중순에 상정되고 가결되어 법(法)이 되어가는 속도가 놀라왔다. 더군다나 ‘7대 자연경관’의 아름다운 제주자연을 난개발로 파괴시킬 수 있는 이 안건을 재석 35명의 의원 중 7분의 1일에 불과한 5명(김용범 김태식 이석문 이선화 한영호)의 의원만이 반대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는 정지용의 시 ‘향수’ 중 일부다. 화자는 어릴 적 살던 고향을 그리워하며 ‘못잊을 곳’이라 반복해서 말한다. 이 시를 읽으며 태어나서 죽 고향인 제주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제주에서 살 예정인 나도 문득 ‘고향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했다.
몇 년 새 제주도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맞고 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으며 거대한 중국자본이 제주의 땅 곳곳을 흔들고 있다. 심히 불도저 같은 변화다. 앞으로 제주도는 자연환경은 물론 ‘인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서적 환경까지 오염될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개발로 인한 생태계파괴, 환경오염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다 미군이 왕래하는 군사기지가 있고, 타국민이 지주가 된 땅은 제주도민의 정신까지 황폐하게 할 것이다.
6월은 환경의 달, 6월 5일은 환경의 날이다. 이 환경의 달, 환경의 날에 환경에 대해 생각만 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힘에 부쳐 환경파괴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시민?환경단체를 탓하기 전에 제주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시민·환경단체의 주인은 몇몇의 시민운동가가 아닌 수많은 사람, ‘시민들’이 되어야 하며, 나아가 제주도의 주인은 도지사가 아닌 ‘도민들’이 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주도민들에게 자연을 보전하고자 하는 뜻이 있다면 그 주체는 소수적 환경단체가 아닌, 다수의 도민이 되어야 한다. 지속되는 불황에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력이 없는 도민들에게 어려운 부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도민이 주인행세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불가항력적인 변화에 우리는 아름다운 제주, 여유롭고 청정했던 고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제주인(濟州人)이 제 주인(主人)이 되어야만 한다. 향수란 시에서처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 마음껏 그리워 할 수 있도록” 우리함께 지켜야 할 흙과 하늘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