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조천읍 선흘1리 버스정류장에서 굽이굽이 좁은 돌담길을 걷다보면 시골 감귤 밭 한가운데에 있는 창고 같은 분위기의 한 재즈카페가 나타난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진 곳, ‘카페세바’를 찬찬히 걸어 들어가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파란색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 같은 부엌이 나타난다.
그 부엌 한 켠에서 만난 재즈 피아니스트 김세운과 바리스타 박소영, 이들이 바로 카페의 주인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김세운씨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바리스타 박소영씨는 서울에서 4년 동안 체인점 카페를 운영했었다.
이런 이들이 과감히 2010년 12월 1일 제주도 ‘동백동산’으로 유명한 선흘리에 재즈전문카페를 열었다.
다음은 재즈피아니스트 김세운과 바리스타 박소영과의 일문일답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이인가.
김 “아니요. 서로 몰랐어요. 저는 7년 전에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선흘’이라는 이 마을이 너무 예뻐서 내려와서 살게 됐어요. 또 제주도는 제가 유학하던 네덜란드와 가장 비슷한 곳이예요. 기후며 풍경이며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박 “저는 작년 7월에 제주도에 놀러 왔다가 우연하게 알게 됐어요. 그때 김세운씨가 선흘리에서 카페 한번 해보지 않을래?라고 꼬드기더라고요. 싫지 않았어요. 그래서 서울생활을 과감히 청산하고 작년 9월에 제주도에 내려오게 되었어요. 특히 선흘은 길을 걸으면서 자기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지금은 당당한 제주도민이예요”
-제주도에 내려올 때, 가족들이 반대하지는 않았나.
김 “아니요, 전 오히려 아버지가 이 카페를 만들 때 도와주셨어요. 뭐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다방 만드시는 줄 알고 걱정 하셨지만 지금은 블로그를 통해서 사진이나 공연 같은거 보시고는 많이 안심하시고 계세요”
박 “걱정하셨어요. 아무래도 가족들은 서울에 있는데 여자 혼자 제주도에 내려와서 산다는게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예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해주세요. 또 일단은 서울에 있었을 때는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라서 빨리해야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제주도는 느릿느릿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 같아서 너무 좋아요”
박씨와 김씨는 ‘카페세바’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cafeseba)를 운영하고 있다.
-재즈전문카페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
김 “아무래도 제가 재즈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7년 동안 제주도에서 살면서 좋은 장소에 좋은 음악 공연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들과 재즈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그래서 우연히 알게 된 박소영씨와 이 카페를 만들게 됐어요”
박 “김세운씨가 재즈피아니스트였던 것도 있지만, 원래 저희 가족들이 재즈라는 음악을 좋아했어요. 저도 재즈를 좋아했고요”
-재즈전문카페라 시끄럽다고 주민들이 반대하지는 않았나.
김 “아니요. 오히려 첫 오픈파티날 주민들이 찾아와 주셔서 제주토속요도 불러주시고 밴드 공연도 해주셨어요. 그리고 이웃에 미술치료사 정은혜씨라는 분이 계신데 그림까지 선물해주셨죠. 또 집을 지을 땐 제주건축가로 유명한 김윤희씨가 멘토가 돼주시기도 했고요”
카페세바는 작년 11월20일 오픈파티를 시작으로, 12월25일엔 '이종혁 재즈밴드 크리스마스 콘서트', 그리고 2011년 마지막 밤인 31일엔 ‘재즈듀오 이부영·송영주 송년 콘서트’를 열었다.
2011년 마지막 밤을 이색적으로 꾸며준 재즈보컬리스트 이부영씨는 2006년 네덜란드 로테르담대에서 음악학 석사를 받고, 현지에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해왔다.
이씨는 2010년 1집 '원데이'(One Day)와 2011년 2집 '레버리'(Reverie)로 큰 호평을 받은 후 MBC 문화콘서트 '난장', EBS '루시드 폴의 세계음악 기행' 등에 참여한 바 있다.
이씨는 카페세바 김씨와 같이 네덜란드에서 유학한 사이이기도 하다.
이날 이씨와 함께 송년공연을 한 송영주씨는 한국 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로 손꼽힌다.
송씨는 뉴욕의 카네기홀을 비롯해 보스톤, 네슈빌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2004년 6월 귀국했다.
4집 음반 '러브 네버 페일스'(Love Never Fails)로 지난해 제7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앨범’상도 받았다.
2010년 9월 5집 '테일 오브 어 시티'(Tale of a city)를 발매한 뒤 현재는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자주 듀오로 참여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 “아무래도 재즈 뮤지션들은 자신의 음악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을 택하게 되요. 근데 송영주씨는 보컬 입장에서 볼 때 노래를 가장 음악적으로 잘 뒤받침 해주는 피아니스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바쁜 스케줄인데도 불구하고 송영주씨가 시간이 될 때면 항상 놓치지 않고 섭외를 하는 편이예요”
송 “전 함께 연주을 하면 즐거운 사람이 이주영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음악적인 즐거움만 가지고는 연주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아요. 그런데 이주영씨와 함께 연주 할 때는 편안하고 즐겁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부영씨의 새로운 앨범에 맞춰서 음악을 연주하게 되면 언제나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게 되요. 항상 도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저에게 주는 거죠”
-제주도 ‘카페세바’를 보고 나중에 나도 제주도에 내려와서 재즈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나.
이 “안 그래도 저희 둘이 제주도로 내려올 때 비행기 안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만약에 한국에서 노후를 보내게 된다면 서울에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요. 정말 카페세바 김세운씨는 탁월한 선택을 한거 같아요. 저도 정말 능력이 된다면 제주도에 내려와서 살고 싶어요”
-새해 계획이나 소망은.
송 “지금 뉴욕에 다시 나갔는데요. 어떻게 보면 한국의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는거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다른 어떤 해보다 수동적인 삶이 아닌 능동적이고 개척해나가는 그런 도전적인 한해를 보내고 싶어요”
이 “저도 송영주씨와 비슷해요. 다만 한국이라는 장소가 다를 뿐이죠.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 5년 정도가 지났는데요. 지금까지는 한국에 적응하느라 능동적인 삶을 살지 못한 거 같아요. 그래서 올해는 새로운 작업장도 구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제주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이 “청정, 이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곳이 제주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 그대로 손이 닿지 않은 곳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죠. 제가 태어난 곳은 부산인데 부산 해운대를 보면 너무 많은 것들이 훼손된 거 같아 가슴이 아파요. 하지만 제주도는 그래도 한국에서 바다가 있고 산이 있는 청정한 곳인거 같아요”
송 “저도 여섯 번 정도 제주도에 왔지만 음악을 들어주는 관중들도 그렇고 너무 좋은 곳 같아요. 나중에 자전거여행도 계획해 보려고요.”
이날 오후 5시부터 6시30분동안 이뤄진 공연은 아리랑 라디오를 통해서 오는 2일 밤 11시10분에 방송될 예정이다.
‘카페세바’는 제주도 조천읍 선흘1리 1093-1번지에 위치해 있다.
영업시간은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낮 12시부터 오후 6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일이다.
이번 달 매주 수요일엔 오후 6시부터 미술치료사 정은혜씨의 ‘요가와 차담’ 강의가 진행된다. 참가비는 차 한잔을 포함한 만원으로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문의=카페세바 070-4213-1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