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1월 하순에서 2월 초가 되면 제주도는 '인구 대이동'으로 북적거린다. 신구간 풍습 때문이다.
"이 시기에 집을 옮기면 손이 없다"는 토속신앙에 따른 전래 풍습이다. 그러나 최근 불어 닥친 금융위기와 경제난, 신구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려는 신세대가 늘어나면서 집을 옮기는 가구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 20대 딩크족 부상에 따른 변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란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일컫는 신조어다. 배우자의 자유와 자립을 존중하며 일하는 삶에서 보람을 찾으려는 자녀 없는 부부를 말한다.
딩크족은 구태여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 신구간에 이사가 집중되다 보니 이사수요 폭증으로 인한 이삿짐센터의 바가지요금과 이사 일정을 맞춰야 한다는 불편함이 눈에 띄는 것이다.
5년째 동거중인 김민우(29)씨는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고 결혼할 의사도 없다"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내 인생에 부담이 크다. 직업과 가족의 균형을 맞출 자신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하기 적당한 위치에 집을 구하면 될 뿐"이라며 "신구간에 상관없이 생활환경에 맞춰 언제든 이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www.jobkorea.co.kr)에서 20~30대 맞벌이 직장인 608명을 대상으로 한 '자녀출산 계획'조사에 따르면 8.6%인 12명중 1명은 자녀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사철이 이들에게 먼나라 얘기인 것이다.
#경제적 한파 살던 집 고수
경기불황으로 경제적 소득수준이 줄어 소득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살던 집을 고수 하는 이들도 있다.
한선우(30)·김보미(27·여) 씨 부부는 "6개월 전 기존 세입자가 이직 문제로 집을 내놓았다. 싸게 임대받은 집을 1년 더 계약해서 살고 있다"며 "남은 기간을 채우고 이사를 할 계획이었지만 아이도 생기고 앞으로의 소득이 어떻게 될지 몰라 살던 집을 다시 계약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구간 이사 가구 추정치(제주도청)에 따르면 2007년 까지만 해도 5800가구에서 2008년 5200, 2009년 3000가구가 이사를 하는 등 계속 줄었고, 올해는 1500가구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주도청 건축지적과 김성수 주무관은 "설 명절이 겹친 데다 올해는 대규모 아파트의 준공이 없어 이사하는 가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 이사 업체·가전제품업체 '냉랭한 분위기'
이사량이 집중될 걸 기대, 대목을 노리고 할인경쟁에 나선 가전제품업체는 이 탓에 울상이다.
신제주 하이마트 강춘석 지점장은 "매장 분위기는 평소와 다름없다"며 "이사철이지만 지난해와 비교해 매출이 절반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다.
신제주 전자랜드 이상현 팀장은 "지난해의 경우 아파트 입주가 많아 매출이 좋은 편이었다"며 "그러나 올해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40% 가까이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39개 전문이사업체와 16개 일반이사업체가 등록된 제주도 화물자동차 운송주선사업협회에 따르면 업체별로 신구간 예약을 받은 건수는 하루 평균 1~2건에 그치고 있다.
이사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하루 6~7건씩 예약을 받았지만 지금은 하루 평균 1~2건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대 사회학과 김진영 교수는 "신구간은 농한기 겨울철 노동력 활용과 한 해를 결산하는 절기 특성을 빌어 집을 옮기거나 고치는 풍습에서 이어져 온 것"이라며 "20~30대 세대변화로 인한 가구구조의 변화와 개인의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언제든 이사를 할 수 있다는 개인의식이 작용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구간=조선조 이래 제주에 이어져 온 '신구세관교승기간'(新舊歲官交承期間)이란 토속신앙에서 유래한다. '신구간'은 약칭이다. 24절기 중 대한(大寒)5일 뒤부터 입춘(立春)3일 전까지 (1월 25일~2월 1일)인 신구간은 지상의 인간사를 다루는 신(神)들이 한해의 임무를 마치고 옥황상제에게 그동안의 활동상을 보고, 새 임무를 받게되는 일종의 임무교대기간이란 제주지역 토속 신앙에서 유래했다. 지상에 귀신이 없으니 이 때 집을 옮기면 액이 따르지 않아 탈이 없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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