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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이야기(10) ... 중공군보다 손실 줄인 미군의 비결은?

 

“추위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동료들. 그들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일. 피가 나오자마자 곧 얼어붙어 버리는 지독한 맹추위. 눈 덮인 벌판에 끝도 없이 널려 있던 중공군의 시체. 차라리 죽어 버리면 이 고통을 잊을까 했던 추위 속에서의 중공군과의 혈투.”

직접 보고 체험한 전투 경험과 수집한 이야기들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한 ‘브레이크 아웃(Breakout)’의 일부다. 저자인 마틴 러스(Martin Russ)는 해병대원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가운데 이 책은 1950년 말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미 해병 제1사단 병력이 5배 이상 되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해 후퇴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진호 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 한다. 1950년 겨울,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를 점령하려 한 미국 해병 제1사단이 장진호 근처의 산 속 곳곳에 숨어있는 중국군 제9병단(7개 사단 병력·12만명 규모)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후퇴에 성공한다.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진행된 이 전투를 당시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미군 역사상 진주만 피습 이후 최악의 패전”이라고 혹평했다.

맥아더 장군은 미 해병 제1사단으로 하여금 장진호 서쪽으로 진격해 미 8군과 합류하도록 했다. 중국과 북한도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었다. 미 해병 제1사단이 장진호에 도착할 무렵 중공군은 장진호 지역에 제9병단 소속 12개 사단을 배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 해병 제1사단을 섬멸(殲滅)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미군을 섬멸하려 했던 중공군의 계획을 틀어지게 만든 것은 바로 ‘날씨’였다.

그 해 겨울은 매우 춥고 빠르게 다가왔다. 11월 10일 북쪽의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기온이 -18℃ 이하로 급강하했다. 11월 15일 하갈우리(下碣隅里·함경남도 장진군 신남면에 위치, 흥남부두까지 연결된 유일한 통로)에서는 기온이 무려 -26℃까지 내려갔다.

 

장진군(長津郡)은 함경남도 서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1000m가 넘는 개마고원의 산악지형이다. 대체로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다. 대륙성 기후로 한서가 매우 심하며 특히 겨울철 날씨는 중강진(中江鎭)과 함께 우리나라 한극을 이루는 곳이다.

그해 예상보다 빨리 맹추위가 이곳을 찾았다. 여기에 중공군의 포위 사실을 모른 채 미 해병 제1사단은 11월 25일 장진호 서쪽 유담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날 서부전선의 미 8군은 중공군 대공세로 청천강 교두보를 상실하고 후퇴한다. 8군과 협공하기로 한 미 해병 제1사단의 작전목표를 상실한 것이다. 맥아더는 제 10군단에게 후퇴를 명령한다. 이틀 후인 27일 밤 -29℃까지 내려가는 강추위 속에 중공군 6만명은 미 해병 제1사단에 대해 총공격을 감행했다. 참혹한 날씨 조건은 미군이나 중공군이나 똑같았다. 하지만 추위에 대한 대책이 없었던 중공군은 혹한으로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었다. 이에 반해 미군은 동상을 방지하는 비책과 난방물품을 보급함으로써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추위로 인한 해병 제1사단의 병력 손실이 7313명이었던 반면에 중공군은 제9병단에서만 5만1000명이나 발생했다.

 

사실 장진호 전투의 성공은 스미스 소장의 철저한 준비와 결단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는 1950년 10월 북진 당시 다른 아군 부대와는 달리 후방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부대를 이동시켰다. 덕분에 중공군 기습으로 큰 타격을 입은 타 부대와는 달리 스미스 소장의 해병 제1사단은 건재했다. 이러한 리더십에 힘입어 미 해병 제1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10배가 넘는 중공군 12만명의 남하를 지연시켰다. 이들은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12월 15일에 흥남에 도착, 남쪽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흥남 철수는 193척의 군함으로 군인 10만명, 민간인 10만명을 남쪽으로 탈출시킨 작전이다.

이처럼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대 전투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의 영웅적인 투혼이 없었다면 동부전선의 전 병력이 궤멸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 해병 1제사단의 이 성공적인 후퇴작전으로 중공군을 저지함으로써 한국군과 유엔군, 피난민 등 20만명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또 서부전선의 함흥 진출은 2주간 지연됐고 중공군 7개 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중공군에게 더 많은 피해를 안겨줬기 때문에 전술적 승리였으며 미 제10군단을 포함한 사상 최대의 인도적 철수작전과 중공군 9병단의 전선 이탈은 분명한 연합군의 전략적 승리였다.

장진호 전투의 특징이라면 추위에 따른 비전투 손실이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중공군에게 강추위는 지옥의 사신이었다. 후방으로부터의 보급을 원시적인 수단에만 의존했던 중공군은 혹한의 산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고립돼 전투력을 상실했다. 압도적 병력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고도 미 해병 제1사단을 격멸하지 못한 이유는 미 해병사단의 영웅적인 전투와 함께 혹한의 날씨였다.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후퇴의 변을 남긴 미 해병 제1사단장 스미스 소장. 그의 유연한 사고(思考)와 날씨를 잘 이용한 리더십이 장진호 전투를 자랑스러운 전투로 남게 했다. 이 전투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몇 가지가 있다. 장진호 동쪽에서 싸웠던 미 제7사단의 장병들은 놀랍게도 동상으로 인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이것은 제7사단 지휘관이 평소부터 장병들에게 추운 날씨를 대비한 훈련을 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는 마른 양말을 자주 갈아 신게 했다. 또 손발을 계속 움직여 혈액 순환이 잘 되게 하는 습관을 길렀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이런 작은 관심과 지휘가 무위의 병력 손실을 막는 가장 큰 힘이 됐다.

제1연대장 풀러(Puller) 대령은 11월 하순, 고토리(古土里·장진강의 상류)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수송수단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는 전투를 위해 탄약을 먼저 보내달라고 할 것인가, 난방시설을 먼저 보내달라고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했다. “살아있기만 하면 총검만으로도 싸울 수 있다. 우선 생존하는 것이 긴요하다.” 풀러 대령은 난방시설을 먼저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당연하게도 제1연대는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후퇴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날씨를 전투에 적극 활용한 리더십이 동상 등의 비전투적 손실을 중공군보다 7분의 1이하로 줄여 철수 작전이 가능했다.

한편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3일)를 소재로 한 영화도 제작 중에 있다. <혹한의 17일>이라는 제목으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를 연출한 에릭 브레빅이 감독을 맡아 장진호 전투를 3D로 담아낼 계획이라고 한다.

앞서 소개된 두 지휘관의 사례는 한랭지 작전의 특징을 잘 이해한 조치였다. 리더들은 전장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해 전투에 활용해야만 한다. 탄약이 소중하다는 고정적인 패러다임에 묶여있어서는 안 된다. 상황에 따른 창의적 패러다임이 전투에서의 승리를 담보하는 것이다.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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