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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룡의 '담담(談談)클리닉'(21) 외부 관점에서 보는 모습이나 상황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다 아시는 철지난 이야깁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고 하나요?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예원이 이 말을 하는 순간 태임은 폭발합니다. 정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예외적 맥락에서 이건 남자들 대화의 “X같냐?”라는 어감이라고 평했다더군요.

 

저는 무엇보다 예원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에 태임이 폭발했다고 봤어요. 핵심을 들켜버렸기 때문에요. 비록 논리적 정리는 안됐지만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는 분명한 자기 생각을 콕 집어 예원이 한 문장으로 말해버린 거라고나 할까요. 태임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은 내용이었지만 분위기나 말하는 타임이 아주 좋지 못했어요.

 

<삼국지연의>에서요. 조조의 ‘계륵(鷄肋)’ 암호를 전해들은 양수가 그 속마음을 한 눈에 알아채고 부하들에게 철군 준비 명령을 내렸다가 처형당하잖아요. 과연 이튿날 조조는 전군 철수명령을 내리죠. 제갈공명은 양수의 처형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남보다 잘 알기는 어렵지. 하지만 남보다 잘 아는 것을 말하지 않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지”

 

...이거야 ‘절필’을 하던가 해야지 원. 글이 중구난방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군요. 정작 제가 말하고자 하는 본론과 그다지 잘 어울리는 에피소드들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절필을 하면 “너 그럴 줄 알았다.”며 통쾌하게 웃을지도 모를 친구K가 얄미워 절필은 못 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직면(Confrontation)에 관한 겁니다. 앞에서 횡설수설한 이야기는 잊어버리세요.

 

직면(confrontation)은 정신치료에서 치료자가 개입하는 기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내담자에 대해 관찰한 어떤 내용을 내담자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만, 좁은 의미로는 내담자가 받아들이기 싫어하거나 회피하는 것, 혹은 극구 최소화하는 것을 내담자에게 선명하게 밝히는 걸 말합니다.

 

내담자의 모습이나 상황을 외부의 관점에서 비춰주는 거지요. 직면은 분위기와 타임이 중요합니다. 분위기와 흐름에 맞는 적확한 타임이 아니면 내담자는 강력하게 부정하거나 심지어 화를 내기도 합니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 일반 상황에서면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만, 정신치료 상황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정신치료 상황에서 직면은 강요되거나 적대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내담자가 직면을 공격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였다면 치료자는 자신의 개입이 적절한 흐름과 시간에서 이루어졌는지, 보다 근본적으론 직면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점검해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 경험을 들어 예시를 말하는 게 좋겠지만 당장 떠오르지 않네요. 정신치료 관련 책(대상관계 이론)에서 든 예시를 들어보죠. 어떤 여성 내담자가 이야기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네. 그건 당신에게 큰 상실이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짤막한 공감적 이야기는 비록 이 환자가 이미 상실을 의식하고 있다 하더라도 외부 관점에서 그 상실을 그녀 앞으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직면입니다. 전혀 적대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지요. 어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이야기를 하는 내담자에게 같이 웃으며 “새로운 성공을 거둬 당신은 자신이 자랑스럽군요.”라고 말하는 것도 외적인 확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직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직면은 내담자 자신을 점검하고 나아가 성찰을 촉진하는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일반적 사회 상황과 마찬가지로 정신치료 상황에서도 모든 직면이 공감적이거나 받아들이기 쉬운 건 아닙니다. 내담자가 가진 양가감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내담자 말의 모순을 지적한다거나 반복되는 방어기제 양상을 보여줄 때, 내담자는 당장 비판적으로 느끼거나 부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골똘하게 그 의미를 탐구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정신치료 상황에서는 이런 직면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요.

 

제 생각엔 사회 일반 상황에서라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예를 들면 친구의 고민이나 푸념을 들어준다.) 섣불리 직면을 통한 개입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직면은 잊어버려도 좋겠어요. 십중팔구 비판적이거나 ‘도끼’라는 말을 듣기가 쉬워요.

 

직면을 시키는 타임, 치료자의 말과 자세 등의 문제겠지만, 정신치료에서도 어설픈 직면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가 있더군요. 정신치료에서 직면이 가능한 이유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치료적 세팅’이 있어서입니다. ‘정신분석 전문가’도 아니고 지금은 정신치료도 하지 않는 제가 이런 내용의 글을 쓴다는 게 조금은 멋쩍습니다만, 제발 솔직히 이야기해 주세요. 도통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을 뿐더러 재미도 더럽게 없나요?

 

이범룡은?
=제주 출생.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의 문을 열었다. 면담이 어떤 사람과의 소통이라면,  글쓰기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그 또한 치유의 힌트가 된다고 믿고 있다. 현재 서귀포시 <밝은정신과>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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