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좌혜경 박사의 해녀 노래와 무속신앙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해녀도 아니었고, 자신이 해녀를 꿈꾸지도 않았는데, 해녀를 위한 연구에 그의 생애를 바쳐 왔단다.
왜 그랬을까?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것은 순전히 그의 순수성 때문인 듯하다. 해녀 노래를 정리하기 위해 몇 개월씩 해녀할망들의 얘기를 듣고, 제주도 전역을 다니면서 해녀들의 생활상을 관찰하고, 그 문화를 집대성하는 일은, 정말 바보 같은 순수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로 하여금 그토록 해녀문화에 빠져들게 만든 그 무엇이 있다면, 국문학을 전공한 그에게 스며드는 해녀들의 노래소리가 아닐까 싶다. 숨비소리로밖에 내지를 수 없는 해녀들의 한, 열 길 물속보다 더 깊은 삶의 애환이 그녀의 심연을 흔들어 놓았음에랴.
해녀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유독 해녀박물관이 있는 구좌와 세화 일대 해녀들의 노래가 더 힘차고 투박하다.
특히 육지로 원정물질을 나가, 낯설고 물 설은 그곳 바다에서 노를 저으면서 목숨을 던져 놓고 잠수하러 가는 마음,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시퍼런 물에 떠 있는 두려움과 고단함, 운명에 대한 체념, 삶에 대한 애환과 아픔, 살아내야만 하는 생활의 무게, 살아서 돌아가야만 하는 고향 등을 노래로 쏟아놓은 삶의 흔적들, 아니 삶의 통곡들을 들으면 그저 가슴이 서늘하게 숙연해진다.
동시에, 노래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얼싸안고, 지켜주는 동료애가 느껴져서, 마치 그 시절의 한 배에 같이 올라 앉아 있는 듯, 그 노를 함께 젓고 싶어진다. 이어싸나, 이어싸나, 이어싸나. 쳐라 쳐라 베겨.
박상미 교수의 ‘문화유산과 공동체, 문화간의 소통’이란 제목의 강의는 우리 제주해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얽힌 얘기와 지식을 듣고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제주해녀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려면, 문화의 지속가능성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과 문화가 시대에 따라 사회와 소통하며 변화되어 가는 것이 건강한 문화로 인정된다는 해석이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김장문화를 ‘김치를 만들고 나누는 개념(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으로 설득해서 문화유산 등재에 성공한 스토리-옛날의 한옥에서 시작된 김장이 아파트 거실에서 만들어지고, 여자들만 일하던 작업에 남편이 팔 걷어붙여 거들고, 고향집 어머니가 담근 김장이 자동차에 실려 도시의 자식들에게 전해지고, 공동체가 김장을 만들어서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사 등이 정작은 해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따른 의미가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제주해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이미 유네스코 본부에 보고서가 올라가 버려서 유감이지만, 제주해녀의 지속 가능성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우리 해녀학교의 이야기가 한 줄이나마 기록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 학교의 역할과 의미가 미래에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니, 우리 학생들이 보다 더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미래 해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리라. 그러고 보니, 우리야 말로 제주해녀의 역사를 이어가는 한 시대의 또 다른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구나 싶다.
다소 폐쇄적인 우리 해녀 삼춘들, 노동의 고난과 아픔이 너무 진하게 우러나는 삶 속에다, 우리가 한 줄기 난류처럼 그 안으로 헤엄쳐 들어가서 여가의 노래와 나눔의 문화를 따뜻하게 더해보기를 꿈꾸어 본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