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서 고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날씨에 대한 민감도는 높아지는 것이 보통이다. 날씨가 농업과 어업, 사냥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고, 주거와 의복의 형태를 전적으로 결정짓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조상들은 현재의 우리보다 날씨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과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날씨에 대한 육감이 발달했다. 물론 이것이 우리 선조들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기상학적 지식을 많이 알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날마다 자기 자신의 몸과 주변의 징후들을 통해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를 토대로 날씨변화와 관련된 기초 지식을 축적해나갔다. 기상학자들의 예측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대인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옛 속담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몸이나 주변의 징후와 날씨의 상관관계를 그들의 축적된 경험을 통해 일반화하여 속담이라는 형식으로 전승했다. 따라서 날씨 관련 속담 속에는 축적된 경험의 과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날씨 관련 속담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봄추위가 장독 깬다. - 봄에도 혹한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
봄비는 쌀 비. - 봄에 비가 넉넉히 오면 쌀농사가 풍년이 된다.
봄비가 잦으면 시어머니 손이 커진다. - 잦은 봄비가 풍년을 불러와 인심이 넉넉해진다.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 가뭄 피해는 농사 피해로 그치지만 장마 피해는 회복이 어렵다.
장마 끝물 참외는 거저 줘도 싫다. - 비가 많이 온 뒤의 과일은 당도가 떨어져 맛이 없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 - 처서가 되면 더위도 끝나고 모기도 사라지니 조금만 더 참아라.
입동이 따뜻하면 겨울도 따뜻하다. - 입동 때 기온으로 겨울 전반 기온을 판단한다.
동짓날이 추워야 풍년. - 동지 무렵에 추워야 병해충이 얼어 죽어 이듬해 풍년이 든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갔다가 얼어 죽는다. - 소한 무렵이 대한 무렵보다 더 추울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날씨 관련 속담들의 신빙성 자체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상학과 무관한 속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오늘날의 과학적 기준과도 합치하고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반드시 도움이 될 만큼 소중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들도 여럿 있다. 다음에서는 몇 가지 날씨 관련 속담들에 담긴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를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산이 울면 눈이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필자는 지난 2010년 연말에 맹추위와 서해안 지역 일대의 기록적인 폭설을 보면서 이 속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속담은 주로 충청과 호남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데, 여기에는 놀라운 과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
우선 ‘산이 운다’는 표현은 강한 바람이 차령산맥이나 소백산맥을 타고 넘을 때 내는 ‘우우웅’하는 소리를 말한다. 겨울에 이처럼 강한 바람이 부는 것은 시베리아 고기압이 크게 발달하여 북서풍이 갑자기 한반도로 밀려들기 때문이다.
이 바람은 서해를 거치면서 습기를 머금게 되고, 높은 산맥에 막힌 바람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면 뒤따라오던 습기 머금은 북서풍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차령산맥이나 소백산맥의 서쪽에 해당하는 서해안 일대 곳곳에 큰 눈을 쏟아 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산이 울면 눈이 내린다”는 속담에 대해 현대의 기상학이 밝혀낸 내용이다. 산이 운 뒤로 대략 5~6시간 뒷면 서해안 일대 곳곳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지난 2010년 연말에도 정확히 그랬다.
“겨울에 남동풍이 불면 먼 길을 삼가라”는 속담도 있다. 이 속담은 겨울에 남동풍이 불면 눈이 많이 올 것이라는 경고의 뜻을 담고 있다.
이 속담은 서해안이 아니라 경상도 해안 일대에 널리 퍼져 있는데, 실제로 겨울에 남동풍이 불면 태평양의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동해안 곳곳에 폭설을 내리게 한다. 2011년 1월 3일 포항 지역에 내린 최대 50센티미터 폭설도 남동풍과 관련이 있었다.
“겨울밤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으면 곧 눈이 온다”는 속담도 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속담이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맑은 뒤에 곧 눈이 온다는 속담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를 장기간 연구한 결과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얘기로 밝혀졌다.
겨울철의 우리나라는 맑은 날씨를 만드는 이동성 고기압과 눈을 내리게 하는 기압골의 영향을 일정한 주기를 두고 번갈아 받게 된다. 이런 고기압과 기압골의 규칙적인 반복을 핵심적으로 표현한 말이 “겨울밤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으면 곧 눈이 온다”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12월 28일에는 서울을 비롯한 중부 이북 지방에 10센티미터 안팎의 예상치 못한 대설이 갑자기 내린 적이 있었다. 이 속담의 가르침을 기상학자들이 좀 더 철저히 연구했더라면 예상할 수도 있었던 눈이 아니었을까?
“꽃샘추위에 설 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도 있다. 새해가 시작되는 설 무렵까지 이어지는 동장군의 기세를 무사히 이겨낸 노인이 꽃샘추위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는 뜻이다. 꽃샘추위가 그만큼 매서울 수도 있으니 노인들은 이 무렵에 건강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의 뜻이 담겨 있는 속담이다.
비슷한 속언으로 “2월에 명사들이 가장 많이 죽는다”는 말도 있다. 1월에는 날씨가 워낙 춥기 때문에 미리 신경 쓰고 대비를 하지만 2월에 접어들면 봄이 오려니 생각하고 추위 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긴 말일 것이다.
대개 옛날 명사들은 고혈압과 같은 심혈관계 환자가 많았는데, 뇌출혈, 심장병과 같은 순환기 계통의 질병은 일교차가 큰 2월에 발병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한다.
추위가 지나고 봄이 되면 “며느리에게는 봄볕을, 딸에게는 가을볕을 쬐게 한다”는 속담이 등장한다. 봄은 미세먼지, 꽃가루, 황사가 많고 습도가 낮으며 일조량이 많아지고 자외선이 강해진다. 피부에는 최악의 계절이 봄이라는 말이다.
예전 시어머니들은 봄볓이 여자들을 밉게 만든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에게는 봄볓을, 딸에게는 가을볕을 쬐게 한다는 속담이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의 날씨 관련 속담에는 날씨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과, 두터운 경험의 축적, 놀라운 혜안과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온케이웨더>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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