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터잡은 이주민이 110여일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의 최대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제주지사 선거는 물론 접전이 예상되는 도의원 선거까지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사돈에 팔촌으로 엮인’ 제주 특유의 '궨당문화'는 퇴조하는 분위기다. "제주는 여당고 야당도 아닌 궨당'이란 말이 과거라면 이번 선거판을 들여다보는 각 캠프로선 '구태'의 방식으론 '표심잡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론조사도 놓치는 '15만의 파워' = 이번 지방선거의 유권자는 52만7210명이다. 4년 전에 치러진 제6회 지방선거 유권자 46만7182명보다 무려 6만28명이 늘어난 수치다. 2016년 4·13 총선 때의 49만7710명과 비교해도 2만9500명이 증가했다.
이같은 유권자 증가는 최근 6~7년간 지속돼온 인구유입에 따른 결과다.
물론 이주민 선거인수가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다. 제주도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지난해 말 기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제주도 인구는 67만8772명이다. 이는 10여년 전인 2006년의 55만 8496명보다 12만276명이 늘어난 수치다. 거꾸로 이 기간 동안의 0~14세 인구는 2만명(추산)이 줄어들었다.
또 최근 4년의 순유입인구만으로만 보면 5만4000명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유입인구가 늘어난 것만큼 유출인구도 증가한 것도 감안해야 한다.
또 뭍지역에서의 제주행이 본격화된 2012년부터 2013년의 인구유입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이같은 인구유입현황을 종합해 여론조사 전문가 등이 추정한 이주민 출신 및 새로운 유권자수 합계는 최대 15만명이다. 이는 전체 유권자의 30%에 가까운 수치다.
제주의 경우 그동안 여, 야간 격전이 치열하게 전개돼 매 지방선거마다 박빙의 승부수를 펼쳤던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변수는 상상을 초월할 상황이다. 실제로 2010년 여권 성향의 무소속 현명관 후보와 야권성향의 무소속 우근민 후보가 맞붙은 민선 5기 지방선거에서 승자는 우 후보였지만 표차는 고작 2252표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 임하는 선거캠프들은 저마다 ‘신(新)제주인’에 대한 표심 공략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말 그대로 이들에게 접근할 방법이나 경험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 현실로 드러난 이주민 표심 = 2016년 20대 총선에서 이미 이주민들의 표심은 위력을 발휘했다.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 을)의 당선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서귀포 출생이다. 게다가 서귀포고를 졸업한 그는 당연히 지역구인 ‘제주시 을'의 학연이나 지연의 도움을 그리 크게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파트 지역이 몰려 있는 제주시 동(洞) 지역에선 상대후보보다 훨씬 많은 표를 얻어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주민들이 많은 지역에서의 선전이 승인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그는 당시 제주시 구좌읍 출신인 같은 당 김우남 후보를 경선에서 이겼다. 또 본선에서도 역시 구좌읍 태생인 새누리당 부상일 후보에게 승리했다.
당시 제주시 을 선거구는 초박빙 상황이었다. 출구조사 결과 새누리당 부상일 후보의 예상득표율이 45.6%로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후보 43.0%보다 2.6%p 앞섰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그 반대였다. 오영훈 후보가 45.19%(4만4338표)를 얻어 득표율 42.26%(4만1456표)를 기록한 새누리당 부상일 후보를 2882표차로 승리했다. 표심이 확인되지 않은 이주민들의 존재가 승패를 가른 셈이다.
그만큼 이번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각 후보진영으로선 선거전략 변화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각 선거 캠프마다 전략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 지난 총선 때보다 이주민수가 크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이주민들을 연령.소득.직업 특성으로 일반화할 표본이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궨당문화'에 기대 혈연과 학연 그리고 지연을 강조하는 낡은 선거전략을 구사하는 행태로는 더 이상 선거에서의 승리를 담보하기 어렵다. 달라진 정치환경에 대응하는 과학적인 선거전략 수립과 이주민들의 표심을 얻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제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박외순 제주주민자치연대 공동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는 ‘묻지마 투표’나 특정 고교 중심의 낡은 선거풍토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국면으로 작동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 주류는 30, 40대 ... 수도권 성향? = 제주도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지난해 말 기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내로의 순이동 인구는 30.40대가 주도했다.
30대가 3798명으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3240명으로 뒤를 이었다. 전체 순이동인구(1만4005명) 가운데 50.3%가 30. 40대다.
또 2016년 6월 호남지방통계청 제주사무소가 발표한 인구통계 분석 자료를 보면 당시 제주 전입인구 3만8544명 중 경기도 출신이 1만584명(27.5%), 서울 1만434명(27.1%)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의 이주민이 수도권 출신인 셈이다.
지난해 5월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발표한 '제주 정착주민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에서도 이주민들의 특성을 일부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제주 유입인구의 세대별 분포는 2015년 기준으로 30대가 22.9%로 가장 많았고 40대 18.6%, 20대 17.4% 순으로 나타났다.
박 위원장은 "30,40대 이주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책선거가 필수적"이라며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생각에 구태를 벗지 못하는 정치행태는 이번에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2002년부터 제주행 러시에 몸을 실은 이주민들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가족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선 또 다른 특성도 엿보인다. 정착동기 1순위는 '직장 및 사업체 이동'이 29.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로 선택'(28.0%), '제주 자연에 매력' (21.4%)이 뒤를 이었다.
정착주민의 이주 이후 직업은 자영업이 32.8%로 가장 높고 판매 및 서비스직 13.6%, 1차 산업 12.2%다.
이주민들은 자연환경과 여가문화, 친환경적 교육환경 등에는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반면 교통환경 및 접근성, 낮은 소득 등에는 불만족해하는 경향을 보였다.
각 후보들마다 이주민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적 스탠스'를 어떻게 갖고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맞춤 정책개발' 역시 당선으로 가는 필수코스가 돼 가고 있다. [제이누리=권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