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이 각 지역에서 군대를 모았고 군대는 아울리스에 집결을 하였다. 약 일천 척의 배가 모여서 출항을 준비하였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 그리스군은 출항을 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신화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아 출항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왼쪽 사진은 아르테미스 여신과 사슴을 표현한 조각이다. 오른쪽 사진에서 뒷모습을 보이는 이가 아킬레우스, 다음은 클리타임네스트라, 이피게네이아 아가멤논의 순이다.
배를 띄우지 못한 것에 애가 탄 아가멤논은 제사장을 불러 이유를 물었다. 제사장이 점을 치더니 과거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여신의 숲에서 신성한 사슴을 사냥한 일이 있는데 그 것 때문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저주를 내린 것이라고 하였다.
해결 방법은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면 여신의 노여움이 풀려서 바람이 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아가멤논은 미케네에 있는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이피게네이아를 아울리스로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거절하였다. 과거 아가멤논이 자신의 첫 남편과 아이를 죽인 일이 있기 때문에 아가멤논이 이피게네이아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은 이피게네이아를 당대 최고의 명장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킬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자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피게네이아를 아울리스로 보냈다. 아가멤논은 트로이를 정복하기 위해 자신의 딸마저 희생시키는 파렴치한 인간이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오른쪽 사진에서 슬퍼하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표정이 애달파 보인다.
아가멤논이 친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자세히 보면 제단 위에는 뿔이 달린 양 한 마리가 있고 위쪽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다. 두 명의 여인 중 하나는 아르테미스 여신이고 하나는 이피게네이아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르테미스 여신은 자신을 모시는 여사제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일부러 이피게네이아를 지목하여 제물로 바쳐지게끔 하였다. 그리고 인간들 몰래 그 자리에 양 한 마리를 대신 놔두었다. 그리고는 이피게네이아를 타우리스(현대의 크림 반도)에 있는 자신의 신전에 데리고 갔다.
이 장면은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가 아브람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뒤 양을 보내 이삭을 살려내는 것과 같은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인간들의 입장에서 이피게네이아가 제물로 바쳐지자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그림에서 왼쪽에 보면 연기가 휘날리고 파도가 이는 것이 바람이 부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군이 출정을 하였다. 영화에서는 아킬레우스의 부대가 트로이 해안을 점령하여 아폴론 신전을 접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영화에서는 아킬레우스의 부하 한명이 아폴론 신전에 숨어 있던 브리세이스라는 여사제를 아킬레우스에게 데려가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고 되어 있다.
신화에서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의 만남은 다르게 표현되었다. 또한 영화에서는 전투가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고 트로이 성도 쉽게 점령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는 전쟁이 10년이나 지속되었다. 신화에서는 그리스군이 트로이 근처의 해안에 상륙한 뒤 트로이 성 주변을 유린하였지만 트로이 성을 점령하지는 못하였다.
그리스군이 주변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브리세이스라는 여인과 크리세이스라는 여인을 사로잡았다.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차지하고,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크리세이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을 모시는 제사장 크레세스의 딸이었다. 자신의 딸이 아가멤논의 노리개가 되자 크리세스는 아폴론에게 제를 지내면서 그리스군과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을 납치해 갔으니 그들에게 보복을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기도를 아폴론이 받아들였다.
아폴론은 하늘에 질병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러자 많은 그리스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어갔다. 그리스군으로서는 막대한 전력 손실을 입었다. 아가멤논은 여자와 즐기는 것도 중요하였지만 더 이상 전력 손실을 감수할 수 없었다. 그래서 크리세이스를 크리세스에게 돌려주었다.
다음 슬라이드는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아킬레우스로부터 빼앗아가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가 떠나자 아킬레우스가 데리고 있는 브리세이스가 탐이 나서 빼앗았다.
사진에서 가장 왼쪽에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가 아킬레우스이다. 가장 오른쪽에 홀을 들고 등을 보이는 남자가 아가멤논이다. 아가멤논에게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는 여인이 브리세이스이다. 오른쪽 사진은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겨서 항의하는 아킬레우스를 묘사한 것이다. 이때부터 헥토르가 사망할 때까지를 묘사한 것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이다. 일리아드는 일리온의 노래란 뜻이고 일리온은 트로이와 같은 것이다.
그림에서 보면 가운데에 투구를 쓰고 서 있는 남자가 아킬레우스이고 그 뒤에는 투구를 쓰고 오른손에 창을 들고 있는 여신이 아테나이다. 가장 왼쪽에 붉은 튜닉을 입고 가슴을 드러내 보이는 남자가 아가멤논이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대들면서 다시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트로이 전쟁 편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자 그리스군이 트로이군과의 전투에서 계속 패배하였다.
당당하게 앉아 있으면서 오른손에 홀을 들고 있는 신은 제우스이고 제우스에게 매달려서 애원하는 여신은 테티스이다.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아들 아킬레우스의 자존심이 너무 상했기 때문에 테티스가 제우스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아킬레우스의 불참 때문에 그리스군이 계속 참패를 하자 보다 못한 아킬레우스의 사촌이자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그의 창과 방패를 들고 전투에 나갔다. 사르페돈은 파트로클로스와 대적하기 위해 전투에 나갔다. 사르페돈은 눈부시게 싸웠지만 파트로클로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르페돈의 주검을 놓고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또 싸움이 벌어졌지만 아폴론이 그리스인들에게서 그의 주검을 구해내어 잘 씻고 암브로시아를 발라 히프노스(잠의 신)와 타나토스(죽음의 신)에게 건네주었다.
히프노스와 타나토스는 그의 시신을 리키아로 옮겨갔고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매장하였다. 리키아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여 사르페도네움이란 신전을 세웠다. 이 슬라이드는 히프토스와 타나토스가 사르페돈의 시신을 옮기는 장면을 묘사한 도자기의 일부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참여하지 않자 그리스군이 전투 때마다 번번이 패배하였다. 이런 정황을 보다 못한 아킬레우스의 사촌이자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방패를 들고는 전투에 나갔다. 그리스 병사들은 아킬레우스가 전투에 나온 것으로 알고 용기백배하여 전투에 임했다.
이 때 트로이의 왕자이자 명장인 헥토르가 나타나서는 아킬레우스로 변장한 파트로클로스와 대적을 하였다.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했다.
오른쪽 사진에서 가장 왼쪽에 누워 있는 주검이 파트로클로스이고 그 위에 엎드려서 있는 사람이 아킬레우스이다. 아킬레우스 뒤에서 위로하는 자는 아마도 아킬레우스의 모친 테티스일 것이다.
영화에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킬레우스를 촬영한 사진이다. 이 때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결심하였다.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장본인이 헥토르이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 일대일 대결을 벌일 것을 결심한 것이다.
다음 날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성 앞에 단독으로 나가 헥토르를 불러내었다. 헥토르는 그리스 최고의 무장 아킬레우스에게 자신이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부인 안드로마케도 그를 만류하였다.
그러나 헥토르는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고 영웅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고는 아킬레우스와의 대결을 위해 성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둘은 외로운 싸움을 하였다. 헥토르는 결국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림에서 일대일 대결을 하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보인다. 아킬레우스 위에서 싸움을 도와주는 투구를 쓴 여신은 아테나이다. 오른쪽 그림은 죽은 헥토르의 뒤꿈치에 아킬레우스가 끈으로 묶은 것을 묘사한 그림이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발뒤꿈치를 뚫어 구명을 내고는 밧줄을 묶었다. 그리고 마차에 그의 시신을 묶고는 트로이 성을 몇 바퀴나 돌았다. 헥토르는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발가벗긴 채로 성 주위를 끌려 다닌 헥토르의 시신을 신들이 돌봐 주어서 시신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영화에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싸우는 장면이다. 헥토르가 죽은 그 날 밤 아들을 잃은 프리아모스가 부하 한 명만을 데리고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찾아가서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프리아모스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을 맞추면서 사정을 하였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었다.
헥토르의 장례 기간은 12일간이었다.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은 헥토르의 장례 기간에 전투를 치르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림에서 누워있는 사람은 헥토르의 주검이고 앉아 있는 여인은 부인 안드로마케이다.
헥토르의 죽음에 대해 호메로스는 “일리온(=트로이)은 이러한 영예를 영웅에게 베풀었다. 그래서 위대한 헥토르의 영혼도 편히 잠들었다.”라고 노래했다.
브리세이스를 빼앗겨서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대드는 시점부터 헥토르가 사망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는 일리아드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철은? = 제주에서 태어나 오현고를 졸업했다. 고교졸업 후 서울대 의과대학을 나와 서울대병원에서 영상의학을 전공했다. 단국대와 성균관대 의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현재 속초에서 서울영상의학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부터 줄곧 서양사와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두다가 요즘은 규명되지 않은 고대와 중세사 간 역사의 간극에 대해 공부 중이다. 저서로는 전공서적인 『소아방사선 진단학』(대한교과서)이 있고 의학 논문을 여러 편 썼다. 헬레니즘사를 다룬 <지중해 삼국지>란 인문학도 저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