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새로운 관광모델을 선보인 선구자이자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파란눈의 이방인이 영면했다.
지난 5일 세상을 등진 김명미로공원의 대표인 프레드릭 더스틴(Fredric H. Dustin). 향년 88세다.
미 8군 소속 연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더스틴은 1971년 제주대에서 강사생활을 시작했다. 79년까지 재직한 뒤 세종대·홍익대 등을 거쳐 다시 82년부터 94년까지 제주대 객원교수로 강단에 섰다.
이후 제주도청에서 통·번역담당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는 ‘더주사(6급 직위)’로 불리며 언론과도 많은 친교를 쌓기도 했다.
그는 96년 북제주군 김녕리 만장굴 관광지 인근에 미로공원을 만들었다.
국내에선 처음 등장한 미로공원은 한 마디로 ‘신선’ 그 자체였다. 자연경관지에 머물렀던 제주에서 새로운 ‘테마파크’의 역사를 시작했다. 영국 디자이너 애드린 피셔의 도움을 얻어 디자인에만 3년, 나무를 가꾸는데 8년을 들여 공원을 완성했다.
공원은 물론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는 공원에서 벌어들인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2003년부터 매해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나눔 정신을 실천했고 뒤 이어서는 그가 몸담았던 제주대에도 아낌 없이 돈을 기탁했다.
더스틴은 2003년 제주대와 ‘외국인 교수 인건비 지원협약’을 체결하고 그해 3000만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억여원을 제주대에 기부했다.
"제주대에서 보냈던 십수년의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 중 하나다. 후학들을 위해 관광경영학과의 외국인 교수 채용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는 게 그 시절 그의 답변이었다.
그의 지원금은 외국인 교수의 월급·퇴직금·왕복 국제항공료·의료보험료 등으로 쓰였다. 제주대는 그의 이런 뜻을 살려 지원금으로 채용되는 외국인 교수를 '제주김녕미로기금교수'(The Kimnyungmaze Chair)로 칭하고, 교수아파트도 제공했다.
‘관광수익은 지역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 더스틴의 기업철학이었다.
제주대는 2006년 5월 제주사회와 대학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더스틴 대표에게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그의 장례는 7일 오전 그가 평생을 일군 삶터이자 안식처가 된 김녕미로공원에서 거행됐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