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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0주기 맞은 올해의 단상 ... 4.3법 개정, 유해발굴 과제

 

1961년 4월 이스라엘의 한 법정. 전 세계가 주목한 세기의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1960년 5월 이스라엘의 정보당국에 의해 아르헨티나 브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포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이 피고였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희대의 전범이었다. 

 

그 세기의 재판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법정을 찾았다. 그 중에는 잡지 ‘뉴요커’에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겠다”고 요청한 뒤 예루살람을 찾은 유대인 여성이자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후 수개월 동안 이어진 재판 과정을 꼼꼼히 살펴봤다. 아렌트는 그 재판 속에서 아이히만이라는, 이른바 ‘세기의 범죄자’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에 놀라게 된다.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남편이었고, 가장이었으며, 친절한 이웃이었다. 그런 사람이 무려 6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홀로코스트의 책임자였다. 

 

아렌트는 그 재판 속에서 한동안 논란이 될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내놓는다.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줄곧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고 법과 명령을 따른 것뿐이라는 주장을 관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기에 600만명의 유대인이 죽은 것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범죄의 책임자였지만,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렌트는 명령의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비판 없이 주어진 명령을 따랐던 것이야말로 아이히만의 저지른 죄라고 판단했다. 명령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음’이야말로 아이히만의 죄라고 주장했다. 

 

지금으로부터 68년 전 나치 당국이 아이히만에게 명령했던 것처럼, 제주도민을 죽이라는 군 당국의 명령을 받은 한 경찰서장이 있었다. 당시 성산포경찰서장이었던 고(故) 문형순 경감(1897~1966)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8월30일 군은 그에게 "예비검속된 주민들을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이히만이 명령에 아무런 비판 없이 순순히 따라던 것과 달리 문 경감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부당하므로 불이행한다.” 명령을 어기며 그가 남긴 말이었다. 

 

그의 결기덕에 성산지역의 예비검속자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당시 성산포경찰서 관할지역의 예비검속 희생자는 모두 6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읍면에서 수백명씩 희생자가 나왔던 것과 달리 성산은 끔찍한 참상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문 경감은 뿐만 아니라 4.3의 광풍이 한참 제주를 휩쓸고 있었을 당시인 1948년 12월 대정읍 하모리에서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 주민 100여명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그의 행동은 한동안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있었다. 4.3으로부터 60여년이 지나서야 언론을 통해 그의 일화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경찰청은 올해 그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칭호를 그에게 부여했다. ‘영웅.’ 

 

그리고 지난 1일에는 그의 흉상이 제주지방경찰청에 우뚝 섰다. 

 

제주4.3의 참상으로부터 70년. 문 경감의 ‘경찰영웅’ 선정 뿐만 아니라 올해는 그 여느 때보다도 큰 발걸음들이 있었다.  

 

7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제주 곳곳에서 4.3과 관련된 추모행사들이 기획되기 시작했다. 희생자 추가 신고와 함께 사회・문화적으로 유명인사들이 나서며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를 외쳤다. 

 

정우성과 곽도원 등 배우들도 나서 4.3의 상징인 동백꽃 배지를 달자 이 배지는 말그대로 ‘인기폭발’에 물량부족 사태까지 치렀다. 4.3이 더욱 널리 알려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회에서는 국가공권력의 잘못으로 희생당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4.3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화를 통한 수형인들의 명예회복, 추가 진상조사, 가족기록부 정정 특례 등의 내용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제주도는 4월3일을 처음으로 지방공휴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이 지방공휴일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4월3일 추념식 당일에는 공식석상에서는 부를 수 없었던 ‘잠들지 않는 남도’가 4.3 유족들의 목소리로 울려퍼졌다. 

 

서울 광화문에서는 403명이 참여하는 4.3 관련 퍼포먼스가 진행됐고, 광화문뿐만 아니라 대전과 대구, 광주 등 지방거점 도시 광장과 거리 20곳에도 4.3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지금까지 4.3을 몰랐던 많은 이들이 4.3을 알게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상 처음으로 4.3 메시지를 보내 “4.3 70주년 기념행사가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4.3추념식에서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4.3에 대해 공식사과한 이후 15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 역시 나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며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라고 힘 주어 말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제주4.3에 봄이 오고 있다. 8년 만에 제주국제공항에서의 유해발굴이 시작됐고, 70년 전 억울하게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4.3수형생존자들에 대한 재심이 시작됐다. 

 

이데올로기에 가려졌던 과거가 다시금 세상으로 나오고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계절은 겨울을 향해 가고 있지만 4.3의 봄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을 많이 남아 있다. 

 

여야가 입을 모아 처리를 약속했던 4.3특별법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중이다. 국정감사를 위해 제주도청을 찾은 국회의원들을 향해 4.3유족들이 개정을 촉구하고 호소문을 전달했지만 처리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제주국제공항에서의 유해발굴이 8년 만에 재개됐지만 공항에서는 유해가 한 구도 나오지 않았다. 유해의 흔적도 못 찾았다. 그저 도두동에서 2차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4구를 찾았을 뿐이다. 

 

유족들은 여전히 “공항에 수백구의 유해들이 묻혀 있다”며 “활주로를 걷어내서라도 유해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성토한다. 

 

4.3유족들은 뿐만 아니라 10만인의 서명을 받으면서까지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침묵중이다. 

 

하지만 진작 영웅이 됐어야 할 이가 드디어 ‘영웅’이 돼 경찰청 앞에 섰고, 재심은 이르면 올해 중으로, 늦어도 내년 1월에는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말처럼 올해 제주에 봄 기운을 느낀다. 하지만 따스한 봄날의 훈풍은 아직 모자라다. 4.3의 완전한 해결로 가는 여정은 아직 남아 있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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