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5 (화)
민족의 대명절 설을 앞두고 제주공항에 귀성객들과 관광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설을 사흘 앞둔 1일 오후 제주공항에는 귀성객들과 관광객들을 태운 비행기가 속속 도착했다.
제주도 관광협회에 따르면 올 추석연휴기간 동안 제주공항을 통해 제주를 찾는 이는 24만5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설을 맞아 제주를 찾는 이들을 사진에 담았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위대한 제주시대를 연다.’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승리, 민선 1기 제주도지사에 오른 신구범 도정의 출발은 이 슬로건 하나로 함축됐다. ‘경쟁과 자존, 그리고 번영’이란 ‘서브 타이틀’이 붙은 그 슬로건이 던진 화두는 사실 위력적이었다. ‘변방사고’에 머물렀던 제주인들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고취했다. 게다가 그 시절 등장한 다른 민선 지방정부가 내세우는 ‘늘푸른~’·‘맑고 아름다운~’·‘행복한 ○○ 건설’ 등의 천편일률적인 구호와는 아예 수준을 달리했다. 관선 지사를 거쳐 53세의 나이에 민선 1기 제주도백으로 오른 신 전 지사의 발상과 구상은 사실 그 시절엔 획기적이었다. 삼다수란 브랜드로 먹는샘물 국내시장에 진출해 현재까지 부동의 1위 상품으로 키워냈고, 지금으로선 금자탑으로 불리는 제주국제컨벤선센터를 만들어냈다. 제주만의 대표축제이자 세계인의 축제로 기획된 ‘세계섬문화축제’ 역시 신구범 지사시절 작품이다. 제주도가 매해 1천억원에 가까운 로또복권 배당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 역시 그가 지자체로선 처음으로 관광복권을 발행하는 기관의 지위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8년 민선 2기 제주지사로 우근민 도정이 출범하자 슬로건은 바뀌었다. ‘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제주교육계 현장이다. 도무지 민주제 작동원리와는 거리가 먼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6월1일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선출될 교육감 후보를 정하는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다. 한마디로 절차적으로도 문제지만 주민자치 직선이란 대의명분을 몰각하고 있다. 교육계 현장에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잣대가 등장하는 것도 마뜩치 않지만 현 이석문 교육감의 3선 도전에 맞서는 보수성향 그룹의 단일화 방식은 우선 중대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임받지 않은 권력’이 후보를 정하겠다는 논리가 문제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대의원으로 정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선거인단’을 꾸려 후보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주도한 건 제주바른교육연대다. 진보진영 이석문 현 교육감에 대항할 보수성향 후보로 고창근(71) 전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과 김창식(65) 전 제주도의회 교육의원 2명이 참여,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자동응답조사(ARS) 조사 방식으로 한다. 조사대상은 제주도민 50%와 선거인단 50%다. 선거인단은 교육단체
▲ 경찰이 지난 18일 오후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김모(55)씨를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제주경찰청으로 압송하고 있다. [제이누리DB] 1998년 민선 2기 6·4지방선거가 마무리되고 고작 며칠 뒤였다. 천주교 제주교구 노형성당에서 ‘중대한’ 기자회견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회견을 주도한 이는 당시 제주의 정의구현사제단을 이끌고 있는 임문철 신부였다. ‘선거판의 중대한 비리를 폭로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다. 중앙·지방언론사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현장으로 내달렸다. 회견의 주인공은 손모(당시 31세)란 한 청년이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누군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의 입에선 말 그대로 충격적인 폭로가 터져 나왔다. “당선자인 우근민 후보 수행비서 박모씨로부터 800만원을 받았다. 조직과 유권자를 관리하기 위한 돈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난 뒤 소외감이 밀려오고, 이런 잘못된 선거는 고쳐져야 한다는 생각에 양심선언을 한다”고 밝혔다. 충격이었다. 사실이라면 우 후보의 당선은 무효가
정치인을 가리키는 politician은 셰익스피어 시대에 처음 쓰였다. ‘신중한’이란 의미의 형용사 politic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그 단어는 점차 부정적 의미로 변모했다. ‘교활하다’거나 ‘철저히 자기 잇속만을 차린다’는 뜻으로 굳어져갔다. 그래서 politician은 모사꾼의 의미로 뒤바뀌었다. 정치인(statesman)이 아니라 정상배(政商輩)라는 의미다. 셰익스피어는 어떤 사람을 모욕적으로 묘사할 때 politician이라고 했다. 리어왕은 politician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지칭했다. 햄릿은 무덤 파는 광대가 해골을 던지며 장난치는 것을 보면서 "그 해골이 politician의 것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 그런 정치꾼은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도구가 아니면 적이다(A politician divides mankind into two classes: tools and enemies).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침침해지는 눈 탓을 할 생각도 했다. 그런데 떡하니 인터뷰 기사까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우한폐렴’으로 인류사에 등장한 그 바이러스는 지난해 12월12일 지구촌에 처음 보고됐다. 인류사 첫 감염·확진판정이었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의 공포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때만해도 잘 몰랐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신종플루가 그랬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MERS)도 그랬다. 잠시 감염병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해결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벌써 1년이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굳이 바깥으로 나서지 않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호기심이 발동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젠 거리를 둔다. ‘맛’을 기대하고 바글거리는 식당에 군중심리로 찾아가던 게 예전이었다면 지금은 무조건 사람 많은 곳을 피한다. 일면식이라도 있으면 먼저 내밀던 손이지만 이젠 솔직히 내밀기도 쑥스럽고, 내민 손을 맞잡기도 꺼림칙하다. 기왕이면 많은 사람이 모여 ‘건배’ 구호를 외치던 각종 회합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한 테이블만 넘어서는 자리라도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솔직히 지긋
▲ 조선총독부 [사진=서울시사편찬위원회] 김영삼 정부 출범 초기였다. 1993년 2월 말 취임한 YS의 뇌리엔 군사독재 종식과 역사 정통성 확립이 가장 큰 그의 과제였다. 그는 ‘역사 바로세우기’란 간판을 내밀어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제압하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그들은 곧바로 ‘12·12 반란의 수괴이자 내란음모의 주역’으로 낙인 찍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역사 바로세우기’가 한창이던 그해 초가을 한 언론사의 입사시험을 봤다. 필기전형중 하나인 논술의 논제는 “조선총독부 건물의 해체와 철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난감한 주제였다. 민족정기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보면 경복궁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은 마땅히 철거돼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논리도 만만찮았다. “치욕스런 역사의 현장은 철거가 아니라 보존·존치해 후대의 역사적 교훈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논리다. 조선총독부에
가끔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나, 어떵허난 백살꼬지 살아점신고, 이?” 곰곰이 어머니의 일생을 헤아려 보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죽음의 위기를 넘겨서, 오래 사시라는 주위의 돌봄이 있어서’로 요약된다. 요즘들어 어머니가 기운이 통 없으시다. 이 여름을 무사히 지나실 수 있을까.... “나, 이젠 다 살아진 모양이여”라며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보시는 어머니. 눈가에 촉촉이 물기가 배어 있다. ‘눈이 정신’이라는데, 어머니의 눈동자가 많이 흐려지셨다. 안개가 자욱한 시선에는 ‘나 좀 살려 달라’는 간절함이 서려 있다. 이제는 기력이 다하신 게다. 100살이 아니신가. 하지만 ‘대포 부택이 어멍은 102살이라도 정정허게 돌아다념잰 호여라만은...’이라며 말끝을 흐리시는 어머니. 마저 끝마치지 못하고 흐려지는 말의 여운에는 더 오래 사시고 싶으신 갈망이 담겨 있다. 그래, 우리 어머니,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두 분 시어른을 지성껏 봉양하고 임종을 지켰으니, 하늘의 이치대로라면 장수의 복을 받으실 게 분명하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
코모두스 황제와 노예검투사 막시무스는 AD 180년 어느날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 한복판에 서서 수만명의 군중 앞에서 칼을 뽑아 들고 최후의 결투를 벌인다. 결국 두 사람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어쩌다가’ 두 사람이 그날 그곳에서 그렇게 맞서고 그렇게 죽게 됐을까. 누구 탓일까. 대중예술에서 극작가와 감독의 시선은 주인공 편향적이고 선악善惡 대결구도에 맞춰져야 한다. 영웅은 절대선이어야 하고, 빌런은 절대악이어야 한다. 막시무스는 강직하고 사심 없고 당당하다. 반면 코모두스는 무능하고 욕심 많고 사악하기 짝이 없다. 막시무스뿐만 아니라 관객 모두의 ‘공공의 적’으로 자리매김한다. 코모두스를 향한 막시무스의 사무친 원한에 모든 관객이 공감한다. 코모두스를 죽이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는 복수심도 수긍이 간다. 막시무스가 아버지처럼 모셨던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살해하고 자신의 처자식마저 불태워 죽인 원수가 코모두스이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은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내 처자식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카메라도 막시무스의 영웅적인 전투와 일편단심 로마와 황제를 향한 충절, 그리고 막시무스의 아내와 아들이 나무에 매달려 불타 죽은 모습에 막시무스가 처절하게 절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