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와 평화가 연일 부딪히는 현장. 평화롭던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수시로 육박전이 벌어지는 흡사 전쟁터 같은 분위기다.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 그곳에서 '평화'를 외치는 외국인이 있다. 여럿 중에서도 유독 그가 눈에 띈다. 영국에서 날아온 평화운동가 엔지 젤터(Angie Zelter·61·여).
지난달 중순 제주에서 열린 국제평화대회 이후 그는 아예 한달간 제주에 눌러 살고 있다. 강정마을에서 머무르며 주민들과 함께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벌였다. 경찰에도 두 번이나 연행됐다. 결국 그에게 돌아온 대한민국 정부의 답은 '출국명령'.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 강제추방하려다 한단계 처벌수위를 낮춘 조치다.
그는 고국인 영국은 물론 벨기에ㆍ캐나다ㆍ말레이시아ㆍ스코틀랜드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반핵·반전·환경운동을 하고 있다. 실형 선고만 16번, 경찰에 체포된 경력만 100차례가 넘는다. 이스라엘과 말레이시아에서도 출국명령을 받았다.
핵잠수함 트라이덴트 미사일(Trident missile)의 시설을 파손한 혐의로 기소된 그에게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핵무기 사용이나 위협은 모두 불법'이라고 판시하고,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바 있다.
"단 한 개의 무기로도 수백만 명의 목숨을 쓸어버릴 수 있으며, 아무리 정확하게 겨냥한다 하더라도 합법적 군사 목표와 민간인, 병원, 학교 등을 구별할 수 없기에 인도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무기"라는 것이 이유였다.
197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영국의 평화운동가 매어리드 매콰이어(Mairead Maquire·68)는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엔지 젤터를 추전했다. '노벨평화상 후보'란 간판이 이후 그를 따라다닌다.
지난 달 26일 그는 해군기지 공사장 철조망을 망가뜨렸다는 이유로 경찰에 처음 연행됐다. 이후 이달 9일에는 동료활동가 28명과 함께 해군기지 건설현장에 진입을 시도하다 또 다시 연행됐다.
이젠 그는 법무부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출국명령이 내려진 신세다. 22일까지 제주를 떠나야 한다.
"나는 영국으로 돌아가 한국대사관 앞에서 보다 큰 집회를 준비 할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한창인 강정마을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영국 평화운동단체에서 강정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강정은 군사기지를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군기지 건설은 국제적인 이슈다. 그리고 강정 주민들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마침 제주도에서 열리는 국제평화대회 소식을 듣고 강정까지 찾아왔다."
평화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
"미국은 이미 100여개 국가에 1000개가 넘는 기지를 소유하고 있다.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스스로 세계 제 1의 국가가 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은 땅과 바다는 물론 우주공간마저 지배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어느 누구도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전쟁 중인 국가다 해군기지 건설은 국가의 안보를 위한 것 아닌가?
"한국 정부가 진정한 안보를 원한다면 주변국들과 친구가 되면 된다. 그러면 싸울 일이 없어질 것이다. 나에게 안보는 가정을 가지고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음식을 제공받으며 깨끗한 공기와 물을 제공받는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은 땅과 물, 모든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안보와 병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한국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중앙정부가 지속적으로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은 제주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위를 파괴하는 행위다. 제주도민들로선 본토에서 전투경찰을 내려 보내는 게 과거 4.3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건설되는 제주해군기지는 기후변화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상당량의 이산화탄소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통해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 등 기상이변에도 주범이 된다."
'출국 명령'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법을 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법을 어겼다면 유죄를 내렸을 것이고 그 법에 방어할 수 있는 보장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는 무조건 나가라는 명령이었다. 그래서 약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조건 나가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강정에서 주민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나는 강정주민들이 대단히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새벽이 되면 사이렌이 울리고 일어나서 저항한다. 이는 대단한 것이다. 제주를 찾아 경찰에 두 번 연행이 됐는데 경찰서에 있는 동안에는 새벽에 사이렌이 울리지 않아 푹 잘 수 있었다."
"강정주민들은 이런 생활을 5년간 이어오고 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을 것이다. 제주를 찾았을 때 강정 주민들은 많이 반겨줬다. 생활하는 동안 행복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평화란?
"어떠한 사회건 빈부격차가 있으면 항상 분쟁이 일어났었다. 평화는 자연적인 세계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지구상에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지속가능하도록 보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어떻게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럼비 해안에 들어간 것을 후회하지 않나?
"후회하지 않는다. 구럼비는 강정사람들에게 상징적인 것이다. 강정사람들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구럼비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는 제주도민들의 식수원이다. 자연경관도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구럼비가 파괴되고 있다. 인간은 구럼비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 이런 파괴가 계속된다면 지구상에는 인류만이 남게 될 것이다. 과연 그 인류는 독자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