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깃발'로 기상예보를 알리던 시대에서 이제는 휴대전화 몇번만 두드리면 세분화된 동네예보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1차산업이 주를 이뤘던 과거에는 날씨가 곧 생업과 연결된 중요한 정보였다. 지역마다 전승된 삶의 지혜를 통해 날씨를 점치던 시대를 지나서 1900년대 들어 전국 곳곳에서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되고 기상예보도 가능해졌다.
현재도 기상정보는 농업, 수산업, 관광업 등 제주 산업 전반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1923년 제주측후소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주 기상관측·예보 업무를 수행해 온 제주지방기상청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본다.
◇ 1923년 제주측후소로 출발, 1998년 제주지방기상청으로 승격
제주지방기상청 전신인 제주측후소는 1923년 5월 1일 세워졌다.
당시 일기예보는 '깃발'로 알렸다.
이 때문에 성곽에서 2번째로 높은 지역에 위치한 북동쪽 치성에 측후소를 설치해 사람들이 깃발을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어선들이 산지천을 따라 제주항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있기 때문에 어선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장소로도 최적지였다.
예보 내용은 풍향, 천기, 기온 순서로 깃발 모양과 색깔을 통해 알렸다.
정삼각형 모양의 풍향기는 바람 방향에 따라 흰색은 북풍, 녹색은 동풍, 적색은 남풍, 청색은 서풍을 의미했다.
천기기는 사각형 형태로 흰색은 맑음, 적색은 흐림, 청색은 비, 녹색은 눈을 나타냈다.
기온기는 긴 삼각형 형태로 적기는 온도가 상승, 백기는 온도가 하강함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측후소 깃대에 적색 삼각형기와 청색 사각형기, 적색 긴 삼각형기가 걸려있었다면 '오늘은 남풍이 불고, 비가 오겠으며, 기온은 올라간다'는 예보다.
기상특보의 경우 호우주의보를 알릴 때는 잠자리 그물 같은 것을 크게 만들어 청색으로 나타냈고, 태풍주의보는 내용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시내 전차에 붙여 통보했다.
제주측후소 설치 이후 종관기상 관측으로 통계 자료도 누적되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로는 남한의 기상업무가 인천의 중앙관상대를 중심으로 전국 14개 측후소에서 실시됐다. 정부 수립 이후 제주측후소에서도 기상 행정체계를 갖추게 됐다.
이후 제주측후소는 1970년 중앙관상대 광주지대 제주측후소를 거쳐 1992년 제주기상대로 명칭을 바꿨다.
1990년대 들어 제주에도 자동관측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현대화된 기상관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91년부터 고산에서 레이더 기상관측이 가능해졌고, 1989년 제주에도 지진관측망이 구축됐다.
1990년 처음으로 AWS(자동기상관측장비)가 도입됐고, 1999년에는 유인 기상관서의 지상 기상관측 업무 자동화를 위한 종관기상관측장비(ASOS)가 처음 설치됐다.
현재는 도내에 ASOS 4대(제주, 서귀포, 성산, 고산)와 AWS(자동기상관측장비) 37대가 운영되고 있다.
1993년 12월 1일에는 제주도와 부근 바다에 대한 단기 예보와 각종 기상특보 발표 업무에 대한 독자적인 예보권을 부여받았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해 태풍, 장마 등 여름철 기상변화의 전초기지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1998년에는 제주지방기상청으로 승격하면서 적극적인 예보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육상 예보구역은 제주도 북부·산지·서부·남부·동부와 추자도로 구분되며, 지난해에는 해발 200∼600m 중산간 지역이 북부중산간·남부중산간으로 세분화됐다.
해상 예보구역은 남해서부(앞바다, 동쪽먼바다, 서쪽먼바다), 제주도해상(앞바다, 남서쪽안쪽먼바다, 남동쪽안쪽먼바다, 남쪽바깥먼바다), 규슈해상(서쪽, 남쪽), 동중국해 등이다.
제주기상청은 지역 주요 산업 진흥을 위한 맞춤형 기상융합서비스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농업기상정보 서비스, 해양레저 기상융합 서비스 등이다.
지난해에는 제주도 자치경찰단과 협업해 교통기상서비스 제공을 시작했다. 자치경찰단 교통정보센터 누리집을 통해 도내 주요 도로의 시정과 노면 상태 등 교통 기상정보를 제공한다.
100년의 세월 동안 청사도 단장 또는 신축하며 역사를 이어왔다.
최초 제주측후소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 제주읍성의 쾌승정터에 설립됐다.
일제는 기상관측 기구를 동성의 성곽 위에 설치하고, 청사는 북성의 치성 위에 걸터앉은 형태로 측후소를 지었다.
1983년에는 건물 노후화로 60년간 사용해온 구청사를 헐고 같은 자리에 254㎡ 규모로 청사를 신축했고, 1996년에는 기존 1층이었던 청사를 2층으로 증축해 공간을 485㎡로 넓혔다.
건물 노후화와 공간 부족으로 2015년에는 부지 6636㎡에 지하 1층, 지상 2층, 전체 면적 2574㎡ 규모로 신청사를 지었다. 건물 1층 한편에는 기상과학홍보관도 조성했다.
새 청사를 짓는 과정에서 일부 논란도 있었다.
기상청은 관측 지점을 옮기게 되면 현 위치에서 90여년간 이어온 기상관측 자료가 무용지물이 된다며 기존 청사 바로 옆에 신청사를 지으려고 했다.
이에 대해 지역 문화·학술단체가 "기상청 부지 안에 제주의 중요한 역사문화유적지인 공신정(拱辰亭) 터가 있다"며 반발했다. 공신정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허물어진 제주성의 중요한 정자로, 과거 조선시대 제주성내 최고의 인문경관지 중 하나로 꼽히던 곳이다.
이에 기상청은 제주도 등과의 협의 끝에 기상관측의 연속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건물 위치를 공신정 터 동쪽으로 바꾸고 층수도 낮춰 공신정 터를 보존했다.
◇ 전재목 청장 "'기상관측 100년' 국내 3번째…기상정보 활발히 활용되길"
"제주는 부산, 서울에 이어 국내 3번째로 세계기상기구(WMO) 100년 기상관측소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기상관측은 1904년 부산·목포를 비롯한 5개 지역에서 처음 시작되는 등 기상관측이 제주보다 먼저 시작된 지역도 있지만 같은 장소에서 연속적으로 기상관측이 이뤄진 곳은 제주가 3번째라고 전재목 제주지방기상청장은 설명했다.
특히 기상청사를 이전한 부산이나 서울과 달리 제주는 관측소와 함께 청사도 100년간 같은 위치를 유지했다.
전 청장은 "광복 전후 근현대사 소용돌이 속에서도 같은 곳에서 관측이 쭉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지난 100년간 제주의 날씨는 쭉 제주인의 삶 속에 묻어있었다"며 제주 기상관측 100년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0년의 날씨 기록이 도민의 삶 한가운데서 제주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전 청장은 "지금도 농어업이나 관광업 등 각종 산업과 도민 생활 전반에 날씨는 매우 중요한 정보"라며 모든 산업 분야에 날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기상청이 생산하는 양질의 기상정보를 잘 활용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제주 관광을 해야 하는데 날이 궂으면 울상만 지을 것이 아니라 날씨에 맞춰 여행 일정을 짜라는 것이다.
비가 쏟아진다면 폭우 뒤에만 볼 수 있는 절경인 엉또폭포나 만수를 이룬 사라오름을 찾아간다거나, 폭설이 내린다면 눈이 그친 직후 날이 개었을 때를 틈타 한라산을 오른다면 '이때만 볼 수 있는' 절경을 만나볼 수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 등 관광 자원을 가진 제주에서 날씨 정보를 잘 활용한다면 훨씬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 청장은 말했다.
나아가 기후 위기 시대에 기후변화의 선봉에 있는 제주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제주기상청은 지난해 4월 한라산 백록담 인근 해발 1909m에 기후변화관측소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제주도 해안부터 정상까지 고도별 입체적 관측 자료를 확보함으로써 예보 정확도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국내 최고도인 한라산 정상부 기상관측 자료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연구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상청은 기대하고 있다.
전 청장은 "백록담 기후변화관측소의 데이터가 향후 계속해서 축적되면 기후변화 연구에 엄청난 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도내 대학에 기상학과가 없는 실정이라며 지역 인재 양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전 청장은 "직원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제주기상청이 100주년을 맞게 됐다.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날씨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게 돼 의미 있게 생각한다"며 "도민이 기상 정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예보를 하는 등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전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