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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연가] 국내 유일 풍력 블레이드 제조 휴먼컴퍼지트 양승운 대표 ... 어릴 적 수재, 이제 세계시장이다

 

세계는 이미 기후위기의 시대다. 제주만해도 이상기후 현상이 두루 보인다. 봄과 여름은 갈수록 더워지고, 지난 겨울에는 열흘 만에 기온이 18.6도나 뚝 떨어졌다. 이상 고⸱저온이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 주범으로 꼽히는 것은 온실가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억톤. 특히 에너지 분야 배출량이 총배출량의 87%다. 이 중 석탄 등 고체연료에 의한 배출이 전체의 40% 이상이다. 제주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60년 뒤 1년 중 4개월을 폭염에 시달려야 한다.

 

전 세계는 극심한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앞다퉈 방책을 내놓고 있다. 그 핵심과제가 에너지 전환이다. 탄소배출이 심한 기존 화석연료를 탄소배출이 적은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바꿔가고 있다. 

 

이 흐름을 타고 세계 풍력산업 시장이 빠르게 성장중이다. 세계풍력에너지협회(GWEC)에 따르면 세계 풍력발전 시장은 지난해 837GW에서 2026년 1395GW로 커질 전망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해상을 중심으로 풍력발전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중이다. 제주도도 탄소없는 섬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주목받고 있는 사업가가 있다. 양승운(57) 휴먼컴퍼지트 대표.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국내 유일의 풍력 블레이드 제조업체 CEO다.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한국 풍력시장에 힘을 더하고 있다. 

 

◆ 축복받은 학창시절 ... 제주는 읽어도 읽어도 궁금한 '뿌리'

 

제주시 건입동에서 나고 자란 그는 제주동초를 졸업해 제주중, 제주제일고를 거쳤다. 돌이켜보면 요즘 주목받고 있는 전인교육을 40여년 앞서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봐도 축복받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는 축구부와 사격부에서 땀을 흘리며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가꿨다. 중학생 때는 과학부에 들어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실험을 즐겁게 해보기도 했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기 보다는 늘 책을 읽었다. 재밌게 읽다보면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고, 또다른 책을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해소했다. 특히 제주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2남3녀 중 장남으로, 이른 바 장손이었다. 어릴적부터 집안어른들께 '양씨 가문'에 대해 배웠다. 장손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뿌리'인 제주에 애정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제주의 역사는 교과서에서 빠져있었다. 스스로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고, 양, 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삼성혈의 역사를 파고들었더니 어느덧 제주도 전역의 역사를 읽게 됐다. 집안이 4.3의 광풍에 휩쓸렸단 것도 고등학생 때 제대로 알게 됐다. 어릴 적에는 들어도 잘 이해가 안 됐던 사실이 급히 현실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 역사에 매달렸던 것 같다.

 

관심사가 이렇다보니 대학도 인문계열로 가나 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과거 중입 연합고사에서 당당히 수석을 차지했던 그의 실력은 여전했다. 그가 지금의 수능인 학력고사를 치렀던 1984년 당시 기계공학은 우리나라 산업군의 중심이었다. 특히 1980년대 전후로 자동차, 전자산업이 급성장하면서 항공기와 로봇 개발도 최첨단 산업으로 주목받았다.

 

무한한 가능성을 봤던 것 같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 배움처럼 멈춤이 없다. 기존의 것보다 기능이 우수한 소재가 나오면, 곧 이어 단점을 보완한 또다른 소재가 개발된다.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궁금한 것이 많아지는 역사와 같았다.

 

그래서 대학원도 같은 대학의 복합재료 전공을 택했다. 복합재료란 성분 등이 다른 두 종류 이상의 물질을 조합해 각각의 특성을 상호 보완함으로써 기능이 크게 향상된 재료를 말한다. 당시에는 자동차, 항공기 산업 분야에 쓰이는 알루미늄 등의 재료를 복합소재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더 가볍고, 더 단단하게 말이다.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지금도 친환경의 흐름과 함께 각 산업이 기존 소재를 복합소재로 대체하려고하니 탁월한 판단이었다.

 

대학원을 마친 후에도 연구는 계속됐다. 대우중공업 우주항공산업본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첨단복합재센터 등 이력이 우주항공 분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는 2012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 국내 유일의 풍력발전기 블레이드 생산업체가 되기까지

 

그가 대표로 있는 휴먼컴퍼지트는 2012년 12월 문을 열었다. 현재 국내 유일의 풍력 블레이드(날개) 생산업체다. 블레이드 설계부터 제작공정까지 토탈 솔루션 제공이 가능한 복합재료 제작기업이기도 하다. 회사가 설립된 해는 해양수산부가 군산항을 서남해 해상풍력지원 항만으로 지정한 해다. 앞으로 에너지는 화학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차차 대체된다고 했다. 또다른 최첨단 산업이었다. ‘풍력에너지의 시대가 온다!’ 도전할만한 미래가 또다시 눈 앞에 다가왔다.

 

군산항은 서남해 해상풍력단지에 설치될 풍력터빈과 하부구조물의 하역·적치, 조립, 운송 등 물류기지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된다면 풍력발전기를 만들 부품이 꼭 필요하다. 블레이드는 풍력발전기의 핵심 부품으로 풍력 터빈 제작비용 중 24%나 차지한다. 앞서 첨단복합재센터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20명이 그와 의견을 같이했다.

 

그가 대표로 추대된 이유는 추진 의지가 가장 컸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항공기 날개와 원리는 물론 만드는 방법도 똑같다. 더 가볍고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목표도 같았다. 쭉 연구해온 첨단기술을 신산업에 입혀 우리나라가 기존 시대를 뛰어넘도록 힘을 보태고 싶었다. 

 

이때만 해도 '국내 유일' 풍력 블레이드 제조업체라는 타이틀은 없었다. 오히려 경쟁사가 2곳이나 있었다. 풍력 관련업체들이 원대한 희망을 품고 군산에 몰려드는 때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풍력 시장은 형성 초기부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서남해 해상풍력단지의 특수목적법인 설립이 지연되고 공유수면 점·사용 인·허가 문제가 불거져 좌초 위기에 놓였다. 지역 어민들과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고, 나중에 보니 지원항만 건설 예산도 절반 이상 깎였다. 업계에선 '사업성 확보가 불가능하다', 즉 "돈이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정부가 추진하겠다던 서남해 해상풍력 사업은 점점 흐지부지됐다. 4년 이상 지연된 끝에 물동량 확보 어려움 등으로 사업시행자 마저 군산항 부두 조성을 포기했다. 군산항 인근의 풍력관련 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갈려나갔다.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도 차례로 손을 뗐다. 지지구조물이나 타워 등 부품 제조기업들은 물론 연구기관도 예외 없었다. 경쟁사였던 블레이드 생산업체 2곳 모두 철수했다. 그렇게 휴먼컴퍼지트는 ‘국내 유일’ 풍력 블레이드 생산업체가 됐다.

 

 

양 대표는 국내 풍력시장을 두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블루오션’이라고 평했다. 시장이 극초창기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됐다. 기후위기 문제가 도래하면서 전세계가 화석연료 퇴출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들이고 있다. 제품 생산은 물론 국민들의 생활 에너지마저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30년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21.6%로 잡고, 2036년에는 30.6%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풍력 설비용량을 2030년 19.3GW와 2036년 34GW 규모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풍력발전 설비는 1.8GW다. 10년 뒤에는 시장이 10배까지 커진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현재 풍력발전 설비의 연간설치 규모보다 10배 넘게 늘려야 한다. 한전은 현재 2030년까지 전북 서남권 1.26GW, 전남 신안권 1.5GW, 제주 한림 0.1GW 등 약 2.86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 풍력시장 선점 위한 지자체와 기업의 눈치싸움 ... 제주는?

 

양 대표가 걱정하는 것은, 아직 채 자라지도 못한 국내 풍력시장을 이미 덩치를 키운 국외 글로벌 기업들이 선점하는 것이다. 현재도 세계 육상 풍력시장 80%와 해상 풍력시장 90%를 베스타스(Vestas), GE리뉴어블에너지(GE Renewable Energy), 지멘스가메사(Siemens Gamesa Renewable Energy) 등 외국 메이저 3사가 점유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 기업들은 연구와 기술 등에서도 상대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현재 국내 풍력업계는 물밑싸움이 치열하다. 냄새를 맡은 외국 기업들은 이미 들어와있다. 그들과 경쟁을 할 것인가, 손을 잡을 것인가? 손을 잡는다면 과연 누구와 잡을 것인가?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달 지멘스가메사와 국내 해상풍력시장에서의 전략적 협력을 위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했다. 풍력타워 제조 기업인 씨에스윈드는 지난해 3월 베스타스와 국내 풍력발전 생산 합작사를 설립했다. 현대일렉트릭도 지난해 12월 GE 리뉴어블에너지와 '해상풍력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국내.외 해상풍력 시장 공략에 함께 나서기로 했다.  

 

국내 지자체들도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국내.외 풍력관련 기업을 서로 유치하려고 혈안돼있다. 신성장 산업을 선점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고, 양질의 일자리도 늘려 더 살기좋은 지역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울산, 전남, 전북 등 다수의 지자체가 기업 이전시 인센티브는 물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러브콜'을 보낸다. 

 

일례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0일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베스타스를 방문해 아태지역본부 서울 이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베스타스 아태지역본부가 싱가포르에서 서울로 옮겨오고, 서울시는 투자 규모와 지원요건에 맞는 고용·교육훈련보조금 등 현금지원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내 유일 풍력 블레이드 제조업체인 휴먼컴퍼지트도 '러브콜'의 대상이다. 현재 풍력 발전기용 블레이드 관련 특허를 10건 이상 보유하면서 국내 풍력발전기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2021년에는 초대형 해상 풍력터빈을 위한 길이 100m, 무게 50t의 8.0MW급 대용량 해상풍력 블레이드를 국내 처음으로 제조했다. 100m급 블레이드 인증시험 성공은 세계 세 번째 기록이기도 하다. 

 

양 대표는 국내 풍력시장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일주일에 1번은 타 지역으로 출장을 나가고 있다. 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어느 지역이 어느 기업과 손을 잡느냐'다. 

 

"그런데, 제주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 같네요.” 양 대표는 아쉽다며 웃었다.

 

사실 제주는 국내 풍력산업의 선두 주자다. 양 대표의 외가가 있는 제주시 구좌읍 행원에는 1998년 8월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 풍력발전단지인 행원풍력단지가 있다. 또 제주시 한경면 앞바다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풍력발전기를 이용한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가 있다. 제주에는 이들을 포함해 23곳의 풍력발전단지가 운영되고 있고, 추가로 계획된 곳도 있다. 휴먼컴퍼지트가 블레이드를 공급할 한림해상풍력단지도 그 중 하나다.

 

양 대표는 외가를 방문할 때면 보는 풍력발전기가 종종 눈에 밟힌다고 했다. 볼 때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풍력산업에 계속 몸 담고 있으면 언젠가는 제주로 돌아올 수 있겠구나!’ 뭍으로 간 제주인이 다시 제주로 돌아오고 싶을 때 가장 염려하는 것은 바로 생업이다. 대학 진학과 함께 상경해 둥지를 틀고, 팍팍한 외지살이에 저절로 고향이 그립다. 하지만 제주에서 먹고 살 생각을 하면 돌아오기 쉽지 않다.

 

 

◆ 제주인이 빛날 때 제주가 빛난다

 

양 대표는 한 달에 1번은 꼭 제주를 방문한다. 제주는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갈 고향’이다. 부모님을 포함한 일가친척도 전부 제주에 있다. 하지만 양 대표가 자아실현과 생계 문제없이 제주로 돌아오려면 생애 전반을 바친 우주항공산업이나 풍력산업 관련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내 일이라 풍력발전단지로 예를 들었지만, 핵심은 이거예요.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들이 많이 생겨서 젊은 사람들이 제주를 떠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겁니다. 20대, 30대들이 제주를 뜬다는 얘기를 들으면 참 마음이 아파요. 일자리 때문에 육지로 올라간 사람도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갑니다. 누구든 내 고향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해요. 제주의 환경도 잘 보존됐으면 좋겠고, 어떤 형태로든 발전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10년 뒤 미래를 설계해보면 내가 오늘 할 일을 알 수 있다. 그 관점에서 양 대표는 선박의 보조풍력 추진 시스템인 로터 세일(Rotor Sail)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로터 세일은 선박 갑판에 설치되는 원기둥 형태의 돛이다. 바람으로 선박의 추진력을 더해 연간 연료 소모량을 선박 1척당 1억4천에서 2억7천만원까지 줄일 수 있다. 

 

대세는 '친환경', '탄소배출 제로'지만 선박은 예나 지금이나 화석연료로 움직인다. 전 세계의 어느 국가도 현재 기술론 해양을 건널만큼 거대한 전력 배터리를 만들기 힘들다. 당장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없으니, 세계는 대안으로 로터 세일을 연구하고 있다. 

 

양 대표는 2021년 로터 세일과 관련한 선급 기본승인을 획득했고, 지난해 말 시제품을 제작했다. 어쩌면 국내 처음으로 로터 세일 시스템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육상운송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길이 75m의 분리형 블레이드도 개발중이다. 20년이 지나면 풍력발전 폐기물로 땅에 묻히는 블레이드를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양 대표는 제주의 청년들이 이처럼 먼 앞을 내다봤으면 한다. 어떤 분야든 미래를 예측해보고, 스스로 삶을 설계했으면 한다. 제주인이 빛날 때 제주도 빛난다. 제주 땅에 사는 청년들이 스스로 나아간다면 제주의 앞날도 창창할 것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제주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제주에 보탬이 되고 싶다. 휴먼컴퍼지트가 따낸 모든 성과들은 언젠가 고향에 다다를 것이다. 양 대표는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늘 제주를 응원하고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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