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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조작 원형 훼손 논란? …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
"제주도가 된 여신 … 제주를 훼손하지 말라는 계시를 남긴 것"

 

설문대할망 이야기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는 바로 그의 '죽음'(?)이다.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대해선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설문대할망이 자식인 오백명의 아들(일명 '오백장군')을 위해 죽을 쑤다가 죽 솥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한라산 산정호수인 '물장오리'의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려고 들어갔다가 그곳에 빠져 사라졌다는 이야기 등이다.

 

신(神)의 죽음에 관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해오는 건 왜일까.

 

◇ 설문대할망 이야기 조작 논란

 

제주신화와 전설을 연구한 고(故) 현용준 제주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제주도 사람들의 삶'(2009, 민속원)을 통해 그 원인을 밝히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인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교수에 따르면 민속학자인 A씨는 과거 제보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1959년 7월 제주관광안내소 출판부 발행으로 책을 냈다.

 

책에는 '옛날에 한 할머니가 아들 오백형제를 데리고 거기에 살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일명 오백장군 이야기가 담겼다.

 

하지만 A씨는 5년 뒤인 1964년 5월 개정판을 냈는데, 문제는 같은 이야기를 '옛날에 설문대할머니가 아들 오백을 거느리고 살았다'로 바꿔 기술했다.

 

문장의 주어(主語)가 '한 할머니'에서 '설문대할머니'로 바뀌었고, 결국 이야기는 설문대할망이 아들을 위해 죽을 끓이다 죽 솥에 빠져 죽은 것으로 변했다.

 

 

현 교수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거녀전설(巨女傳設)이고, 오백장군 이야기는 화석전설(化石傳設)이다. 두 가지 전설은 별개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야기가 바뀐 과정에 대해 "전설의 조작이요, 학술적 범죄"라며 "조작된 책을 읽은 사람은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입에서 입으로 번져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어버릴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다.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의도적으로 조작됐다는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현재 많은 연구자는 현 교수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학술대회 '설문대, 세계의 여신들에게 길을 묻다'에서 김선자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동아시아 창세여신과 설문대할망의 형상'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현 교수의) 비판은 상당 부분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오백장군의 어머니는 설문대할망이 아니다. 문헌 자료들 속에서도 설문대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낳은) '할머니'라는 확실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오백장군 설화와 설문대할망의 연결은 설화의 변용을 보여주는 하나의 결과물은 될 수 있으나 설문대할망의 원래 신격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이야기가 결합한 새로운 이야기는 현 교수의 우려대로 이미 제주에 널리 퍼졌다.

 

도내 여러 관광지의 안내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책은 물론 현대소설 등에 등장하는 등 제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이러한 논란 속에 설문대할망 이야기와 그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떠한 사물이라도 잘 알고, 모든 일을 다 행할 수 있다'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의 죽음이란 설정 자체가 가능한 것일까.

 

김동윤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시 저서 '문학으로 만나는 제주'(2019, 한그루)에서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의도적인 조작을 거쳐 원형이 훼손됐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오늘날 이를 되돌리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오백장군 설화와 결합된 확장된 설문대할망 설화가 점차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명 '확장된 설화'가 여러 현대소설을 통해 수용되는 양상을 소개하면서 작가들이 더욱 풍성하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확장된 설화에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고 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비문학은 전달자에 따라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기도 하고 일부가 빠지기도 하는 등 이야기가 변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띤다.

 

지금도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야기 변용의 단적인 예로 현재 전해 내려오는 여러 설문대할망 이야기 중 설문대하르방의 등장과 그의 죽음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죽 솥에 빠져 죽는 건 설문대할망이 아닌 설문대하르방으로 바뀌어 있다.

 

이에 대해 박종성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설문대할망의 신원(伸寃)을 위하여'란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학술대회 주제발표를 통해 "설문대할망의 죽 쑤기 죽음이 설문대하르방의 죽 쑤기와 죽음으로 설정한 다른 전승이 이어짐으로써 설문대할망의 좌절을 대체하려는 전승집단의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설문대할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신(女神)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일부 제주 사람들의 염원이 이야기의 변형, 새로운 이야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 설문대할망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와 별개로 설문대할망의 죽음은 여전히 논쟁적이며 해석의 여지가 많다.

 

과거 연구자들은 여신의 죽음에 대해 신격(神格)의 상실 또는 여성 중심의 사회가 남성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는 변천 과정 등으로 해석하곤 했다.

 

또 '속옷 만들기 실패담'을 '99콤플렉스'라 표현하며 제주섬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고 해석해왔다.

 

설문대할망 이야기에서 할망은 제주 사람들에게 속옷을 한 벌 만들어주면 육지까지 이어지는 다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거인인 여신의 속옷을 만들기 위해선 100동의 명주가 필요했지만, 사람들은 99동밖에 모으지 못했고 결국 1동이 모자라 무산됐다.

 

육지와 섬을 잇는 '연륙교'(連陸橋)를 만들지 못해 제주 사람들이 오랫동안 섬에 갇혀 고생하게 됐다는 것이 일명 '99콤플렉스'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신화 연구가이자 작가 한진오씨는 저서 '모든 것의 처음, 신화'(2019, 한그루)에서 여신의 죽음과 99콤플렉스를 부정한다.

 

한 작가는 "설문대할망은 물장오리에 빠져들어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라산과 제주섬으로 변신한 것이다. 다리놓기를 거부한 여신은 변신을 통해 제주섬으로 화(化)했다"고 말한다.

 

그는 "제주섬이 된 여신은 뭍과 다른 제주, 자신의 신성이 고스란히 담긴 제주, 자신의 육신인 제주를 훼손하지 말라는 계시를 남긴 것"이라며 "'99콤플렉스'가 아니라 '제주다움의 보존'이 물장오리와 다리놓기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던져준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한 견해는 지난 12일 열린 설문대할망 페스티벌 학술대회에서도 등장한다.

 

'그런데 그때도 그런 말이 있었답니다. 만일 다리를 놓았더라면 호랑이 겨워서 못 살 거라고. 호랑이가 들어오거든. 헌데 제주도에 왜 범이 없어졌느냐…'(한국구비문학대계, 198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신호림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설문대할망 전설의 비극성 재고'란 발표에서 다리를 놓았다면 제주도로 육지 호랑이가 들어왔을 것을 우려한 제주사람들의 또 다른 인식을 예로 들었다.

그는 "육지에 대한 양면적 인식을 보여줬다고 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점은 제주도라는 섬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섬은 고립돼 있는 한계가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곳이라는 이중적인 시각이 설문대할망 전설을 통해 새롭게 마련된다"며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큰 환란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소전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는 토론을 통해 "겉으로만 보면 (제주가) 결핍의 한계를 인식하고 어찌할 도리가 없이 체념하는 듯하지만 속을 살펴보면 결핍이 있기에 역설적으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며 "이때의 결핍은 곧 미래의 희망을 담는 여백이 된다"고 지적했다.

 

강 강사는 "설화는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치열한 현실 인식의 철학을 함께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구비문학은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 인식 속에 치열한 변화의 속성을 띤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후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임을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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