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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껄끄러운 한중 관계 속 ... 한한령 강화 우려 확산
미중 반도체 전쟁 반사이익 ... 한국 아닌 대만·베트남 누려
군사안보만큼 경제안보 중요 ... 국익 위한 전략적 선택 필요

 

한국-중국 관계의 이상 징후로 여겨질 수 있는 일들이 최근 잇따랐다. 지난 5월 21일부터 중국에서 한국 포털 네이버에 접속이 되지 않거나 로딩 속도가 느려졌다. 어렵게 네이버에서 정보를 검색해도 첨부된 사진이나 영상, 댓글이 뜨지 않았다.

5월 23일에는 가수 겸 배우 정용화가 중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아이치이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베이징에 왔는데, 갑자기 촬영이 무산되면서 귀국했다고 중국 매체들이 보도했다. 일부 온라인 매체는 “한한령(限韓令, 한류 제한령)이 철회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중국에선 2018년 10월부터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등의 접속이 차단됐다. 그래도 검색과 메일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포털 자체의 접속에 문제가 생겼다. 중국은 2016년 한국이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자 한한령을 유지해왔다. 6년 만인 2021년 말 한국 영화 ‘오! 문희’ 개봉을 계기로 한한령이 완화되는 추세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미국·일본과 밀착하는 외교 노선을 내세우자 중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게다가 5월 19~21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과의 ‘가치 연대’를 확장하면서 러시아·중국에 대한 견제에 힘을 보태자 중국이 한한령에 다시 불을 지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국은 G7 정상회의 폐막일인 21일 미국 기업 마이크론을 제재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제품에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는 이유로 마이크론의 메모리반도체 구매를 중단시켰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매출 가운데 중국 비중이 11%에 이르러 실적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중국이 자국 시장을 무기로 미국을 압박한 것이다.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은 한미 관계에도 파장을 낳고 있다. 지난 4월 말 ‘미국이 한국에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한국 기업이 메우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5월 23일에는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한국도 (마이크론) 공백을 메우는 걸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중국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택을 요구받는 딜레마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미중 갈등이 본격화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반도체 수입시장을 분석한 결과, 중국산 반도체 점유율이 18.5%포인트 급락하며 4위로 밀렸다. 2000년대 이후 줄곧 1위였던 중국이 밀려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미국과 동맹 관계인 한국이 아니라 대만과 베트남이었다. 

대만은 점유율이 두배 가까이 늘며 1위를 차지했다. 베트남의 점유율도 네배 가까이 뛰며 반도체 생산기지 입지를 다졌다. 한국은 3위를 유지했지만, 점유율은 1.8%포인트 소폭 상승에 그쳤다. 미중 간 기술패권 다툼 와중에 한국은 열심히 미국에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미국에선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보지 못했고, 중국에선 반도체 판매가 급감했다. 

상대가 있는 외교무대에서, 특히 국제사회가 ‘자유 대 권위주의’ 체제로 분열된 신냉전 구도에서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적잖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기술 경쟁력 및 자원 확보와 공급망 재편 등 경제안보가 군사안보 못지않게 중시되는 상황이다.

외교의 현실적 목표는 국익이다. 국익은 동맹인 미국 편에 서서 보조를 맞춘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협력을 다졌으니 이제 중국과 어떻게 지낼 것인지 전략적으로 선택할 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G7 정상회의를 마치면서 “우리는 중국을 분리(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디리스킹)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양국은 지난 5월 11~12일 외교·안보 사령탑 간 회담을 진행했다.

G7 회의에서 미국과 대중(對中) 견제 보조를 맞춘 독일·프랑스 등 유럽국가 정상들도 앞서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다. 주요국들은 진영 다툼 와중에도 중국과의 선별적·전략적 협력을 꾀하는 실리적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생산하는 메모리반도체는 첨단무기에 필요한 시스템반도체가 아니다.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면서 외국(미국) 정부가 우리나라 기업의 제품 판매에 간섭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으로선 ‘정부가 민간기업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미국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G7 회의 참석 등 정상외교 성과를 자평하며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변화’가 핵심” “보다 더 많은 국가들과 가치·신뢰에 기반한 공급망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큰 난관은 ‘중국’과 ‘반도체’ 문제다. 대중 리스크 완화에 외교력을 동원해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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