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들의 무구(巫具)가 최근 연이어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 기증됐다.
지난 2022년 12월 별세한 고(故) 고행선 심방의 무구자료 80점과 지병으로 인해 무업활동을 중단한 강인순 심방의 무구자료 65점이 지난해 2월과 4월 각각 기증됐다.
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전통을 이어온 고(故) 서재 김윤수 큰 심방의 무구자료 33점도 지난 2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기증자료 목록에 올랐다.
무구는 심방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여러 도구를 두루 일컫는 말로, 심방 사이에 대를 이어 전승되곤 한다.
무구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또 이들 무구가 박물관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 박물관으로 향하는 무구…달라진 시대상
제주는 예부터 오랜세월 무속 신앙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산과 들,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마을을 형성했고, 자신과 가족·마을을 지켜주는 신을 모신 신당인 '본향당'(本鄕堂)을 중심으로 무사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다.
제주에선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이사철인 '신구간'(新舊間), 새해를 맞아 마을을 지키는 신께 감사의 세배를 올리는 신과세제(神過歲製),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전환기에 펼쳐지는 영등굿, 풍년 농사에 보답하기 위해 본향신에게 감사드리는 '시만국대제' 등이 1년을 주기로 마을마다 진행된다.
이외에도 어업·농업·목축 등 생업과 관련해 다양한 마을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개인·가정·마을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큰굿, 작은 굿의 형태로 신을 찾는다.
사실상 제주 사람들은 1년 12달 내내 신과 함께하는 삶을 이어왔다.
'삶이 곧 신앙'이었으며 심방은 신과 인간을 잇는 의례인 굿을 하며 소임을 다했다.
하지만 무속 신앙이 점차 약화하면서 심방은 그 설자리를 잃고 있다.
무속을 탄압하고 미신으로 간주하는 배척의 역사는 오래됐다.
조선시대 '음사'(淫祀·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라는 이유로 신당이 철폐되기도 했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미신타파 분위기가 퍼질 당시 심방들이 멩두를 비롯한 수많은 무구를 압수당하기도 했다.
시대가 변해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국가무형문화유산(1980),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2009)에 등재된 데 이어 제주큰굿이 최근 국가무형문화유산(2021)에 등재되는 등 보호를 받고 있지만 무속 신앙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심방들의 무구가 박물관에 기증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심방이 굿판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사용하는 무구인 '멩두'를 박물관 등 공공기관에 기증하는 행위는 과거와 달라진 시대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 "멩두는 차마 기증할 수 없었다"
최근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 기증된 무구자료 목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가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고행선 심방과 강인순 심방의 기증 목록에는 '멩두'가 포함돼 있지만, 김윤수 큰 심방의 기증 목록에는 '멩두'가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다.
굿을 할 때 입는 옷인 무복(巫服)과 북·설쇠·장구와 같은 무악기(연물) 등 여러 무구가 기증됐지만 유독 멩두만은 빠져 있었다.
멩두는 신칼, 산판, 요령을 말하며 심방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없어서는 안될 무구다.
김윤수 큰 심방의 무구를 기증한 아내 이용옥 심방(현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장)은 지난 23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차마 남편의 멩두를 기증할 수 없어 간직하기로 했다며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 심방은 "전시실 유리 진열장 안에 (남편의) 멩두가 담길 텐데, 감옥살이하는 것 처럼 '조상'을 가둬놓을 수 없다"며 "(멩두도) 살아 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바람도 쐬게 하고 (내가)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일도 하고…."
마치 멩두를 '조상'(祖上)이자, 김윤수 큰 심방의 혼이 담긴 '신체'(神體)와 같이 여기는 듯한 설명이다.
심방들 사이에 멩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용옥 심방은 멩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이랄까. 하늘이랄까…. 멩두로 모든 판단을 하고 모든 걸 다 한다. 멩두 없는 사람은 심방 자격이 없다"고 단언했다.
멩두는 신칼, 산판, 요령을 총칭하는 말로 세 가지 종류이기 때문에 흔히 '삼멩두'라고도 한다.
신칼은 2개가 한 쌍으로, 놋쇠로 만든 '신칼'과 백지를 가늘고 길게 여러 조각으로 잘라 달아맨 '신칼치메'로 이뤄져있다. 신칼은 점구이면서 심방이 춤을 출 때 사용한다.
놋쇠로 만든 산판은 엽전 모양의 천문과 술잔 모양의 상잔, 작은 접시 모양의 산대를 모두 일러 부르는 명칭이다. 천문에는 '천지일월'(天地日月) 또는 '천지문'(天地門)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요령은 심방이 손에 들고 흔드는 종 모양의 무구다. 요령은 심방이 신을 청할 때 흔들며 경우에 따라 본풀이를 구현할 때도 사용한다.
'신들의 나라', '신들의 고향'이라고 일컬어지는 제주에는 1만8000에 이르는 많은 신들이 있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들 신의 이야기가 바로 제주신화이며, 제주에서는 이를 '본풀이'라고 한다.
신의 근본(本)을 풀어낸다는 의미다.
제주에선 이러한 본풀이가 원형 그대로 굿 속에 남아 심방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다.
신들의 이야기인 여러 본풀이 중 초공본풀이에는 특히 멩두와 심방, 굿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남아 있어 연구자들이 주목한다.
◇ "신화적 전거를 갖춘 신성무구 '멩두'"
초공본풀이는 양반집 딸이 중과 관계해 낳은 세 아들 본멩두, 신멩두, 삼멩두의 이야기다.
삼형제는 성장해 '젯부기 삼형제'라는 별칭을 얻게 되는데, 이는 서당에서 온갖 심부름을 하며 귀동냥으로 글을 듣고 재 위에다 글씨 쓰는 연습을 하느라 항상 재를 묻히고 다녔기 때문이다.
삼형제는 훗날 삼천선비들과 함께 과거를 치르는데, 선비들의 갖은 모략과 방해에도 장원급제를 한다.
하지만 삼천선비들의 시기와 질투로 어머니가 깊은 궁에 갇히자 삼형제는 벼슬을 버리고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멩두를 제작해 굿을 하고 무업조상(巫業祖上, 심방의 조상)인 삼시왕(三十王)이 된다.
또 삼시왕이 된 삼형제는 어머니를 가둔 삼천선비 중 한 사람인 유정승의 딸(유정승따님아기)의 팔자를 그르치게 해 최초의 심방이 되도록 했다.
삼멩두는 초공본풀이에 나오는 '젯부기 삼형제'를 가리키는 말이자 심방의 조상이며, 심방의 핵심 무구다.
멩두의 의미와 중요성을 연구한 강소전 제주대학교 강사는 '제주도 심방의 멩두 연구' 논문에서 "신화적 전거를 갖춘 신성무구인 멩두는 심방에게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며 "나아가 무속신앙이 무당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신앙인 점을 생각하면 심방의 멩두는 제주도 무속을 이해하는 핵심요소이자 출발점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강소전 강사는 "제주도의 무속에서는 심방마다 각각 자신만의 멩두를 장만하지 않고 대대로 전승해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한다"며 "기존에 다른 심방이 사용하던 멩두를 그대로 물려받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이어 "만약 사정이 여의찮거나 개인적 형편이 있다면 기존 멩두를 본으로 삼아 새로운 멩두를 제작하는데 본이 있으므로 이것 역시 전승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윤수 큰 심방의 집안은 대대로 무업을 이어왔다.
그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정호 심방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멩두가 있으며 이를 '증조부 불휘공 조상 멩두'라 일컫는다.
'불휘'는 '뿌리'의 옛말로 김윤수 큰 심방 친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업의 뿌리가 되는 멩두라는 뜻이다.
이 멩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다 한때 제주를 벗어나 다른 지역 지방대학 교수에게 기증되기도 했지만, 김윤수 큰 심방이 이를 다시 찾아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에서 보관하고 있다. 현재 칠머리당 영등굿을 할 때 이 멩두가 사용된다.
김윤수 큰 심방의 멩두는 그가 29살 때 수양어머니인 고군찬 심방의 멩두를 본메로 하여 만들었으며, 현재 아내인 이용옥 심방이 물려받았다.
이용옥 심방은 "심방인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멩두를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몰라 보자기에 싸서 몰래 우리집이나 사무실 현관에 놓고 가는 경우가 있다"며 "이 멩두를 함부로 우리가 사용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해녀박물관, 교육박물관 등에 기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제주의 무속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여러 무구를 박물관에 기증해왔다. 하지만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멩두가 박물관으로 가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전했다.
김나영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사는 "심방들이 무업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박물관 등에 심방들의 무구류 기증이 이전보다 많아졌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 학예사는 "제주도 내에 활동하고 계신 몇몇 심방들의 이름만 거론되고 있고, 그외 일정 역량을 갖춘 심방들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는 현실"이라며 "신화의 섬 제주라고 하지만, 무속신앙인 본풀이를 노래하는 심방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