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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참여단 구성기준도 모호, 성비 숫자도 의문 ... '숙의'가 아닌 '설득'의 장이 내린 결론

 

단 53명의 생각이다. 제주도가 지난 9월 말 연 행사에 대해 그들이 평가했다. '차 없는 거리 걷기' 행사 이야기다. 이들이 '대체로 만족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년 행사에 힘을 실었다.  

 

지난달 28일 베스트웨스턴 제주호텔에서 진행된 '차 없는 거리 걷기 행사' 도민 평가회 결과다. 제주도가 지난 6일 공개했다. 도민참여단 53명이 행사 운영과 개선점을 논의했다.

 

도민참여단의 구성은 이랬다. '차없는 거리 걷기' 행사에 직접 참여한 사람이 44.2%, 참관한 사람이 9.6%,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46.2%다. 지역별로는 제주시 거주자가 69.2%, 서귀포시 거주자가 30.8%였다.

 

성별로는 여성이 75.9%로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앞선 비율도 의심스럽지만 여기서부터 의문이 증폭된다. 일단 53명의 75.9%에 해당하는 똑 떨어지는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 여성이 40명이어도, 아니면 41명이어도, 반올림을 감안해도 해당하는 비율은 나오지 않는다. 남·여가 아닌 '중성'인 사람이 끼었다는 소린가?

 

연령대로는 50대가 33.3%로 가장 많았고, 그 외에 60대 29.4%, 30대와 40대가 각각 11.8%, 20대가 9.8%, 70대 이상이 3.9%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도민참여단 구성비와 조건 등에 대한 숱한 의문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의문인건 이 53명의 대표성이다. 이 53명이 어떻게 선정됐는지, 그들이 도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주도의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단순히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인원을 선정했다는 것 외에 다른 조건은 밝히지 않았다. 평가 결과의 객관성과 대표성을 또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더 있다. 평가회는 '숙의형 기법'을 도입했다고 도는 밝혔다. 그러나 숙의형 토론 방식이 실제로 다양한 도민들의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할 수 있는지는 여러 여론조사 전문가의 말을 빌어도 의문이다. 참여단의 성향이나 의제에 대한 인식의 쏠림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이 방식은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를 차단하는 역기능도 있다. 

 

 

이제 구성기준도, 대표성도 모호한 이들이 내린 평가결과다. 평가 결과에 따르면 걷기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해 87%가 공감했고, 차량 통제에 찬성하는 비율은 79.2%로 나타났다. 또 행사 장소로는 도심권 대로를 선호하는 의견이 32.7%를 차지했다. 

 

이를 근거로 제주도는 내년도 행사의 방향과 예산책정을 결론내렸다.

 

제주도는 내년도 예산안에 이 행사를 위해 3억원을 편성했다. 행사 기획·운영 용역에만 2억4240만원을 책정, 대부분의 돈을 쓴다. 나머지는 행사 기획, 사회자, 교통통제요원, 안전요원 등의 인건비로 4620만원, 공연비로 1200만원, 각종 임차비와 인쇄비, 광고비, 보험료 등이다. 올해 쓴 돈 8000만원 보다 3.75배나 더 많은 돈을 쓸 예정이다.

 

도는 이 행사에 대한 필요성을 전국 비만율 1위, 걷기실천율 16위라는 건강지표 개선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의 대폭 증액이 실제로 도민들의 건강 증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아직 어떤 통계나 근거자료도 제시한 바 없다.

 

백번 양보해 '걷기문화 확산' 정도로는 그저 들어줄 만하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가 따른다. 도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신뢰다. '책임행정'에 대한 가치공감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지난 9월 말 행사 당일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교통 혼잡과 상인들의 불만, 주민들의 불편이 이어지며 원성이 쏟아졌다.

 

조명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오전에 찾아오기로 한 손님들이 모두 취소되거나 오후로 미뤄졌다"며 "행사로 인해 오전 장사는 완전히 망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행사 당일 주유소는 아예 문을 닫았고, 가구점은 개점 휴업 상태였다. 드라이브스루로 운영되는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도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

 

당시 상인들은 "도로를 막아놓고 걷기 행사를 하면 우리는 어떻게 장사를 하라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것만 문제였던 건 아니다. 공무원과 각종 기관 직원들이 대거 동원된 것에 대해서도 언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도는 행사에 사전 신청을 요청하는 공문을 모든 부서와 산하기관에 발송했다. 공문에는 '가족과 함께 임직원들이 걷기 행사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기 바란다'는 요청과 함께 '행사 참여 인원에 대한 사전 수요조사'를 명목으로 기관별 참여 예정 인원을 회신에 첨부할 것을 요구했다.

 

제주도 한 공무원 A씨(29·여)는 "독려 형태라고 하지만 토요일에 상사, 동료 눈치를 보며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공무원도 "자발적 참여보다는 형식적인 참여로 보는게 맞다.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하소연했다. 물론 기관들의 체험 부스나 홍보 부스 운영에도 공무원들이 동원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은 평가회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평가항목에도 없다. 행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자리에서 중요한 쟁점이 배제된 것이다. 게다가 말은 '숙의형'이었지만 평가회는 그보단 부정여론을 잠재우는 '설득의 시간'인 면이 강했다.

 

평가회에 참여한 한 인사는 "평가회의 초반 행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많았지만 도 관계자 등으로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긍정 여론으로 끌고 가는 분위기였다"며 "오히려 긍정적 의견을 내놓도록 설득하는 의견이 평가회를 채웠다"고 말했다.

 

걷기 행사에 참여한 김모씨(36·삼도동)는 "행사 당일 많은 부스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도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적었다"며 "솔직히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건강지표 개선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노력은 박수칠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도민불편과 예산낭비를 통해서라면 생각해 볼 일이다. 더욱이 그 근거가 대표성이 의심스러운 도민참여단의 결론이라면 말이 안된다. 게다가 고작 53명 인원에다 남·여 성비 비율마저 의심스러운 데이터라면 신뢰는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퇴색될 수 밖에 없다. 대표성과 객관성을 갖춘 제대로 된 평가를 거치지 않는 공론화 시도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에 다름 아니다. 그저 막무가내일 뿐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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