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6 (금)

  • 맑음동두천 -6.4℃
  • 맑음강릉 -0.9℃
  • 맑음서울 -6.4℃
  • 맑음대전 -2.4℃
  • 맑음대구 -2.0℃
  • 맑음울산 -1.8℃
  • 구름조금광주 -2.1℃
  • 맑음부산 -0.4℃
  • 흐림고창 -2.8℃
  • 구름많음제주 2.5℃
  • 맑음강화 -6.7℃
  • 맑음보은 -4.6℃
  • 맑음금산 -3.2℃
  • 구름조금강진군 -0.1℃
  • 맑음경주시 -2.6℃
  • 맑음거제 -1.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3) ‘왕 중의 왕’ 자처한 오지만디아스
군주처럼 행동하는 현대 권력자들 ... 이집트 최고 권력자의 허망한 최후

위대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천신만고 끝에 창조한 피조물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몰골도 흉측하고 무엇보다 ‘지적 능력’이 전혀 없어 보이는 ‘괴물’이다. 자신의 창조물에 실망한 박사는 결국 그 괴물을 스스로 부정하고 없애버리려 한다. 

 

 

신(神)이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온갖 흉측한 짓들로 날 새는 줄도 모르자 차라리 홍수로 절멸(絶滅)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프랑켄슈타인 박사도 괴물을 쇠사슬에 묶어 실험실에 가둔 채 실험실을 폭파해버린다.

‘위대한 인간’을 무력화하고 살아남은 ‘위대한 괴물’은 실험실을 탈출해 숲속 오두막에서 손녀와 사는 맹인 노인의 집에 숨어든다. 괴물은 그곳 헛간에 숨어 맹인 노인이 손녀에게 자상하게 글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서 말과 글을 깨친다. 괴물에게 지적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의 교육 방식이 틀려먹었던 것이다.

노인이 세상을 등지고 숲속에 홀로 숨어사는 사연은 밝히지 않지만 그의 방대하고 수준 높은 서가(書架) 목록을 보면 아마도 상당히 교육받은 노인인 듯하다. 괴물은 그중에서도 퍼시 비시 셸리의 시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를 펼쳐들고 그중에 한 구절을 감격적으로 읽는다.

◆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시


“나는 왕 중의 왕인 오지만디아스다. 모든 영웅들이여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the kings: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한마디로 하면 “다 끓어!”다. 오지만디아스는 영국 최고의 낭만파 시인이었던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ㆍ1792~1822년)를 대표하는 시(詩)다.

오지만디아스는 세계를 호령한 이집트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파라오 람세스(Ramsses) 2세의 그리스식 이름이고, 괴물이 읊조린 대사는 모든 권력자들의 허무맹랑한 과대망상을 비웃는 퍼시 셸리의 조롱이다. 람세스 대왕이 그토록 자신의 절대권력에 자만했지만 종국에는 사막에 뒹구는 잔해가 될 수밖에 없듯이 모든 존재가 벗어날 수 없는 필멸(必滅)의 운명을 노래한 시다.

영화 속 괴물이 자신을 창조하고 기고만장하고 오만한 인간 프랑켄슈타인을 오지만디아스의 시를 동원해 조롱하는 듯하기도 하고, 불사不死의 존재이자 압도적인 지적, 신체적 능력을 지닌 자신이야말로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보다 위대한 진정한 오지만디아스라는 선언같이 보이기도 한다.
 

 

기억의 오만함을 내려놓는다면, 원작 소설에서 이 구절을 본 기억은 없다. 아마도 델 토로 감독의 상상력이 퍼시의 이 시 구절을 영화 속에 끌어온 모양인데,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는 듯하다.

퍼시 비시 셸리는 17세이던 프랑켄슈타인 원작자 메리 셸리(본명 메리 고드윈)와 스위스로 사랑의 도피를 결행한 유부남(당시 22세)이자, 남작(男爵) 귀족 가문의 영국 낭만주의 대표시인이다. 

그는 영국 문학사상 3대 시인이자 옥스퍼드 대학에서 무신론을 주장하다 퇴학당하지만 코웃음치고, 17살 메리와 눈이 맞아 스위스로 튀어버리자 아내가 템스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도 태연하게 셸리와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고, 29세에 나폴리에서 자가용 요트를 몰다가 물에 빠져 낭만적으로 요절한 낭만의 끝판왕이기도 했다. 

8년간에 걸친 짧은 인연이었지만, 델 토로 감독은 메리가 뜨겁게 사랑한 이 천재시인의 사상이 문학소녀인 메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상상으로 퍼시의 시 구절을 영화 속에 가져온 모양이다. 부부였으니 ‘지적 소유권’ 다툼은 없을 듯하다.

‘오지만디아스의 역사’는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정복하고 황량한 사막에 머리만 남아 뒹구는 오지만디아스의 석상을 발아래 두고 조롱하고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오지만디아스라고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한다. 그런 나폴레옹도 세인트헬레나섬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어갔다.

◆ 끝나지 않는 오지만디아스의 역사

 

오지만디아스를 조롱하며 또다른 오지만디아스가 탄생하고, 그 오지만디아스 역시 티끌처럼 사라지고 그 황량한 자리에 또 다른 오지만디아스가 찾아와 “모든 영웅들아, 나를 보고 절망하라”고 외친다. 퍼시는 그렇게 권력의 허무함을 노래한다.

며칠 전 대통령이 역사학자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는 참으로 느닷없이 위서(僞書)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해 “증거가 없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고 단정해도 좋냐?”며 ‘환빠 논란’을 소환해서 시끄럽다.

환단고기를 읽으면 가슴은 웅장해진다. 혹시 대통령이 얼마 전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미국에게 당한 설움이 국력 차이에서 비롯됨을 절감하고, 우리도 웅혼한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웅비하자는 의미에서 환단고기를 소환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카터 행정부 시절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라는 우리네 중장년층에게는 아마도 귀에 익을 인물이 있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을 주관한 외교 대통령이었으니 사실상 세계를 주물렀던 인물이었다. 우리에게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핵폭탄’급 충격을 안겨줘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그는 미국의 ‘세계 대전략’ 구상을 「거대한 체스판(Grand Chessboard: American Primacy and its Geostrategic Imperativesㆍ1997년)」에 풀어내어 외교정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미국이 두는 ‘거대한 장기판’ 위에 놓인 ‘졸(卒)’에 불과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우리 대통령이 이번 관세협상에서도 3500억 달러 ‘조공’을 바치면서 크게 변하지 않은 그 사실을 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고대사를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역사관으로 재단하고 나서는 것이 오지만디아스처럼 느껴져 당황스럽다. 일시적으로 국민들 가슴 웅장해지라고 ‘국뽕’ 주사 놓는 것이라면 그 또한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듯하다. 많은 국민이 국뽕에 취해 심신이 미약해진 국가에 희망찬 미래가 있을까 싶다.

우연일까. 같은 날 생중계된 국토교통부 업무보고회에서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질문을 퍼붓는데 대답이 신통치 않자 “말이 길다… 나보다 아는 게 없다”고 ‘무지막지하게’ 질타해 소란스러움이 가중된다.

문득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절대군주의 어법처럼 느껴진다. 혹시라도 황량한 모래사막에 나뒹구는 오지만디아스의 잔해를 딛고 선 또 다른 오지만디아스를 보게 될까 왠지 조심스러워진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