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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살다] 임병도, 음대생에서 하루 2만 독자 거느린 파워블로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친다”…내 이름은 ‘아이 엠 피터’

 

고교 졸업 후 음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겉멋일 뿐이었다. 군 제대 후 그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다.

 

IT업계에서 활약하던 그는 이젠 ‘전업블로거’가 됐다. 인터넷 블로그 ‘아이엠피터’를 운영하는 파워 블로거(Power Blogger)다. 지금은 하루 평균 1만5000~2만 명 정도가 그의 블로그를 방문한다. 한 달에는 50만~70만 명이 방문한다.

 

시사·정치를 다루는 ‘1인 미디어’지만 앞으로 정식 언론사 간판을 달고 현장을 누비는 ‘기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그의 이름은 ‘I'm Peter’로 불린다. 하지만 엄연히 부모님이 지어준 그의 이름은 따로 있다. 임병도(42).

 

사무실은 필요 없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제주에 내려와 살고 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놀 수 있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미국 유학 도중 IT 만나다

 

임씨는 평범한 고교생이었다. 그렇다고 뭐 하나 딱하니 잘하는 것도 없었다. 음대생인 작은 형 친구들이 멋있어 음악을 해보려고 했다. 졸업 후 예술전문대학에 갔다. 전공은 ‘작곡’. 하지만 대학생활은 재미가 없었다. 술 마시고 친구들과 놀고…. 결국 휴학원이라는 서류를 대학에 던지고 나와 버렸다. 대학 졸업 후 비전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휴학 후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다 군에 입대했다. 군 생활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제대로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제대 후 유학 준비를 하고 27세가 되던 해 숙부가 사는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주립대학에 입학했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국제무역)를 공부했다. 실리콘밸리가 인근에 있어 IT를 접하게 됐고, 졸업 후 인터넷마케팅(웹에이전시, 웹 기획 등)을 하게 됐다. 드디어 딱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같은 일을 했다. 3년을 살았지만 일본은 오래 살 곳이 못 됐다. 그래서 다시 귀국했다. 10년 만의 귀국이다. 친구가 운영하는 IT업체에서 잠시 일을 하게 됐다.

 

 

#주변의 만류에도 꿈에 그리던 귀촌

 

하지만 늘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귀국해서도 떠나지 않았다. 귀국하면서부터 ‘전업블로거’ 생활도 병행한 탓에 ‘도시를 떠나도 일은 계속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곳 저곳을 물색하다가 제주를 선택했다. 강원도는 조용하긴 하지만 첩첩 산중이고 어디든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제주는 자동차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게다가 공항도 가까웠다. 갑자기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공항이 가까워야 했다. 그리고 산과 바다 등 모두 다 있다.

 

40세로 접어든 2010년 11월 그의 아내가 둘째를 가져 만삭일 때 서울을 떠나 인천에서 밤배에 차와 가족들의 몸을 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를 ‘미쳤다’고 했다.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어디를 가겠느냐’, ‘멀쩡한 직장 놔두고 어딜 가느냐’ 등. 하지만 그의 아내는 흔쾌히 따라줬다. 그는 제주사람으로서 제주에서 인생을 보낼 것이다.

 

-블로그는 언제부터 했나? 처음부터 시사·정치블로그였나?

 

“2002년 미국 유학시절부터다. 주로 미국과 일본에서의 개인적인 삶의 얘기나 미국과 일본에 대해 문화와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에 대해 글과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댓글에 ‘미국을 찬양하냐’, ‘친일파냐’라는 악플(악성댓글)이 올라왔다. 편견을 가지고 본 것이다. 그래서 2008년부터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파고들었다. 그때부터 시사와 정치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시사·정치 분석이라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하루에 1건 글을 쓴다. 약 14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 중 10시간은 자료를 찾는데 소비한다. 글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논리적이고 근거자료가 필요하다. 자료를 찾다가 이해가 안 되면 또 다른 자료를 찾는다. 데이터, 녹취록, 법안 발의자, 예산 등등. 자료를 찾다보면 문제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100% 원하는 해답을 얻지는 못한다. 그럴 때는 그 자료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찾기 시작한다. 매일 글을 쓰다보면 예전에 찾아 놓은 자료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글 쓸 소재는 미리 생각해두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같은 경우 4~5월부터 준비했다. 여론 동향은 SNS를 통해서 확보한다. 정당에서 보내주는 보도 자료에서도 아이템을 얻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보도 자료를 보내준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보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새누리당 홈페이지를 방문해 자료나 아이템을 얻는다. 아마 내가 새누리당 홈페이지를 가장 많이 방문할 것이다.”

 

 

-하루 일과를 모두 컴퓨터 앞에서 보내겠네요?

 

“아침 4시30분에 일어나 전날 쓴 글을 마무리(교정, 오류검색 등) 한다. 7시 되면 송고하고 9시까지는 SNS에 포스팅한다. 중간에 아들 등교도 시켜준다. 오후 2시부터는 다시 자료를 찾는 일이 시작된다. 중간에 SNS도 하고 원고도 쓴다. 빨리하면 밤 10시에 자료 찾기를 끝내 새벽 2~3시에 잠을 잔다. 모자란 잠은 낮 시간이나 저녁 시간에 자둔다. 블로거모임에서 2~3개월에 한 번씩 세미나를 할 때면 가서 강의도 하고 강의도 듣는다. 그 때에는 밤새 써놓고 가던지, 아니면 갔다 와서 집중해 쓰기도 한다.”

 

-왜 ‘아이엠 피터’인가?

 

“특별한 의미는 없다. 원래는 ‘임 피터’(Im Peter)였다. 내 이름의 성 ‘임’(Im)에 지인들이 붙여준 미국명 ‘피터’(peter)를 붙였다. 지인들이 내 이름을 영어로 부르는 것이 어렵다며 ‘피터’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사람들이 ‘임 피터’라고 안 부르고 ‘아이엠 피터’(I’m Peter)라고 부른 것이 지금의 블로그 이름이 됐다. 이젠 아이디(ID)로도 쓴다. 악플러들도 많아서 온라인에서는 실명을 쓰지 않는다. 하루 평균 200~300개의 댓글이 달린다. 많을 때는 1000개가 달린 적도 있다. 악플도 있지만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블로그는 콘텐츠 생산 영역이고 SNS는 소통 공간이다. 지인들은 방명록이나 트위터에 글을 남긴다. 페이스북에서는 이웃 블로거와 소통을 한다. 트위터에서는 성향이 같은 사람끼리 논쟁도 벌인다.”

 

-전업블로거다. 돈벌이는 되나?

 

“처음에는 후원금을 받지 않다가 지금은 대놓고 받는다. 내가 쓴 글에 호응을 하고 정당하게 주는 것이니까 받는다. 하지만 누구에게 구애받지 않고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매달 정기적으로 고정계좌로 후원해 주는 사람들은 20~30명 정도 된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리면 결제해주는 사람도 50~60명 정도 된다. 벌이는 후원금이 1/3, 원고료 1/3, 나머지는 블로그 관리 등 여러 일을 한 대가다. 제주에서 충분히 살 정도의 월급쟁이 수준은 된다.”

 

 

-어떨 때 자신이 블로거라는데 대해 자부심을 갖는가?

 

“자부심까지는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내가 쓴 글이 언론사 기사에 인용돼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을 치는 경우 기분이 좋다. 또 언론사 기사에는 없는 글을 내 블로그에만 있을 때도 그렇다. 복잡한 사안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쓰려고 한다. 그런 글은 독자들의 호응이 높다. 이미지와 데이터를 많이 쓰는 이유도 쉽게 설명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글을 5~6 줄 쓰고 다음에는 반드시 이미지나 데이터를 넣는다. 하지만 오류가 나오거나 반응이 없으면 속상하다. 최근에는 정수장학회 관련, 7대 자연경관, 뉴라이트 관련 글들이 많이 읽혔다.”

 

-7대 자연경관 선정 의혹을 제일 먼저 제기했다고 들었다.

 

“지난해 3월30일 ‘제주-세계7대 자연경관 투표는 대국민사기극’이라는 제목의 글을 처음 올렸다. ‘이런 것을 굳이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민으로서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요금, 투표방식, 행정적인 것 등이 문제였다. 민간인 차원에서 했다면 좋았을 텐데, 혈세를 들인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지질공원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에는 신경을 안 쓰면서 7대 자연경관에 매달리는 게 어이가 없었다. 지금도 제주도 글을 쓰면서 재정이 마이너스라고 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황당해 한다. 7대 자연경관에 투자할 돈이면 복지에 투자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감사나 행정소송, 국민청원 등도 좋지만 진실을 주민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왜 끝까지 밝혀내야 할 부분인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버릇 나쁜 아이의 버릇을 고치도록 해야지 가만 놔두면 안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서울에는 한 달에 1~2번 다닌다. 모두 일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은 장점이 없다. 갈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제주에서 인생을 보낼 것이다. 가끔 지인들이나 언론사 사람들이 ‘서울에서 일하면 좋지 않겠냐’라고 하지만 지금보다 좋아질 것이 없다고 본다. 송당리에는 일부러 왔다. 제주 동부지역이 제일 개발이 안 됐고, 학교도 좋다고 생각했다. 올해 입학한 아이도 학교에 빠르게 적응한다. 전교생이 40여명 밖에 없어 형들의 이름도 다 알고 다닌다. 동네분들도 아무런 대가없이 주변을 정리해주고 맛있는 것도 가져다준다.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가하는데 동네 젊은 사람들과도 어울리기도 한다. 이곳에는 외지에서 들어온 분들도 꽤 있다. 지금은 임대료 없이 살고 있지만, 약 100평 정도의 땅을 마련해 집을 짓고 텃밭도 가꾸며 살고 싶다. 블로그도 계속 운영할 것이다. 앞으로 2~3년 뒤에는 언론사 타이틀을 단 1인 미디어로 본격적으로 취재를 하려고 한다. 그 때도 ‘아이엠 피터’다. 데이터 중심에서 현장 중심으로 가는 것이다. 블로그는 자꾸 도태된다. 변화하지 않으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네티즌이 떠난다. 하지만 70세까지 만이다. 항상 신경을 곤두서면서 살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어떤 방향을 원하는지 인식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힘들고 감각도 떨어진다. 그래서 70세까지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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