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수 논설위원 관덕정과 제주목관아는 원도심 뿐만 아니라 제주 역사를 아우르는 중심지다. 국가에서 각각 보물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러 볼 가치가 충분한데도 외면 받고 있다. 여기서 그 이유를 다 파헤칠 수는 없다. 다만 외국인들에게 좀 불친절한 것은 그럴듯한 영어 홈페이지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브로슈어와 현장의 영어 안내문에 오류가 꽤 많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몇 가지만 추려 보겠다. 우선 관덕정 앞의 영문 안내판에는 the local officer(지방공무원) 신숙청의 지도 아래 관덕정이 세워졌다고 다소 엉뚱하게 써놓았다. 어떻게 일개 지방공무원이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자 보물로 지정될 정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한글에 그의 직위는 안무사(按撫使)로 되어 있는데, 왕의 ‘특사’로 지금의 제주도지사인 목사에 부임했던 것이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수한 여건 때문에 왕이 직접 제주목사를 임명했으며 행정적인 업무 외에 군사적인 책임도 겸하게 하여 만호, 안무사, 병마수군절제사, 방어사, 절제사 같은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겼다. 따라서 the local officer는 행
1611년 3월 어느 날 보물선이 제주 바다에 나타났다. 독립왕국이던 유구국(지금의 오키나와)이 일본에 먹힌 후였다. 24개월 전 유구국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왕과 왕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갔다. 제주에 나타난 보물선에는 유구국 왕자가 타고 있었다. 기록을 토대로 이야기를 꾸며보면 다음과 같다. ▲ 해상왕국 유구의 무역을 주도했던 아지 계층. 1879년 일본에 완전히 병합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옛날 어느 큰 배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제주의 산지 바닷가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사람은 100명이 넘었다. 이들 가운데 제일 높은 이가 관가에 불려 갔을 때 사또가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옷을 잘 차려입은 젊은이가 대답했다. “저는 유구국의 왕자입니다.” 사또는 먼 곳에 있는 왕자가 이곳까지 온 게 궁금했다. 왕자가 말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왕이신 제 아버지를 잡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슬퍼서 보물을 갖고 일본에 들어가 왕을 풀어 달라고 하려 배를 타고 떠났다가 이 곳으로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사
▲ 강민수 논설위원 사흘에 걸친 탐라국입춘굿놀이가 끝나니 제주목관아 일대가 다시 조용해졌다. 장수 수(帥)라고 적힌 사령관의 황색 깃발이 저 홀로 찬바람에 펄럭일 뿐이다. “과거 제주의 중심이던 제주목관아가 복원됐지만 운영방향을 잃으면서 외국인 관광객 투어코스에서도 외면 받는 ‘죽은 문화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월초 제주의 어느 신문은 이곳이 도정감사에 오른 일을 이렇게 보도했다. 행사도 프로그램도 마땅한 게 없고, 있다고 해도 몇 년째 똑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운영 적자폭은 매년 늘었다.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 목사가 행정사무를 보던, 지금의 도청과 같은 곳으로 1993년 복원되면서 국가사적에 지정됐다. 탐라시대부터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만큼 유서 깊은 원도심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나 발길은 뜸하다. 그렇다면 관광객들은 왜 이곳을 외면할까? 복원된 유적지가 대개 그렇듯이 박제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문부터 읽어보기가 벅차다. 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 전문가들이나 아는 고고학과 서지학을 동원하며 이 '장대한' 복원공사를 어떻게 성사시켰는지에 대한
제주성은 내성-탱자성-해자-외성의 철벽 구조였다 유배인 조정철은 제주 여인 홍윤애와 애달픈 사랑만 한 것이 아니라 1811년 목사로 부임해 와서는 제주성의 정비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특히 그는 성 밖의 이중성, 즉 외성(外城)을 새로 둘렀다. 이런 엄청난 사실은 '비변사등록'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의아한 일이다. 조정철은 왕에게 "탐라의 내성(內城)과 바깥 지성(枳城 : 탱자성)은 예로부터 없었던 성의 체제이며 천험(天險)의 요지"였다며 상당히 훼손된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린다. 본성을 내성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가 성 밖에 성을 한 바퀴 더 둘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에 착수하기 전에 왕의 허락을 구한다. "성첩(城堞)은 예전과 같이 그대로 두고 바깥에 성을 쌓아 그 사이에 12개의 과실 정원을 설치하여 모두 귤과 유자를 심고 다시 성과 정원을 주관할 사람을 두어 수리 보호하고 감수하는 일을 맡기게 하소서." ▲ 100여 년 전의 지적도에서 확인되는 내성, 탱자성, 해자, 외성 성첩이란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병을 쏘거나 방어하는 곳이다. 기존
기와 한 장이 나를 조각 맞추기 게임으로 몰아넣었다. 원도심 답사가 심각한 취미로 자리 잡은 지난 가을 어느 날이었다. 대개 혼자 발품을 팔다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같이 다녔는데, 그 날의 동행은 한옥 전문 대목장인 친구 성문순이었다. 조선시대 유사시 총사령관의 작전본부였던 터에 축대는 물론 기왓장이 무더기로 널려 있었다. 잘 만들어진 초석과 기둥도 방치되어 있었다. 그날의 수확은 수성소임신이월(守城所壬申二月)이라 새겨진 기와를 찾아낸 것이다. 제주성을 지키는 어떤 건축물이 임신년 이월에 지어졌다는 이야기다. ▲ 수성소임신이월이라고 새겨진 기와 사진을 본 윤봉택 선생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좋은 자료를 발굴했다"며 "제주성에 수성소가 있었다니 흥분된다. 대부분 수성소는 큰 성에만 있는데, 이 자료로 인하여 제주성에도 수성소가 있었음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 말했다. 매장문화재 발굴 신고를 하라는 권고를 잠시 미루고 추가답사와 관련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이와 비슷한 발굴은 이미 두 번 있었지만 조각이 나서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었다. 제주목관아 터 발굴 현장에서 성소임신이월(城所壬申二月)이라는
제주에는 새해가 세 번 있다. 올해는 1월 1일 신정, 2월 4일 입춘, 2월 19일 설날이다. 일년을 15일 단위로 나누어 표시한 24절기의 첫날인 입춘을 제주사람들은 새해가 아니라 새철 드는 날이라 부른다. 봄 춘(春)이라고 쓰나 이 날의 날씨는 대개 춥다. 칼바람에 폭설까지 동반해 일년 중 가장 추운 날도 있다. 입춘이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탐라국 입춘굿 놀이. [제이누리 DB] 우리나라에서 지금의 입춘은 입춘대길(立春大吉)이나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축원의 글을 써 대문에 붙이는 정도로 가볍게 지난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인삿말이다. 입춘의 기원문(입춘첩)은 꼭 입춘대길 뿐만 아니라 각자 맘에 드는 구절을 써 내걸면 된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에게 입춘맞이는 아직도 각별하다. 입춘 사흘전 까지 약 일주일 동안 섬 전체가 들썩인다. 열에 한두 집이 이사를 하는, 세계 어디를 가도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사 뿐만 아니라 헌 데 고치고 묵은 것은 버린다. 또 새 것을 만들거나 들이는 이 시기를 신구간(新舊間)이라 하는데 묵은 해와 새해의 교체기라는 뜻이다
▲ 이순신의 대해전을 그린 영화 <명량> 이순신 장군의 집무실이자 회의실이던 운주당(運籌堂)은 한산도에 복원되어 있다. 운주는 '사기(史記)' 의 운주유악(運籌帷幄)에서 나온 말로 군막 속에서 전략을 짠다는 뜻이다. 운주당을 지켜본 유성룡은 항상 열린 소통의 공간이었다고 썼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건물을 세웠다. 이순신은 이곳에서 밤낮으로 장수들과 함께 전투를 연구했는데, 아무리 지위가 낮은 병사라고 하여도 군대에 관한 일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모든 병사들이 군대에 관련된 일을 잘 알게 됐다. 또한 이순신이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장수들과 의논하여 계책을 결정했으므로 전투에서 패하는 적이 없었다." 이순신이 관직을 박탈당하자 원균이 이 운주당을 꿰어차 앉았다. 같은 장소라도 누가 운용하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유성룡이 회고한다. "원균은 자기가 사랑하는 첩과 함께 운주당에 거처하면서 이중 울타리로 운주당의 안팎을 막아버렸다. 여러 장수들은 그의 얼굴을 보기가 드물게 되었다. 또 술을 즐겨먹고서 날마다 술주정을 부리고 화를 내며 형벌을
본지 강민수 논설위원이 그동안 연재해온 ‘강민수의 영어진단’을 당분간 쉰다. 새로운 연재에 천착하기 위해서다. 20여회 예정으로 원도심 활성화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법을 모색한다. 애독을 권한다./ 편집자 주 충청남도 홍성에 전해오는 이야기야. 마침내 최영 장군이 탐라국을 정벌하게 됐어. 당시 탐라국의 왕은 중국여자로 키가 팔 척이요, 힘이 장사인데다 탱자성을 갖고 있어서 누구도 그 곳에 쳐들어가기가 곤란했대. 최영 장군이 도착해보니 과연 듣던 바와 같이 탱자나무 숲이 성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뚫고 들어갈래야 들어갈 수가 없더래. ▲ 최영 장군<두산백과> 어떻게 해야 이 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고심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신령이 나타나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내일부터 억새풀의 씨를 따다가 연에 매달아서 탱자성에 뿌리도록 하여라. 그리하면 내년에는 그 곳에 억새풀이 무성할 것이니 가을에 억새풀이 말라 불이 붙기 쉽게 될 때에 불을 지르고 성을 공격하라.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몸에 구리판을 두르고 쳐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명심하도록 하라”라고 말하고는 최영 장군이 말할 새도 없이
본지 강민수 논설위원이 그동안 연재해온 ‘강민수의 영어진단’을 당분간 쉰다. 새로운 연재에 천착하기 위해서다. 20여회 예정으로 원도심 활성화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해법을 모색한다. 애독을 권한다./ 편집자 주 ▲ 탐라문화광장 조감도 1일 국토교통부에서 조례 표준안이 하나 나왔다. 이른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원 도정이 원도심 활성화 정책을 펼 때 참고하라는 것이다. 내용을 훑어보면 우선 주민 참여를 강조한다. 사업 대상지역에는 주민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인데 마땅한 일이다. 원도정은 또 관련된 주요 정책을 심의하기 위한 지방도시재생위원회, 전담 행정부서, 그리고 지원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다만 도시재생위원회는 기존의 도시계획위원회가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민관 협업 중간지원조직인 지원센터는 민간법인이나 단체 등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여 지자체의 부담을 덜어주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제주도의 도시계획위원회는 소위 관피아의 오명을 쓰고 있는 조직이다. 이들을 원도심 살리기에 개입시킬 경우 촌스러운(?) 지역은 싹 쓸어 재개발하고 재건축하자는 방향으로 갈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공무원을 영어로는 public servant라고 한다. 공적인 머슴이니 곧 공복(公僕)이다. 조금 격상시켜 government official이라 쓰기도 한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서양에서도 당연히 시험을 친다. 오늘은 서양의 공무원 시험문제를 몇 개 입수해 풀어본다. 1번. 당신이 막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여자 분이 세금을 내러 들어왔다면 당신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If you are about to take your lunch break and a female taxpayer comes in, what should you address her?) (A)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Can I help you, madam?) (B) 저 쪽에 기다리세요. (Wait over there.) (C) 담당자가 출장을 갔네요. (The officer is out of town now.) (D) 점심시간이라 오후에 오세요. (It's a lunch time. So, please come again in the afternoon.) 정답은? 없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이므로 그 여자에게 말을 걸 필요가 전혀 없다. 시간에 맞추어 오지 않은 그 여자가 잘못이
▲ 제나라 '춘추오패' 환공(왼쪽)과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 영어 문맥에서 라이벌(rival)이라고 하면 선의의 경쟁자가 아니라 앙숙에 가깝다. 제주어로는 ‘돍광 지넹이’ 사이다. 사이가 이럴진대 감히 라이벌을 등용할 수 있는 포용력과 자신감을 가진 지도자는 흔치 않다. 2005년 미국의 사학자 도리스 굳윈(Doris Goodwin)은 책을 한권 펴냈다. “Team of Rivals"라는 제목의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전기였다. 직역하면 “라이벌들의 팀” 정도가 될 것이다. 저자가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라이벌들을 내각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정치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었던 정적(political opponents)들을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 재무장관(secretary of the treasury), 법무장관(attorney general) 같은 요직에 앉혔다. 가히 파격적인 인사였다.엄청난 반대에 대해 링컨은 이렇게 설득했다. “내각에는 당에서 가장 강한 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된 여객선 세월호(SEWOL). [Joins=뉴스1] 최근 우리나라 고3 수험생들은 누구나 재난대응(disaster response)에 대한 글을 영어로 읽었을 것이다. 수능특강 3강 6번 지문인데, 첫 문장이 이렇다. “재난 대응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Disaster response is becoming increasingly complex with each new event.) 이렇게 더 복잡해지는 이유를 이 글의 작자는 점점 더 많은 기관들이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재해현장(the scene of an earthquake or flood)에 몰려들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리고 수많은 단체들이 식량 지원(food aid), 대피소(shelter), 의료 지원(medical assistance), 그리고 재건(rehabilitation)을 위해 많은 것을 제공한 사례를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단체들이 제각각 일하는 경향(tend to work independently and in an uncoordinated manner)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