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과 제주목관아는 원도심 뿐만 아니라 제주 역사를 아우르는 중심지다. 국가에서 각각 보물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러 볼 가치가 충분한데도 외면 받고 있다. 여기서 그 이유를 다 파헤칠 수는 없다. 다만 외국인들에게 좀 불친절한 것은 그럴듯한 영어 홈페이지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브로슈어와 현장의 영어 안내문에 오류가 꽤 많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몇 가지만 추려 보겠다.
우선 관덕정 앞의 영문 안내판에는 the local officer(지방공무원) 신숙청의 지도 아래 관덕정이 세워졌다고 다소 엉뚱하게 써놓았다. 어떻게 일개 지방공무원이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자 보물로 지정될 정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한글에 그의 직위는 안무사(按撫使)로 되어 있는데, 왕의 ‘특사’로 지금의 제주도지사인 목사에 부임했던 것이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수한 여건 때문에 왕이 직접 제주목사를 임명했으며 행정적인 업무 외에 군사적인 책임도 겸하게 하여 만호, 안무사, 병마수군절제사, 방어사, 절제사 같은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겼다. 따라서 the local officer는 행정수장인 governor이나 총독 개념인 governor general로 바꿔 써야 한다. 제주목사도 지방공무원의 한 사람 아니었냐고 따진다면 어쩔 수 없다.
관덕정 앞의 돌하르방 안내문에는 이런 석상이 ‘성문 앞’에 있었다고 하여 at the castle gate라고 번역했으나 제주 역사에 이런 문은 없었다. Castle은 높은 벽과 탑을 쌓은 서양식 건물로, 성보다는 성관(城館)에 가깝다. 동양식의 벽만 있는 성은 그냥 wall이나 fort, fortress라고 부른다. 만리장성도 Great Wall of China라고 한다. 따라서 제주읍성은 Fortress Wall of Jeju 정도로 쓰면 좋고, 성문은 fort gate 또는 fortress gate 라고 쓰면 되겠다.
관덕정 옆 깃대에는 황색 깃발이 펄럭인다. 장수 수(帥)라는 한 글자가 적혀 있어 황수기(黃帥旗)라고도 하는데, 제주목사가 총사령관을 겸했기 때문에 이런 깃발이 게양되었던 것이다. 황수기는 색깔을 뜻하는 yellow flag 보다 장성기(將星旗)라는 기능을 살려 general flag 또는 admiral flag로 고쳤으면 한다. 그런데 이곳의 짧은 안내문은 제목부터가 황수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그 깃발을 올리기 위한 시설물인 두 받침대, 즉 기간지주(旗竿支柱)에 맞춰져 있다. “이 기간지주는 제주목 방어사의 황수기를 게양하는 깃대의 받침기둥이었다”는 것인데, 황수기라는 상징물에 비하여 상당히 가치 있는 유물이라면 모를까 본말이 전도된 진술이다.
게다가 기간지주의 영문은 flagpole pillar(깃대기둥)라고 잘못 써놓았다. 기간은 깃대이고 지주는 이 깃대를 받치기 위해 돌로 만든 한 쌍의 지지대인데, 기둥 주(柱)라는 글자를 별 고민 없이 사전적으로 pillar라고 옮겨 버린 것이다. Pillar는 집을 떠받치는 기둥에 써야지 이런 종류의 지지대와는 상관이 없다. 기간지주는 flagpole supports(깃대 지지대)라고 바꿔 써야 한다.
또 총사령관(general 또는 admiral)을 장교급인 military officer로 수직 강등시켜버리는 등 다음과 같은 횡설수설이 되고 말았다. “This was a supporting pole to hoist the yellow flag under the command of a military officer in Jeju during the Joseon era.” (이것은 조선시대 제주에서 한 장교의 명에 따라 황색기를 게양할 수 있게 지지대 역할을 한 하나의 깃대였다.)
이 엉성한 문장을 고친다면, 기간지주는 한 쌍이므로 복수를 써서 “These were used to support the flagpole to hoist the admiral flag representing the presence of a Jeju governor during the Joseon era.” 정도면 될 것이다.
제주목관아에 들어가기 전에 안내판을 보면 제목을 Jeju Mok Office라고 써 놓았다. 2015년 브로슈어에는 JEJUMOK-GWANA, Jeju Mok-Gwan-a라고 제각각으로 표기해 놓았다. Jeju Mok Office라는 표현부터 다소 황당스럽다. 행정구역의 단위였던 ‘목’을 굳이 쓸 필요가 없는데, 서울을 번잡하게 the Seoul Special City(서울특별시)라 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Office는 주로 사무실이나 집무실이라는 뜻이므로 이 곳 전체의 격에 맞지 않는다. 이 안에 가면 목사의 집무실을 비롯한 여러 office가 있기는 하다. 제주목관아는 지금으로 치면 도청이므로 기능을 살려 Old Jeju Provincial Government라고 하던지, 건물과 시대를 살려 Jeju Government House of Josen 으로 고쳐 쓰면 좋겠다. House를 단수로 한 것은 목사의 집무실 외의 모든 건물을 부속 사무실로 본 것이며, 탐라시대부터 행정 중심지였지만 조선이라고 한 것은 사실상 조선시대의 관청만 부분적으로 재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제주목관아에 들어가는 외대문을 outside gate라고 적어 놓았는데 경계 밖의 문이라는 뜻이 되고 말기 때문에 main gate(정문)라고 바로잡아야 한다. 굳이 바깥쪽이라는 방향성을 강조하고 싶다면 outer gate라고 쓴다. 이보다 심각한 오류는 이 외대문의 이름을 탐라포정사로 잘못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누각이 있는 대문을 문루(門樓)라고 하는데 이곳은 진해루(鎭海樓)라는 종각을 겸하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성문을 열고 닫을 때 종을 쳐서 시각을 알리던 곳이다.
재현된 종각에는 종 대신 북이 올라 앉아 있다. 이 종각 아래 외대문에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홈페이지에는 탐라순력도와 탐라방영총람에 “목관아 정문으로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청와대 정문에 청와대라고 쓰여 있다고 그 문의 이름을 청와대라고 우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탐라포정사는 제주도청의 조선식 이름이었다. 1699년(숙종 25) 제주목사 남지훈이 써 붙였는데, 사(司)라는 글자만으로도 관아(官衙)를 뜻한다.
관아는 조선의 지방행정기구의 청사가 위치한 ‘마을’로 읍치라고도 불렀다. 관아에는 목사의 근무지인 동헌, 즉 지금의 제주목관아를 비롯해 외부에도 수많은 관청이 있었다. 과거 성안의 삼도2동 전체가 다 관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포정사(布政司)는 감영(監營), 영청(營廳), 동헌(東軒)과 같은 말로 조선 시대에 목사가 직무를 보던 관아였다. 따라서 외대문의 다른 이름은 포정사 문루라고 해야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제주목관아라는 이름보다 탐라포정사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이 경우에도 영문은 Jeju Government House of Tamna로 족하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문헌이 제주를 탐라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관아로 들어가면 여기저기 ‘올라가지 마세요’를 4개 국어로 써 놓았다. No Admitting이라는 이 짧은 영어는 틀렸다. No Admittance라고 바꾸더라도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뜻이므로 원래 의도와는 안 맞다. 굳이 영어로 쓰려면 No Step이나 Do Not Step On이라 할 것이나, 결국 만국 공통어인 발자국에 X 표시 하나면 족하다.
교방지라는 곳은 관기(官妓)와 악공(樂工)을 가르치던 터이다. 여기서 기생을 호스티스(hostess)로 잘못 표시해 놓았다. 어떤 행사를 주최하는 안주인이 hostess이다. 가끔 접객업에 있어 비행기나 배의 여승무원, 식당이나 클럽의 여종업원 등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한국 개념의 접대부인 호스티스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식 기생 게이샤는 워낙 유명해져 그냥 geisha라고 쓴다. 조선기생을 Korean geisha라고 쓰면 많이 억울할 것이므로 kisaeng이라 쓴 다음 professional entertainer라고 토를 달면 될 것이다.
더 이상 언급하기에는 지면이 짧다. 이런 정도의 교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 안내문의 한글 텍스트부터 재미가 없다. 제주목관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적지 안내판이 그렇듯이 박제된 건물에 대하여 고고학과 서지학을 동원하며 학자나 공무원 마인드로 작성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복원을 완료했는지에 대한 자화자찬은 듣고 싶지 않다. 나 같은 소시민은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뭘 했었는지가 궁금하다. 기본 틀이 이러니 외국어 설명은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이 두 곳만 아니라 제주 전 지역의 안내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초중학교 아이들 수준의 관람자 시각에서 무엇을 빼고 넣어야 할지, 사실을 바탕으로 어떻게 정보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면 좋을지 깊은 고민을 새로 해야 한다. 고고학이나 역사책 수준의 안내문은 전문가의 연구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 번역도 다만 생활영어 좀 한다는 사람이나 어느 대학 영어전공 교수가 아니라 역사의 맥락을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당국에서 이런 일에 소홀하다면 국제니 자유니 하는 제주의 비전이나 도시재생 같은 프로젝트는 다 허울에 불과하다. 원도심 만들기는 가지고 있는 것부터 제대로 전달하는 노력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소통이다.
☞강민수는? =어느 대기업 회장실과 특급호텔 홍보실장을 거쳐 어느 영어교재 전문출판사의 초대 편집장과 총괄임원으로 3백여 권의 교재를 만들어 1억불 수출탑을 받는데 기여했다. 어린이를 위한 영어 스토리 Rainbow Readers 42편을 썼고, 제주도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관한 제주문화 콘텐츠 전국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대안 중심의 환경운동가로 제주 최초의 마을 만들기 사례인 예래생태마을의 입안자이며 펭귄수영대회 등의 이벤트 개발자이기도 하다. 현재 제주의 한 고등학교 초빙으로 영어를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