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왝 더 독(Wag the Dog)’은 배리 레빈슨(Barry Levinson) 감독의 1997년 작품이다. 레빈슨 감독은 1988년 ‘레인맨(Rain Man)’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고, ‘내추럴(The Naturalㆍ1984년)’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ㆍ1987년)’ 등의 영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더스틴 호프먼, 로버트 드 니로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불러 모아 만든 작품이다.
![개가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데, 꼬리가 개를 흔드는 기이한 현상을 왝 더 독이라고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7/art_17515902033339_782027.jpg?iqs=0.6838982845357872)
영화의 장르 자체가 ‘블랙 코미디’이자 ‘정치 풍자극’이고 영화의 줄거리도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 재선을 위해 젖 먹던 기운까지 짜내던 대통령(마이클 벨슨 분)이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엉뚱한 사고를 치고 만다. 사고도 사고 나름이지 백악관 견학을 온 걸스카우트 소녀 한명을 데리고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다.
이 황당한 추문이 새어나가고 당연히 재선은 물 건너간 꼴이 된다.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참모진들은 머리를 쥐어짠 끝에 당대 최고의 ‘정치 선전, 홍보 기술자’ 브린(Breanㆍ로버트 드 니로 분)을 ‘해결사’로 초빙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찾아주거나,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제공해 주는 해결사 업계 최고 고수로 소개된다.
브린은 소위 ‘스핀 닥터(spin doctor)’다. ‘스핀 마스터(spin master)’라고도 한다. 당구에서 ‘고수’가 당구공에 ‘스핀(회전)’을 잔뜩 ‘먹이면’ 당구공이 90도 정도가 아니라 아예 180도로 방향을 바꿔 거꾸로 가기도 하는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까지 만들어주는 것이 스핀 닥터다. 권력자들 주변에는 이런 홍보의 고수들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브린은 선거의 ‘압도적 패배’를 ‘압도적 승리’로 바꿀 수 있는 처방을 내놓는다. 느닷없이 알바니아(Albania)라는 동유럽 작은 나라가 미국에 군사공격을 감행했다는 뉴스가 터진다. 알바니아라는 나라가 미국을 공격했다는 백악관발(發) ‘가짜뉴스’는 미국인을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게 한다. 알바니아와의 전쟁위기가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더니 마침내 알바니아와 전쟁이 터졌다고 보도한다.
대통령의 걸스카우트 성추행 뉴스는 점차 희석된다. 이제 대통령의 성추문을 완전 삭제하기 위해서는 알바니아와의 생생한 전투장면을 뉴스에 띄워야만 한다. 브린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스탠리 모츠(Stanley Motssㆍ더스틴 호프먼 분)를 섭외한다. 아마 모츠는 전쟁영화의 거장 스필버그를 모델로 하는 듯하다.
미국은 다행히 땅이 넓어 인적 없는 불모지 사막이 많다. 모츠는 사막에 알바니아 시가지를 재현한 대형 세트장을 짓고 할리우드 최첨단의 CG 기술을 총동원해 생생하고 처절한 전투영화 한편을 촬영해 신문과 방송에 제공한다. 전투장면의 박진감과 사실감은 스필버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연간 국방비만 1000조(千兆)원을 지출하는 미국 국방부가 제작투자를 책임지니 제작비 걱정도 없다.
![영화 왝 더 독이 개봉한 직후 클린턴의 성추문 사건이 터졌다. [더스쿠프|연합뉴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7/art_17515902030156_854622.jpg?iqs=0.9171941133790358)
야당은 대통령과 백악관의 이 ‘협잡질’을 눈치채고 반발한다. 대통령의 걸스카우트 성추행 사건을 물고 늘어지지만, 뉴스에서 미국 해병대가 ‘알바니아’라는 곳에서 ‘스필버그’표(標) 피비린내 나는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장면들에 넋이 나간 국민들의 관심은 성추문 따위로 쉽게 다시 옮겨가지 않는다. 거리마다 건물마다 성조기가 휘날리며 애국심이 들끓는다.
이 어마어마한 알바니아와의 전쟁에 비한다면 대통령이 걸스카우트 소녀 하나를 덮쳤다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성추문을 잊어버리는 것이 곧 애국이 된다. 결국 브린은 ‘불가능한 것은 없다(nothing is impossible)’는 그의 지론을 증명해내고, 걸스카우트 소녀를 덮친 대통령은 8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한다.
영화 제목 왝 더 독은 ‘개를 흔드는 개꼬리(The tail wagging the dog)’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당연히 개가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데, 꼬리가 개를 흔드는 기이한 현상을 가리킨다. 왝 더 독이라는 말은 더 나아가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좀 더 중요한 것으로부터 덜 중요하거나 아예 의미 없는 것으로 돌려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덜 중요한 일에 모든 관심이 쏟아지고 정작 중요한 일은 묻혀버리거나 잊히고 마는 황당한 상황을 일컫기도 한다. 개꼬리가 개를 흔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스핀 닥터의 일이다. 그저 한바탕 재미있는 블랙코미디 영화였으면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왝 더 독은 무척이나 예언적인 영화이기도 했다.
1997년 영화가 개봉한 지 한달 만에 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 터지고, 곤경에 몰린 클린턴 행정부는 1998년 느닷없이 아프리카 수단(Sudan)의 알 시파(Al-Shifa)라는 제약공장에 미사일을 퍼붓는다.
그 공장에서 신경가스를 제조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병원 소유주가 알카에다 테러조직과 연계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석연찮은 이유를 댄다. 영화 왝 더 독의 스토리라인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이 영화가 개봉했던 1997년 우리나라에서도 왝 더 독과 빼닮은 소위 ‘총풍 사건’이 터졌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대쪽 판사’라던 이회창 후보가 북한 측 인사에게 휴전선에서 ‘총질’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영화처럼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사건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8일 오전 대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고검에 마련된 내란특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더스쿠프 | 뉴시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7/art_17515902026348_87dca3.jpg?iqs=0.7913664586136228)
누군가 조금 덜 떨어진 스핀 닥터가 기획해서 망신만 당한 대단히 저급스러운 블랙 코미디 한편이었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지난해 말 비상계엄에 앞서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대북 전단을 뿌려 남북 긴장고조를 유도해 비상계엄의 명분을 확보하려했다는 의혹이 불거진다.
내란보다 더 끔찍한 외환(外患) 의혹이다. 계엄 주모자의 수첩에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의 공격을 유도한다는 계획이 적혀있었다고도 한다. 1997년 총풍 사건을 떠올리면 ‘설마’ 하다가도 ‘혹시…’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네의 스핀 닥터들이 영화 속의 브린보다는 수준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가슴 한번 쓸어내리고 묻어두고 지나갈 일은 아닌 듯하다. 해충을 박멸하는 것이 해충에게 보복하는 게 아니고 쓰레기 치우는 일이 쓰레기에 보복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