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에드워드 노튼)은 이름도 없는 화자話者로 등장한다. 그는 자동차 리콜 전문가로 일한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1년 중 족히 300일쯤은 비행기를 타고 전국의 사고현장을 찾아 자동차 결함을 조사한다. 어쩌면 최악의 직업이다. 태평양을 건너 아예 낮과 밤이 통째 바뀌는 게 차라리 낫다. 서너 시간의 시차 변화는 정말 고약하다. 주인공은 당연히 만성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의사를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고 수면제 처방을 부탁한다. 의사는 불면증 정도의 고통은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고통은 아니라면서 비협조적이다. 수면제 처방전을 써주는 대신 ‘(고환암으로) 고환을 제거한 남자들의 모임’이라는 묘한 곳에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그 사람들을 보면 진짜 못 견딜 고통이란 어떤 건지 알게 될 거라고 한다. 주인공은 잠도 안 오는 밤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고환 제거남’들의 모임에 간다. 다행히 모임 관계자가 ‘고환 제거’ 사실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고환을 제거당한 사내들의 좌절감과 고통의 생생한 현장을 목격한다. 고환을 제거하고 거대한 유방을 가진 한 사내가 주인공을 부둥켜안고 고통에 오열한다. 그러나 주인
젊은이들이나 일부 특정 취향의 관객들로부터 ‘숭배’에 가까운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독특한 영화를 ‘컬트 무비(cult movie)’라는 장르에 묶어 집어넣는 모양이다.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파이트 클럽(Fight Club·1999년)’은 가장 성공적인 컬트 무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컬트 무비는 기존의 지배적인 주류문화와 사회질서에서 이탈하거나 저항하고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류문화의 관점에서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불온한’ 영화일 수도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무기력증에 빠진 한 남자가 자기 애인의 어머니와 불륜에 빠지는 내용을 담은 ‘졸업(Graduation ·1967년)’이 196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가하고 숱한 논란에 불을 지폈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컬트 무비라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은 졸업만큼이나 충격을 안겨준 컬트 무비로 기록된다. ‘햇살 가득하고 번듯한 곳’이 주류사회라고 한다면 ‘어둡고 칙칙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은 비주류들의 공간이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모든 장면들은 어둡고 칙칙하고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된다. ‘파이트 클럽’의 창시자이자 리더는 비누를 만들어 파는 타일러
말이나 글이나 영화나 대개 그 구성은 서론·본론·결론으로 나뉜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는 듯하다. ‘스토리텔링’에서 결론은 지금까지 말하거나 보여줬던 것들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든지 가장 상징적인 말이나 장면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파고(Fargo)’의 결론은 엽기적이고 난장판으로 일관한 서론·본론과는 다르게 제법 따뜻하다.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의 아내납치 청부사건으로 평화롭던 브레이너드 시에는 쓰나미 같은 ‘파고’가 휩쓸고 지나간다. 그 사건과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한 경찰서장 마지(Marge)의 삶에도 뭔가 트라우마 같은 상처가 남았을 법한데 의외로 마지는 쉽게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뜻밖에도 영화 내내 존재감 ‘0’에 수렴하던 노엄(Noam)이 장식한다. 청둥오리 ‘덕후’ 노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잠옷을 입고 가장 편한 자세로 침대에 기대고 리모컨을 쥔 채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가며 TV를 보고 있다.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딱히 달리 둘 곳 없는 ‘시선’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다. 눈은 화면에 두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는 게 분명하다. 만삭의 마지 역시 가장
영화 파고(Fargo)는 ‘스릴러 코미디’ 장르로 분류돼 있다. 아마도 미국 관객들에게는 극도로 감정을 억누르고 폭발 직전의 상황에서도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비현실적이다 못해 코믹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아내와 장인에게 쌓인 불만이 많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상냥하게 대한다. 제리는 장인이 자신이 힘들게 기획한 사업 아이템을 날로 먹을 때도 그 부당함을 정면으로 따지지 않고 어정쩡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용을 쓴다. 어깨가 축 처져 장인의 사무실을 나와서야 주차장의 자신의 차를 걷어차고 두들겨 패면서 분노를 폭발할 뿐이다. 장인도 제리가 못마땅하지만 결코 직설적으로 표현하거나 드러내놓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항상 웃으면서 뼈를 때린다. 브레이너드 시의 여자 경찰서장 마지(Marge) 역시 용의자들을 탐문하고 심문하면서 단 한번도 ‘엄·근·진’한 표정을 짓지 않고 상냥한 말투와 어색하나마 미소를 놓지 않는다. 고교 동창생인 야나키타가 카페에서 자신이 유부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옆에 붙어앉아 마지의 어깨를 팔로 감싸는 ‘수작’을 걸어도 물을 끼얹거나 뺨을 갈기지 않고
자신이 일하는 자동차대리점 정비부에서 일하는 인디언 ‘빅 풋’에게서 소개받은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와 칼 쇼월터(Carl Showalter)를 만나본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못내 찝찝하다. 게어는 영혼이 가출한 듯한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죽어라 담배만 피워댄다. 과묵한 건지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반대로 쇼월터라는 인물은 입에 모터라도 달아놓은 듯 쉬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아무리 짧은 문장도 f***이 안 들어가면 문장 구성이 안 된다. 한 집 건너 커피숍처럼 한 단어 건너 f***이다. 이런 자들에게 아내를 납치해달라는 청부를 하려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다. 이들에게 도무지 믿음이 안 가면 불합격처리하고 다른 청부업자를 찾아보는 게 맞기는 한데, 그럴 형편이 아니다. 분명 선택할 자유는 있는데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인터넷에 ‘아내 납치해줄 성실하고 용모단정한 분 급히 구함, 4만불 사례함’이라는 광고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찝찝한 2인조에게 퇴짜를 놓고 나면 남은 선택지는 장인에게 뜯어내려던 4만불을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돈 많은 장인 웨이드 구스타프손(Wade Gustafson)에게 사업자금 75만불을 빌려달라고 어렵게 부탁하지만, 장인은 못 미더운 사위의 얘기를 들어보지 않은 채 손사래부터 친다. 제리가 ‘이게 다 당신의 딸과 손자를 위한 것’이라고 장인의 아킬레스건도 건드려보지만 장인은 “내 딸과 내 손자는 내가 알아서 먹여 살릴 테니 자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고 무지막지하게 잘라버린다. 제리는 장인의 태도와 멘트에 깊은 ‘빡침’을 느끼고 아내를 납치해서 몸값으로 8만불을 뜯어내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와 칼 쇼월터(Carl Showalter)를 접선해서 ‘발사 버튼’을 누르고 돌아온 날 저녁 뜻밖에도 장인으로부터 “만나서 그 사업 얘기를 해보자”는 연락이 온다. 제리는 아내 납치 작전을 취소하기로 하고, 부푼 마음으로 장인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장인은 그의 널찍한 집무실에서 그의 재정 고문이자 투자의 귀재인 유대인 스탠(Stan)과 버티고 앉아 제리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세워 둔 채 본론으로 들어간다. 장인: “스탠에게 자네 계획을 물어보니 수익성이 충분하다고
영화 속에서 최악의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와 칼 쇼월터(Carl Showalter)가 남편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로부터 청부받은 대로 제리의 아내를 납치하기 위해 브레이너드(Brainerd)라는 작은 도시의 경계를 넘어 들어갈 때, 도시 입구에 웬 거대한 조형물과 표지판이 화면 가득 찬찬히 클로즈업된다. 그 표지판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폴 버니언(Paul Bunyan)의 고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home of Paul Bunyan).” 폴 버니언은 “주민들이 감사한 마음에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아주는 곡식 한 됫박만 받고 미국 대륙의 울창한 산림을 개간했다”는 전설적인 벌목꾼이자 ‘노동 영웅’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브레이너드시 경계에서 폴 버니언이 그의 충직한 조수인 자그마한 ‘푸른 소(Blue Ox)’를 데리고 큼지막한 도끼를 어깨에 얹고 환하게 웃고 있다. 물론 미국 도처에 조형물이 있는 폴 버니언의 고향이 ‘브레이너드시’란 근거는 없다. 중국인들도 모든 ‘좋은 것’의 원조는 무조건 자기네라고 한다. 우리네 정치인들도 훌륭했다는 자기 선조 어르신이 지나
남편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가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와 칼 쇼월터(Carl Showalter)에게 발주한 ‘아내 납치’ 청부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다. 수임료 4만불도 그럭저럭 적당해 보인다. 이 미션이 분명 북한 영변에 침투해 플루토늄을 탈취해 오라는 톰 크루즈급 ‘미션 임파서블’은 아닐 텐데, 이 간단한 ‘미션’이 6명이나 죽어나가는 ‘블록버스터’급 범죄액션물이 되는 것이 황당하다. ‘납치 청부’라는 일을 하다보면 누구든지 게어와 쇼월터처럼 그토록 폭력적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게어와 쇼월터가 태생적으로 원래 폭력적이었기 때문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청부업자에게 일을 맡기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난장판이 되고 마는 걸까. 아니면 제리가 좀 더 ‘착한’ 청부업자를 고용했다면 ‘해피엔딩’이 가능했을까. 이 궁금증은 매우 오래된 정치의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정치에 발을 담그면 누구나 부패하고 ‘입벌구(입만 열면 거짓말이란 속어)’하는 악당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정치의 영역이란 본래 그런 기질이 있는 사람들만 찾아가는 곳일까.”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던 SF 대작 영화 ‘듄(Dune)’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
영화 ‘파고’에는 2명의 진정한 ‘빌런’이 등장한다. 한명은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내기 위해 자기 아내를 납치해달라고 청부하는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다. 또 한명의 ‘빌런’은 노르웨이계로 보이는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다. 영화 속에서 대사도 몇마디 하지 않는 그는 누구라도 신경을 건드리면 닥치는 대로 죽여버린다. 코언 감독은 영화 ‘파고’에 빌런 2명을 등장시킨다. 한명은 청부살인업자에게 아내 진(Jean)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제리 룬더가드다. 제리는 자동차대리점 판매사원답게 상냥하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붙임성도 좋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실한 사회인으로 보인다. 그렇게 고객을 상냥한 미소를 머금은 채 꼼꼼하게 벗겨먹는다. 장인과 아내를 향한 불만도 속으로만 ‘빌드업’할 뿐 한번도 드러내지 않는다. 결코 충동적이지 않다. 장인과 아내에게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아내를 납치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심지어 청부업자들의 비위도 건드리지 않고 예의 바르다. 이처럼 제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일삼지만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못한다.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모습이다. 소시오패스는 윤리의식은 없
코언 형제 감독은 영화 속에 그들다운 매우 짧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운 시퀀스를 배치한다. 미네소타주의 브레이너드(Brainerd)라는 작은 시의 여자 경찰서장 마지(Marge)는 고속도로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용의자들과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2명의 나이 어린 창녀를 찾아가 용의자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데 그 장면이 매우 신선하다 못해 코믹하기까지 하다. 군더손(Gunderson)이란 성(姓)을 보면 마지는 노르웨이계 이민자다. 통통한 어린 창녀들도 영화 속에서 성을 밝히진 않지만 특유의 억양으로 짐작건대 노르웨이계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코언 감독은 북유럽, 특히 ‘얀테의 규율(Laws of Janteㆍ난 남보다 특별하지 않다)’이라는 노르웨이ㆍ덴마크 특유의 문화적 규범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의 배경을 굳이 생소한 ‘미네소타’로 정하고 주인공에게 노르웨이 이름을 부여한 듯하다. 미국 미네소타주는 인구 570만여명 중에서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주축으로 한 북유럽 이민자들이 30%가량을 차지하는 특이한 주다. 북유럽의 ‘얀테의 규율’이 미국에 이식된 곳이다. 창녀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떳떳하지 못한 직업이다. 그러나 이 직종에 종사하는 ‘노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아내를 납치해서 장인에게 몸값을 받아내려는 창의적인 사기극을 벌인다. ‘전대미문’의 일인 만큼 이 사건을 맡은 미네소타의 한적한 소도시 브레이너드(Brainerd)시의 순박하고 임신 7개월에 몸도 무거운 ‘아줌마’ 여자경찰서장 마지 군더슨(Marge Gunderson)에게 조금은 버거워 보인다. 선입견과 편견이 발동한다. 경찰관 1명이 사살당하고, 그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남녀 2명이 역시 사살당한 ‘강력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경찰관이 죽기 직전에 남긴 이 말뿐이다. “임시번호판도 없는 자동차를 발견했다. 검문하겠다.” 마지는 그 번호가 자동차대리점에서 아직 출고하지 않은 자동차에 붙어있는 표식번호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제리의 자동차대리점에 찾아가 ‘수석 세일즈맨’인 제리를 만나 “최근에 사라진 자동차가 없었느냐”고 탐문한다. 유난히 해맑고 단정해 보이는 제리는 선한 미소를 머금고 “그런 일 없다”고 친절하게 응대한다. 이름을 보아하니 제리(Lundegaard)는 마지(Gunderson)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ㆍ덴마크계 사람이기도 하다. 마지는 선해 보이는 ‘고향사람’ 제리를 100% 신뢰한다. 대신 그
장인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아내 납치 자작극을 벌이기로 한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납치청부업자를 구하는 일이다. 제리는 아내 납치를 설계할 순 있지만, 자신이 직접 아내를 납치하기는 간단치 않다. 그래서 그는 나쁜 일을 할 청부업자와 접촉한다.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힘을 합치면 우리는 혼자는 할 수 없는 큰일을 할 수 있다.” 테레사 수녀님이 남긴 좋은 말씀이다. 제리 룬더가드는 이 말씀을 ‘아내 납치’란 나쁜 일에 실현한다. 테레사 수녀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힘을 합쳐 꼭 좋은 일만 하는 건 아니다. 좋은 큰일보다는 나쁜 큰일을 위해 뭉치기도 한다. 아내 납치청부업자를 ‘공채’로 뽑기는 불가능하다. 제리는 자신이 일하는 자동차 대리점에서 자동차 수리를 맡고 있는 빅풋(Big Foot)에게 납치 청부업자 ‘천거’를 부탁한다. 인디언 후예인 빅풋은 인디언 전사처럼 무표정하고 과묵하게 자기 할 일만 한다. 왠지 믿음이 간다. 제리가 생각하기에 빅풋은 전과기록이 있는 만큼 ‘어둠의 세계’에도 인맥이 있으리라 짐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