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분명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전 유럽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또 누군가를열광하게 만든 인물이다. 가치중립적으로 말하자면 ‘인물은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 ‘다운폴’이 생생하게 재현해주는 히틀러의 마지막 14일간의 영상기록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54세라는 나이보다 최소한 10년쯤 조로(早老)한 모습에, 파킨슨병에 걸려 한 손을 떨어대며 ‘노염’을 잘 타는 그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장례식도 없이 대충 파놓은 구덩이 속에 던져져 휘발유 불에 타는 둥 마는 둥 세상과 하직한다.

1927년 오스트리아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인류의 별의 순간들(Sternstunde der Mensch heit)」이라는 책에서 ‘미래세계의 운명을 바꿀 만한 위대한 결정이나 사건이 이뤄지는 특별하고 짧은 순간’을 은유적으로 ‘별의 순간(슈테른슈툰데·Sternstunde)’이라고 칭해 많은 독어권 국가들 독자들에게 환영받았다.

히틀러도 그가 승승장구하던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당시의 정치평론가들로부터 별의 순간을 잡은 사내로 일컬어졌던 인물이다. 츠바이크의 「인류의 별의 순간」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던 시대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당대 평론가들은 히틀러가 잡은 ‘별의 순간’을 1923년 ‘뮌헨 폭동’ 사건으로 특정했다. 뮌헨 폭동은 1923년 11월에 뮌헨에서 발생했지만 미수에 그쳤던 국가전복 기도사건을 말한다. 

뮌헨 폭동은 당시 나치당 무명의 극우 정치인에 불과했던 히틀러가 아무 준비도 없이 뮌헨 시내 맥주홀에서 ‘12·3 비상계엄령’만큼이나 무모하게 저질러버린 무장 폭동사태였다. 다른 주모자급 공범들은 모두 국외로 탈출하고 히틀러만 체포됐다. 

그런데도 히틀러는 단 한마디의 변명이나 반성도 없이 법정을 ‘극우 파시즘’ 이념 홍보무대 삼아 열변을 토해 국민들에게 일약 가장 용감한 애국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한다. 사람 팔자 알 수 없다. 

‘윤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의 바람이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의 파면 판결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진정한 별의 순간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아마 히틀러를 ‘별의 순간을 잡은 사내’로 평했던 1940년대 많은 평론가들이 히틀러의 초라하고 참담한 말로를 봤다면 결코 뮌헨 폭동으로 히틀러가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굳이 별의 순간을 잡았다면 아마도 우리에겐 ‘천랑성(天狼星)’으로 알려진 재앙의 별이라는 ‘시리우스(Sirius) 별’을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별의 순간이라는 말은 대선 때마다 선지자처럼 대통령을 점지하고 이 당 저 당으로 옮겨 다니며 대통령 만들기를 업(業)으로 삼는 듯한 어느 원로 정치인의 입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출마를 저울질하는 검찰총장을 향해 용한 점성술사처럼 “별의 순간을 잡으라”고 훈수를 뒀다.

그분이 정말 그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우리나라에 찬란한 미래가 펼쳐지는 결정적 순간이 되리라고 믿었는지 궁금하다. 역대 우리들의 대통령들 중에서 몇몇 분이 잡았던 것처럼 보였던 별의 순간들도 어쩌면 시리우스 별의 순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별의 순간이란 말은 헤겔(Hegel)이 들었다면 어쩌면 기겁했을 소리다. 헤겔은 인류역사에서 어느 시대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인간의 힘으로 거스를 수도 없는 한 시대(Zeit)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Geist)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불렀다. 

단, 뛰어난 철학자조차도 그 시대가 지나야 그 시대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법철학 강의서」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돼야 그 날개를 편다(The owl of Minerva spreads its wings only with the falling of the dusk)”는 유명한 경구(警句)를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다. 그렇듯 인간은 일이 지나가고서야 지혜를 얻지, 미리 깨닫지는 못한다는 게 헤겔의 믿음이다. 답답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소를 잃어봐야 외양간 고친다)’는 우리 속담은 가장 헤겔적인 심오한 지혜다.

별의 순간을 누구처럼 예언한다는 것은 헤겔의 관점에서 천부당만부당하다. 제아무리 현자라도 현재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데 그 시대의 별의 순간을 잡네 마네 하는 것은 점성술사들의 영역이다.

미국 언론사에는 츠바이크의 별의 순간이라는 용어를 패러디한 ‘머로의 순간(Murrow's Moment)’이라는 용어가 있다. 머로(Edward Murrow)라는 유명 앵커가 1954년 3월 9일 그가 진행하는 ‘지금 알아봅시다(See It Now)’라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당시 기승을 부리던 ‘빨갱이 색출 소동’인 ‘매카시즘’을 향해 완곡하지만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 방송을 기점으로 매카시즘이 거짓말처럼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로가 별의 순간을 잡아 세상을 바꿨다고 칭송했지만, 정작 머로 본인은 머로의 순간이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쳤다. 아울러 국민들이 매카시즘의 실체를 알아차린 건 매카시즘이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지 자신의 방송 때문에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아니라는 심오한 대답을 내놨다. 아마 머로도 헤겔적으로 사고했던 언론인이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의 파면에 따른 비정상적인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헤겔의 말처럼 ‘지금’의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새 대통령을 결정할 것이다. 딱한 것은 지나간 시대를 관통했던 시대정신이 ‘산업화’와 ‘민주화’였다는 것은 지나놓고 보니 알겠는데 정작 지금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도 알 수 없으니 헤겔처럼 답답하다. 

대선에서 승리하는 후보 입장에선 별의 순간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본인과 국가 모두를 불행에 빠트렸던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처럼 그가 잡은 별이 재앙의 별 시리우스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