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마지막 14일간 지냈던 소위 ‘퓌러붕커’ 지하방공호는 최후의 저항이나 반격을 위한 요새라기보다는 히틀러의 무덤에 가깝다. 히틀러나 그의 참모, 장군들 모두 말은 안 하지만 자신들이 이미 무덤에 들어온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상대방을 깎아내려야 이긴다는 생각 자체가 구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522/art_17485660334946_1589cf.jpg)
‘퓌러붕커’ 지하방공호에서 히틀러는 쉼 없이 대책없는 대책회의를 소집한다. 참모들과 장군들은 회의탁자에 펼쳐놓은 대형 유럽지도에서 막다른 골목과 같은 베를린이라는 작은 점에 시선을 고정한다. 베를린과 지하벙커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지가 절박한 관심사다.
그런데 정작 회의의 좌장 히틀러는 ‘베를린 사수’ 이슈에 집중하지 못한다. 히틀러의 시선은 독일 동부 국경 너머 동유럽과 광활한 소련 영토를 몽유병자처럼 헤맨다. 그 광활한 땅이 바로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 목표이자 독일인들을 열광시켰던 소위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다. 레벤스라움이라는 개념은 ‘Leben+raum’이고 영어로 직역하면 ‘리빙룸(living room)’이고 우리말로 하면 ‘안방’쯤 되겠다.
말 그대로 동유럽과 사람이 살 만한 소련 서부지역 땅을 모두 빼앗아 독일의 안방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영국·프랑스에 조리돌림 당하고 영토까지 빼앗겨 절치부심하던 독일인들을 열광시킬 만한 꿈이다.
그 꿈을 향해 소련과 인류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독일-소련 전쟁(1941~1945년)’도 감행했다. 소련군 1000만명, 독일군 500만명이 사망하고 민간인까지 포함하면 양국에서 3000만명이 사망한 전쟁이다.
그렇게 극악스러운 전쟁을 치러냈는데도 동유럽과 소련은 고사하고 이제 조그만 방 10여개의 베를린 지하벙커만 남았으니 히틀러의 심정도 이해할 만하다. 감독이 히틀러가 들여다보고 있는 그 지도를 비쳐주는 이유도 아마 히틀러 전쟁의 모든 것은 레벤스라움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인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의 땅을 빼앗아 널찍한 우리집 안방을 만들자는 레벤스라움 계획은 독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스파치오 빌란테(Spazio Vilante·삶의 공간)’라는 명칭으로 로마제국 선조들의 영토였던 북부아프리카를 모두 수복해서 지중해를 이탈리아의 호수로 만들어 떵떵거리고 ‘잘 살아보세’를 외쳐 이탈리아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고, 일본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만주와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군도를 넘어 아메리카대륙 서안까지 점령해서 아예 태평양을 일본의 내해(內海)로 만들자는 ‘대동아공영권’을 외쳐 섬사람들을 울부짖게 만들었다.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치러지는 대선은 어떻게 끝날까. [더스쿠프|뉴시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522/art_17485660331807_adbd1c.jpg)
체구는 왜소(矮小)하지만 왜인(倭人)들의 포부와 기개는 조선에게 명나라 정복하러 갈테니 길을 빌려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임진왜란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래 장난이 아니었다.
모두 레벤스라움의 다른 이름이다. 히틀러를 무척이나 닮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보다 더 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고,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를 사버리겠다는 것도 미국판 레벤스라움의 재림(再臨)인 듯하다. 물론 미국 극우들을 열광한다.
히틀러를 포함한 이들 ‘극우 3인방’이 품었던 포부와 그 실행 과정에서 나타난 참상의 시시비비는 차치하고라도 이들의 포부 자체만 놓고 본다면 국민들이 열광할 만은 하다. 또한 이들 극우 3인방 모두 거의 황당해 보이는 ‘꿈’을 실행에 옮겨 모두 대강 공정(工程)의 50% 정도는 달성했으니 그들의 ‘실력’도 반쯤은 인정해줄 만하다. 트럼프는 아직 모르겠다.
‘극우(極右)’라는 집단은 그 분파가 참으로 다양하게 파생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 돼버렸지만 포괄적으론 대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종적 사상적으로 이질적인 존재를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는 위협이자 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고 권력의 행사를 허용하는 것은 물론, 시민의 자유와 민주적 질서도 유보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 믿음이 난관에 부딪치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구국의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믿는 집단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를 수뇌로 옹립한 독일, 이탈리아, 일본 극우들의 신념이었으며, 트럼피즘(Trumpism)을 신봉하는 미국의 소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는 공화당원(Make America Great Again Republican·MAGA Republican)’들의 믿음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12·3 계엄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에도 곳곳에 똬리를 틀고 몸집을 키워온 ‘극우 세력’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아마 어느 변호사의 ‘나는 계몽됐다’는 외침은 ‘나도 이제야 극우의 이념이 옳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신앙고백이었던 듯하다. 대통령이 구국의 결단으로 ‘비상대권’을 발동했을 뿐인데 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법원을 뒤집어엎어버린 청년들의 믿음도 극우의 믿음인 듯하다.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치러지는 6·3 대선에 우리나라의 가장 극우적 인사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던 분이 기호 2번을 달고 나선다. 그 정도 극우후보를 후보로 선출하는 것을 보니 그 정당도 꽤나 극우적이 된 모양이다.
우리의 ‘극우적’ 정당과 ‘극우적’ 후보가 쏟아내는 말들 중에 히틀러의 레벤스라움 정도의 웅혼한 기상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덜 민망할 것 같은데, 레벤스라움은 없고, 증오와 분노, 공포만 그 자리를 대신한다.
![6·3 대선에서 장밋빛 청사진조차 내놓지 않는 정당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522/art_17485660326931_2b35e4.jpg)
“증오와 분노만큼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없다”는 히틀러의 천재적인 ‘선동선전부 장관’ 괴벨스(Goebbels)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듯하다. 레벤스라움의 꿈보다 사람들을 더 열광시키는 것은 상대를 향한 분노와 증오다.
그들에게 ‘이재명’이라는 고유명사는 어느 순간에 ‘악惡’이라는 보통명사가 돼버렸다. 근거는 잘 모르겠다. 이재명 없는 세상이 곧 우리들의 레벤스라움이라는 것으로 들린다. 황당한 계엄령을 발동했던 집단이 다시 선택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재명이 우주 최강의 ‘빌런’이 되는 것빼곤 달리 없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선거운동도 그 흔한 ‘장미빛 청사진’도 없이 오직 상대를 향해 증오와 분노만 쏟아낼 정도로 기이하다.
극우들의 기이한 선거를 보면서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조폭기업 ‘골드문’의 회장이 유고하자 ‘중구(박성웅 역)’가 신임 회장선거에 나선다. 투표권을 가진 골드문 이사들이 중구를 찾아와 ‘너를 당선시켜 주면 우리에게 뭐 좀 생기는 거 있냐?’고 묻는다. 중구가 대답한다. “있지, 왜 없겠어? (위스키 한 모금 마시고) 살려는 드릴께.”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