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가 가져온 ‘다르푸르의 비극’ [제이누리 그래픽] “21세기 지구촌 최대 비극인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초래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2007년 6월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에 기고한 글 중에 나온 말이다. 다르푸르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 지역은 강수량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토양이 비옥해 쌀을 포함한 곡식과 과일을 집약적으로 재배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도양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계절풍에 영향을 미쳐 지난 20년간 이 지역 강수량은 40%이상 감소했다. 가뭄이 오래가자 다르푸르의 흑인 부족이 울타리를 치고 아랍 유목민들이 소와 염소를 기르기 위해 초지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이로 인해 비극적인 다르푸르의 인종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까지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국가 내전을 부른다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생존이 위협받게 되면 다른 전쟁보다 더 참혹해질 수 있다는 것을 수단 다르푸르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70%의 주민들이 땅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나라에서 초지나 농사지을 땅이
봄철 기상 현상 중의 불청객으로 단연 황사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개나리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황사가 몰려와 하늘을 덮어도 그저 묵묵히 꽃을 피운다. 이러한 개나리꽃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도종환 시인은 와락 안아주고 싶다고 했나 보다. ▲봄 건강의 천적, 황사 [제이누리 그래픽] 하늘이 누런 황사에 뒤덮인 봄날이면 누런 모래가 만 길까지 뻗쳐있다는 ‘봄은 황사만장(黃砂萬丈)의 계정’이란 뜻의 싯구가 가슴에 다가온다. 황사가 비에 섞이면 아시아에서는 노란 비로 내리지만, 유럽에서는 날려 온 사하라 사막의 모래흙의 색깔이 붉어 붉은 비로 내린다. 그러면 ‘피의 비’라고 부르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고 한다. 봄철이면 우리나라로 어김없이 날아와 건강에 옐로우 카드를 내미는 미세 먼지 황사는 공중에 떠다니는 작은 알갱이로, 우리가 호흡할 때 몸속으로 들어와 폐 손상은 물론 심장질환 등의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또 접촉성 결막염 등 안질을 유발하기도 한다. 최근 생체기상학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황사현상이 심할 때면 우울증 및 심장질환자가 증가하며 자살률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황사의 미세 먼지 속에는
▲ 장진호 전투 중 중공군 저지선을 뚫고 이동하는 미 해병대. “추위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동료들. 그들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일. 피가 나오자마자 곧 얼어붙어 버리는 지독한 맹추위. 눈 덮인 벌판에 끝도 없이 널려 있던 중공군의 시체. 차라리 죽어 버리면 이 고통을 잊을까 했던 추위 속에서의 중공군과의 혈투.” 직접 보고 체험한 전투 경험과 수집한 이야기들을 소설 형식으로 기록한 ‘브레이크 아웃(Breakout)’의 일부다. 저자인 마틴 러스(Martin Russ)는 해병대원으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가운데 이 책은 1950년 말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미 해병 제1사단 병력이 5배 이상 되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해 후퇴에 성공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진호 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 한다. 1950년 겨울,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를 점령하려 한 미국 해병 제1사단이 장진호 근처의 산 속 곳곳에 숨어있는 중국군 제9병단(7개 사단 병력·12만명 규모)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후퇴에 성공한다.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진행된 이 전투를 당시 미국의
▲ 반기성 기상전문위원 “흑사병을 가져온 것은 유대인과 문둥병자, 그리고 마녀들이다!” 중세 유럽,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수 천만 명이 죽어갔다. 민심은 흉흉했고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왕과 귀족들은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문고리에 독약을 발랐다고 소문을 냈다. 노파들이 마귀를 불러 흑사병을 가져왔다고 했고 민중은 분노했다. 마귀로 몰린 유대인들을 습격해 죽였고 마녀로 몰린 노파들을 목매달았다. 하지만 실제로 흑사병은 날씨의 이상 변동으로 생긴 것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것이다. 역사를 보면 정치가들은 간교하게도 나라가 어려워질 때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 사람도 이런 희생양의 피해를 직접 당한 사례가 있다. 바로 일본을 강타한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이다. 일본은 대지진의 참상과 피해의 책임을 한국인에게 돌렸다. 정치인에게 속아 분노한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무참하게 죽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 20세기에 일어난 것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가나가와 현 중부에서 사가미만 동부, 스호 반도에 걸친 일대를 진원지로 한 대지진이 관동지방을 엄습했다. 일본
▲ 병자호란이 시대적 배경인 영화 <최종별기 활>의 한 장면 내몽골을 통일한 후금(後金)의 태종은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바꾸면서 자신을 황제로 칭한다. 그는 1636년 사신 용골대(龍骨大)를 조선에 보내 군신관계를 맺고 명나라와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했다. 국제정세에 무지하고 명에 대한 사대사상에 사로잡힌 조선의 왕 인조는 용골대를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용골대는 서울을 떠나면서 객사의 벽 위에 ‘청(靑)’자 한 글자를 써놓고 갔다. 어떤 사람들은 청(靑)자는 십(十)+이월(二月)이 되며 이것은 12월 압록강에 얼음이 얼 때 조선을 쳐들어올 것이라는 예고한 것이며 전쟁 시기를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날씨조건에 맞춘 것이라고 말한다. 내몽골을 통일한 후금의 병력은 아시아에서 가장 추위에 적응이 잘 된 군사들이었기에 이런 해석이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조선의 왕이 사신을 만나주지도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 격노한 청 태종 홍타이지는 1637년 1월 직접 20만 대군을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본래 이들은 만주 북부와 몽골 지방에 살던 기마 민족으로 겨울에는 -40℃까지 떨어지는 혹한과 살을 에는
▲ 미국의 기록사진으로 본 한국전쟁. [National Archives]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은 1950년 8월 초, 낙동강 방어선을 사이에 두고 유엔군과 대치했다. 하지만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북한군은 병력뿐 아니라 각종 탄약이나 보급품 지원에 애로를 겪기 시작했다. 때문에 북한군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피해를 무릅쓰고라도 정면공격을 감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북한군에 공격을 먼저 시도한 첫 전투가 바로 ‘킨 전투’다. 이때 미 제 25사단은 병력 2만 4000여 명과 전차 101대로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고 사단장의 이름을 따 ‘킨 특수임무부대(Kean TF)’로 명명했다. 이에 대적하는 북한군 제6사단은 병력 7500명 정도에 전차는 없는 것으로 추정됐다. 객관적인 전투력에서는 미군에 비해 상당한 열세였지만 그들은 산악 능선의 주요 지점을 장악하고 있다는 유리함이 있었다. 미군의 공격은 8월 7일 오전 6시 30분에 시작됐다. 그러나 산악 능선의 이점을 이용해 주요 목을 차단하고 있던 북한군에게 도로를 따라 공격하는 미군은 좋은 표적이 됐
▲ 반기성/ 제이누리 기상전문위원,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스칸디나비아반도에 본거지를 뒀던 바이킹 족들은 가장 험한 날씨와 싸워야만 했다. 북위 60도 이북에 위치한 이 지역은 강한 바람과 많은 눈·비, 그리고 다른 지역보다도 더 추운 날씨를 보이는 곳이다. 이들은 척박한 땅, 햇빛을 거의 보기 힘든 자연조건,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인해 애초부터 농사를 지어 풍족한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러기에 주변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거나 다른 지역을 침략해 식량을 약탈하며 살았으며 특히 바람과 파도를 접하는 게 비일비재했다. 그들은 늘 바다와 하늘을 관찰하며 살아왔다. 고위도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인 빙광(氷光·극지방과 같이 늘 얼음으로 덮인 곳에서 빛의 반사로 공중이 밝게 빛나는 현상)을 발하는 높은 빙하를 보며 살았고 오랫동안 수로를 항해 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얼음 상태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했다.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날씨와 관련된 속담이나 징후가 가장 많은 곳도 바로 바이킹 지역인데 그들의 삶과 날씨가 매우 밀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바이킹 사람이라면 어떤 해류를 이용해야 항해를 잘 할 수 있는지를 알았다. 또한 바다표범과
▲ 반기성/ 제이누리 기상전문위원,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전 1:6) “남방 밀실에서는 광풍이 이르고 북방에서는 찬 기운이 이르며”(욥 37:9)라고 기록된 것처럼 성경에서는 바람은 지역에 따라 세기와 흐름의 방향과 높이가 변하는 공기의 흐름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마라. 바람은 흙이 내뿜는 메마른 한숨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기가 움직여 바람이 분다는 성경의 생각을 어리석다고 했다. 그러나 바람이란 바로 공기의 움직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존의 철학자요, 과학자라고는 하지만 이런 비과학적인 주장을 한 것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무려 2천여 년 동안이나 자연과학계를 지배해왔다. 기상학적으로 볼 때 바람은 자연계의 생명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상요소 중 하나다. 비를 운반하고 기온을 변화시키며, 대기를 정화하고 식물의 씨앗을 옮겨 퍼뜨리는 일을 한다. “비가 전혀 내리지 않거나 드물게 내리는 나라는 있으나, 바람이 불지 않는 나라는 없다”고 한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 반기성/ 제이누리 기상전문위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초에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구약성경과 달리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붙어있던 하늘과 땅이 강제적인 힘으로 떼어져 천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창조신화는 혼돈이 죽으면서 세상이 개벽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주도의 천지창조 신화에서는 강제적인 힘이나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런 천지의 조화에 따라 세상이 창조되었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창세신화는 세상의 생명체들이 스스로 생겨났다고 말한다. 저절로 생긴 세상위에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가 생기고 짐승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제주도에 전해오는 창조신화에서 최초의 세상은 하늘과 땅이 붙어 있었으며, 빛이 없는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지가 개벽(開闢)되었다. 하늘이 열리(개벽)면서 붙어 있던 하늘과 땅이 떨어졌다. 하늘에서는 물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물 이슬이 솟아나 물이 생성되었다. 물은 갖가지 구름을 만들어 냈다. 하늘에서는 푸른 이슬이 피어올라 푸른 구름을 만들고, 땅에서는 검은 이슬이 피어올라 검은 구름을 만들
▲ 반기성/ 제이누리 기상전문위원 1896년 일본 동북부 지방의 산리쿠 해안에 높이 25~35m의 지진해일이 덮쳤다. 가옥 5만 채가 파괴되고 주민 2만6,000여 명이 몰살당했다. 먼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돌아온 어부들은 흔적도 없이 휩쓸려 가버린 고향마을을 보며 망연자실해 했다. 살아남은 사람이라곤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어부들뿐이었다. 어부들은 자신들의 마을과 사람들을 휩쓸고 가버린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만 해도 파도 한 점 일지 않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기상현상은 ‘쓰나미’라고 불리는 지진해일로 밝혀졌다. 바다의 파도가 높아지는 해일 현상은 대개 태풍과 지진으로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강한 해일은 지진에 의한 해일이다. 일명 ‘쓰나미’라고 부른다. 쓰나미가 먼 바다 한 가운데서 일어날 때는 그 강도가 아무리 커도 파장이 160km 정도여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해일의 파고는 고작 1m에 지나지 않는다. 산리쿠 해일 당시 파도도 없고 날씨도 좋았다는 어부들의 증언처럼 바다 한가운데 배 위에서는 지진해일이 일어난 지를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