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초에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구약성경과 달리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붙어있던 하늘과 땅이 강제적인 힘으로 떼어져 천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창조신화는 혼돈이 죽으면서 세상이 개벽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주도의 천지창조 신화에서는 강제적인 힘이나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런 천지의 조화에 따라 세상이 창조되었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창세신화는 세상의 생명체들이 스스로 생겨났다고 말한다. 저절로 생긴 세상위에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가 생기고 짐승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제주도에 전해오는 창조신화에서 최초의 세상은 하늘과 땅이 붙어 있었으며, 빛이 없는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지가 개벽(開闢)되었다. 하늘이 열리(개벽)면서 붙어 있던 하늘과 땅이 떨어졌다. 하늘에서는 물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물 이슬이 솟아나 물이 생성되었다. 물은 갖가지 구름을 만들어 냈다. 하늘에서는 푸른 이슬이 피어올라 푸른 구름을 만들고, 땅에서는 검은 이슬이 피어올라 검은 구름을 만들었다. 동쪽에 푸른 구름, 서쪽에 하얀 구름, 남쪽에 붉은 구름, 북쪽에 검은 구름, 가운데는 노란 구름으로 채워졌다. 하늘이 오색구름으로 가득 찬 순간, 구름의 조화가 깨지면서 북쪽의 검은 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칠 생각을 않고 몇 달 동안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마침내 비가 그치자 세상은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낮은 곳은 물이 고여 바다와 호수가 되었으며 높은 곳은 육지와 산이 되었다. 땅에서는 나무와 풀이 자라났다.
그러나 아직 해와 달이 없어서 세상은 차고 어두웠다. 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기와 물, 태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천지를 주관하는 신의 뜻에 따라 곧 태양이 만들어졌다. 어둠의 혼란 후에 하늘이 열려 빛이 생기고, 물이 생겼으며, 나무와 풀이 자라나고, 그 다음으로 태양이 만들어지는 순서까지를 보면 제주도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자손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주도의 천지창조 신화는 구약 창세기편과 유사하다.
제주 남방국 일월궁에 이마와 뒤통수에 눈을 두개씩 가진 청의동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늘의 수문장이 청의동자 이마의 두 눈으로는 태양을 만들고, 뒤통수의 두 눈으로는 달을 만들었다. 해와 달이 만들어진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해와 달이 두 개씩이다 보니 없을 때 보다 더 큰 일이 생겨났다. 낮에는 불볕더위로 죽을 지경이고 밤에는 추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낮에는 두 개의 태양에서 쏟아지는 강한 햇볕으로 초목과 사람들이 말라 죽었다. 낮과 반대로 밤에는 강한 복사냉각으로 인해 온 세상이 추위로 얼어붙어 버렸다.
이즈음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천지왕이 세상에 내려와 바지왕이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하늘로 올라갔다.
“만일 아이가 태어나 아버지를 찾으면 태어나 용이 새겨진 얼레빗 한 짝과 붓 한 자루, 신발 한 짝을 들려 하늘로 보내시오. 그러면 내 아들로 알겠소.”
공교롭게도 아이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어머니 바지왕은 쌍둥이에게 대별왕과 소별왕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머니, 저희들의 아버님은 누구신가요?”
“너희 아버지는 하늘의 천지왕이란다. 너희들이 크면 하늘로 찾아오라고 하셨으니, 이제 아버지를 찾아가도록 해라.”
아버지가 남겨주고 간 것 중에 박씨 3개가 있었다. 쌍둥이는 1월 첫 번째 돼지(亥) 일에 박씨를 심었다. 박씨는 순식간에 싹이 터서 자라더니 줄기 두 개가 곧장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쌍둥이는 박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쌍둥이가 가지고 온 얼레빗과 붓, 신발 한 짝의 증표를 확인한 천지왕은 너무도 기뻤다. 씩씩하게 잘 자라준 아들 쌍둥이가 대견스럽기 만했다.
“그간 어머니가 홀로 너희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래, 사람들이 사는 아래 세상은 어떠하냐?”
“아버님,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해와 달이 두 개씩 있어 낮에는 더위로 타 죽고, 밤에는 추위로 얼어 죽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들들아, 너희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 해와 달을 하나씩 없애도록 해라. 천근 무게의 활을 줄 테니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리도록 해라.”
대별왕과 소별왕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천근짜리 활을 메고 땅으로 내려 왔다. 먼저 형인 대별왕이 활시위를 당겨 해를 쏘았다. 동생 소별왕은 뒤따르는 달을 쏘았다. 화살에 맞은 해와 달은 잘게 부서지면서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때부터 하늘에는 해와 달이 하나씩만 떠 있게 되었고,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자리 잡게 되었다. 천지왕은 불볕더위와 추위에서 세상을 구한 공을 치하하며 큰아들 대별왕에게는 저승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고, 소별왕에게는 이승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왜 둘째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었을까? 천지왕은 사람들이 사는 이승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기 위해 시험을 하였다고 한다. 두 아들에게 꽃을 주고 누가 잘 키워내느냐는 시합이었다.
“세상을 다스리려면 용맹과 지략이 있으면 되지 꽃을 잘 키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대별왕은 꽃을 키우기보다는 무예단련에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꽃을 키워보라는 것은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또 꽃을 키워보니 무술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구나.”
소별왕은 정성을 다해 꽃을 키워 탐스러운 꽃송이를 만들었다. 천지왕은 씩씩하고 무예와 지략이 뛰어난 대별왕에게 사람이 사는 이승을 맡기지 않고 꽃을 잘 키운 소별왕에게 그 권한을 주었다. 신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힘이나 용맹보다는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제주도 사람들이 아름다운 감성을 가지고 생명을 존중하는 평화인인 것은 이런 곳에서 연유했다는 생각이 든다.
팁으로 생뚱맞은 이야기 하나 해볼까? 제주 창조신화처럼 정말 해가 둘이 있을 수가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인 태양은 하나다. 나머지 지구나 목성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행성일 뿐이다. 그런데 우주에는 한 태양계 안에 몇 개의 태양이 있는 별들이 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시리우스계의 태양은 둘이며, 알파센타우리 계에는 세 개의 태양이 있다. 그럼 태양이 2개 있으면 다 타죽을까? 우주에 있는 항성계의 60%는 쌍성계이며 태양이 세 개, 네 개 이상인 항성계도 많다. 한 항성계에 태양이 두 개 있다고 모두가 불에 타 죽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거리가 떨어져 있고, 균형만 잘 맞으면 태양이 여러 개 있어도 문제가 없다.
☞반기성은?=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