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을 가져온 것은 유대인과 문둥병자, 그리고 마녀들이다!”
중세 유럽,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수 천만 명이 죽어갔다. 민심은 흉흉했고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왕과 귀족들은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문고리에 독약을 발랐다고 소문을 냈다. 노파들이 마귀를 불러 흑사병을 가져왔다고 했고 민중은 분노했다. 마귀로 몰린 유대인들을 습격해 죽였고 마녀로 몰린 노파들을 목매달았다.
하지만 실제로 흑사병은 날씨의 이상 변동으로 생긴 것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것이다. 역사를 보면 정치가들은 간교하게도 나라가 어려워질 때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 사람도 이런 희생양의 피해를 직접 당한 사례가 있다. 바로 일본을 강타한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이다.
일본은 대지진의 참상과 피해의 책임을 한국인에게 돌렸다. 정치인에게 속아 분노한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무참하게 죽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 20세기에 일어난 것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가나가와 현 중부에서 사가미만 동부, 스호 반도에 걸친 일대를 진원지로 한 대지진이 관동지방을 엄습했다. 일본 관동지방에 규모 7.8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후 여진만 936회에 이를 만큼 지진의 강도는 대단했다. 도시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고 해안에는 쓰나미가 몰아쳤다. 전신, 전화, 철도는 물론 전기, 수도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기간시설이 파괴됐다. 도쿄는 화재로 가옥의 3분의 2가 무너지고 불에 타면서 18시간 만에 초토화됐다. 화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뜨거운 불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도쿄의 밤 기온이 무려 46℃까지 올랐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를 합쳐 10만 600명, 부상자 5만 2000명이었고, 가옥 파괴는 69만 호에 달하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도시는 마비됐고 민심은 흉흉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일본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계략을 세웠다. 당시 일본은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1918~1922년에 걸쳐 벌어진 시베리아 간섭전쟁에서의 패배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았다. 또 워싱턴회의에서 미국과의 대립이 증대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갔으며, 국내에서는 일본 공산당이 만들어져 사회혼란이 커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3·1 운동이 벌어지면서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자 사회주의자와 함께 조선인에 대한 대탄압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대지진으로 치안이 무너진 상태에서 폭동이 발생할 짓을 우려한 일본 정부는 국민의 불만을 조선인에게 돌리려는 음모를 꾸몄다.
당시 한국의 독립신문사의 한 특파원 말에 따르면 학살에 희생된 한국인 수는 최소 7000여 명에 달하며 신원을 확인한 시체만도 1510구에 달했다. 이처럼 이민족에 대한 집단 학살을 불러일으킨 관동대지진은 어느 정도 위력이었을까.
지난 2010년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의 규모는 7.0이었다. 이로 인해 20만명 이상이 죽고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의 건물은 85% 이상 무너졌다. 규모 7인 경우 중형 원자폭탄 100개가 터진 위력과 비슷하다. 지진은 규모가 1 커질 때마다 32배 정도로 그 위력이 증가한다. 관동대지진은 대략 아이티 지진 위력의 25배 정도가 되므로 원자폭탄 2500개가 폭발한 것과 맞먹는 강력한 지진이었다. 도대체 지진은 왜 발생하는 걸까.
지구는 끓고 있는 액체물질 위에 땅과 같은 고체물질이 붙어있는 불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땅도 균일한 하나의 판(plate)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판 조각으로 떨어져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뜨거운 맨틀 내에 자전 때문에 생긴 원형흐름이 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은 한쪽에서는 판을 서로 끌어당기고 다른 곳에서는 밀어버린다. 판이 끌어당겨지는 곳에서 지각은 솟아오른다.
반면, 판이 서로 미는 곳에서는 구겨짐이 생기고 지각은 맨틀 속으로 밀려들어간다. 이런 곳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발생해 지구는 온몸을 뒤트는 몸살을 앓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진이다. 지구에서 발생하는 95% 이상의 지진이 판의 경계에서 일어나는데 관동대지진은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곳에서 발생했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지진의 83%가 태평양을 둘러싼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지역은 태평양판을 중심으로 여러 판들과 접해있을 뿐만 아니라 산맥과 해저가 아직도 형성 중인 ‘젊은 지역’이기에 지진이 많이 일어난다. 일본의 지진 발생이 잦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관동대지진은 일본의 도시들이 지진에 대비한 현대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건물들에 내진 설계가 강조됐고 화재에 대비할 수 있게 지어졌다. 도로, 철도 외에 대지진의 피난처로 활용하기 위한 공원 등도 확대됐다. 이처럼 관동대지진은 일본 사람들에게 그들 땅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중국을 침략 지배하겠다는 야욕을 품은 배경에는 관동대지진이 있다고 전한다. 지진이 역사를 바꾼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힘이 약한 나라와 민족은 언제든 무참히 짓밟힐 수 있다는 것을 관동대지진이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본은 아직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을 학살했던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있다. 사과하기는 커녕 최근엔 독도영유원 주장과 함께 정신대할머니 문제조차도 전혀 철회하거나 사과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힘을 길러 국가가 강해지는 것만이 일본을 이기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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