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쾌(兌卦) 태(兌)는 기뻐하다, 즐겁다 뜻이다. 사람이 평생 기쁘고 즐겁게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만금을 가진 부자도 고통 받을 때에는 괴로워한다. 빈한하지만 늘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열고 통이 큰 사람만이 오랫동안 즐거울 수 있다. 모두가 함께 있고 공동으로 나아갈 때에야 행복의 맛을 체득할 수 있다. 자질구레한 일, 지나치게 따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의 일생 중 티격태격, 울퉁불퉁한 삶은 피할 수 없다.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려거든 반드시 마음을 열고 통이 커야 한다. 공동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태(兌)는 형통하니, 곧게 함이 이롭다.” 무슨 말인가? 마음이 열려 있고 통이 크면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막힘이 없고 형통하면 정도를 굳게 지키는 데에 유리하다. 사람은 자신이 매일 유쾌하고 순조롭기를 바란다. 그러나 삶은 파란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질구레한 일을 지나치게 따지면 자신의 나날을 어두침침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든다. 활달한 마음을 가져야만 하루하루 생활에 빛이 충만하게 된다. 활달하게 되려면 먼저 개의치 않는, 염두에 두지 않는 법을 배
셋째, 기회 앞에서는 모호하게 행동하지 말자. 당당하자. 직업 생애 중에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상사나 경영자가 일부러 자신을 발탁할 때에는 반드시 용감하게 나서야 한다. 자립, 자신, 자강의 태도와 업무 능력을 통하여 상사에게 희망을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자기 발전에 지극히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신속하게 나서야 한다. 용감하게 기회를 포착하여야 한다. 주동적으로 그 ‘수놓은 공’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코 과도한 겸손으로 자아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넷째, 적당하게 자신을 선양하자. 업무 중에 적당한 때에 상사에게 자신이 이미 이루어놓은 성적을 펼쳐 보여줘야 한다. 창신적이 방법과 독창적인 업적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성장 잠재주’이니 자신을 육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금’과 같은 자신을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판매책이 우회로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재능이 있으면서도 펼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자기 자신을 잘 홍보할 줄 알아야 한다. 상사와 ‘친밀한’ 접촉을 통하여 자기의 빛나는 점을 끊임없이 상사 앞에서
◆ 손괘(巽卦) 손(巽)은 순종, 비천이다. 겸허는 필요하다. 그러나 과한 겸허는 순종, 비천하게 된다. 순종하는 게 있고 비천하게 되면 노예 성품이 생기게 된다. 창조성이 없어지며 성과를 이룰 수 없다. 포부가 없어지게 된다. 과도한 겸손은 어떻게 하여야 할까? 겸허는 물론 좋다. 그러나 과도한 겸허는 나약함이다.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선택할 때 어떤 때에 겸허하여야 하고 어떨 때에는 선양하여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신축성 있게 대처하여야 한다. 힘들이지 않고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자신이 개인 직업 발전에 최고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어서 물자와 도끼를 잃으니, 곧더라도 흉하다.” 무슨 말인가?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고 고분고분 하는 것이 극에 달하여 침대 아래까지 굽히면 생계를 도모해야 할 자본을 잃게 되고 강인한 본성을 잃게 되기에 결과적으로 흉험하다. 사람은 강한 면도 있고 약한 면도 있다. 강하고 부드러운 두 가지에 조화를 이루어야 인생의 큰길에서 어디에 가서 승리할 수 있다. 사람이 강한 일면을 일단 잃어버리면 나약하고 무능하게 변해 버린다. 과도한 겸손은 강한 성품을 잃게
◆ 대축괘(大畜卦) 대축(大畜)은 풍성, 풍작의 축적이다. 풍작을 거두려면 천시, 지리, 인화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인화가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풍작에는 인재의 도움이 필요하다. 유능한 인재를 모아야 한다. 선을 쌓고 덕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축적된다. 단체가 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지도자가 되어 더 큰 성적을 거두려고 한다면 곁에 자신을 후원해줄 인재와 끝까지 목숨을 걸어줄 지사가 필요하다. 동시에 자기의 덕행을 끊임없이 닦아야 한다. 덕행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업도 순리대로 풀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대축은 곧음이 이롭고(이로우니),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아서) 길하니(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무슨 말인가? 풍성하게 축적되니 정도를 굳게 지키는 데에 이롭다.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을 곤궁하게 집에서 생계를 이어가게 만들지 말고 마땅히 조정으로 불러내어 국가의 봉록을 먹으면서 재능으로 국가에 공헌하게 하여야 길하고 큰 내를 건너는 데에 이롭다는 뜻이다. ‘홍루몽중인(紅樓夢中人, 홍루몽 배우를 선발하는 중국 대형오디션 활동)’ 오디션은 기적을 만들어 냈다. 2주 동안 홈페이지 클릭 수가 이천 만을 돌파하였다.
“고향을 염려하지만 고향만을 지키지 않는다. 감히 뛰어들며 나아갈지 물러설지를 안다. 자신은 하지만 자만하지는 않는다. 이익을 중시하지만 재물만을 지키지는 않는다.” 이런 정신으로 온주인은 중국에서,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밖으로 나아가’는 전략을 세웠다. 온주의 민간자본으로 ‘금지하지만 않으면 한다’1)는 다중 증식 형식을 형성시켰다. 온주 사람이 나가고, 온주 상품이 나가고, 온주 브랜드가 나가고, 온주 시장이 나가고, 온주 기업이 나가고, 온주 자본이 나가는 등 다양하면서도 생동적인 나가는 이상적인 경관을 창출하였다. 온주 사람은 어떤 것이나 다 생각하고 어떤 것이나 다 한다. 작은 것은 단추 구멍, 신발과 모자, 안경, 상표에서 큰 것은 복장, 가정용 전기기구, 물류센터까지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업무라면 모두 고생을 감내하는 온수 사람들의 그림자가 있다. “작은 상품, 큰 시장, 소규모, 큰 협력, 작은 기계, 큰 동력, 작은 사람, 큰 기백” 온주 유형은 온주 사람 특유의 지극히 강한 치부 욕망과 창업 정신이 결합해, 감히 생각하고 감히 행동하는 온주 사람을 평범한 사회에서 뛰쳐나오게 했다. 온주 특색의 발전해 나가는 길을 개척하
◆ 여괘(旅卦) 여(旅)는 외출하다, 집을 떠난다는 뜻이다. 자신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밖에 나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아를 연마하면서 점차 성숙해 진다. 기술이 낙후됐으면서 밖에 나갔거들랑 돌아오시라. 선진 경험을 얻어 자신을 위하여 쓰라. 시계, 식견이 넓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오늘 날 세계는 개방의 시대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고 기량을 닦아야 한다.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낡은 것을 답습하는 전통 관념을 없애야 한다. 시장 관념과 치부(致富) 의식을 수립하여야 한다.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용감하게 뛰쳐나가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나그네가 거처하고 물자(物資)와 도끼를 얻으나 내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무슨 말인가? 몸이 타향에 있기에 잠시 외지에 머무니 안거할 수 없다. 자기를 발전시키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낡은 자동차가 임시로 길가에 서있다. 먼지가 두텁게 쌓여 있다. 차에 탄 사람들이 초췌한 기색으로 멍하니 앞을 보고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멀리 떠나는 것인가? 그런데 귀가(歸家)하나 원행(
감사하는 마음은 심리적 안위가 아니다. 현실 도피도 아니다. 아Q식 정신승리 방법은 더더욱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생활을 노래하는 방식이다. 생활에 대한 사랑과 희망에서 비롯된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실패했을 때 격차를 보게 한다. 불행을 당했을 때 위로와 안심을 얻게 한다. 따스함을 얻게 한다. 난관에 도전하려는 용기를 북돋아준다. 더 나아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동력을 선사한다. 각도를 바꾸어 인생의 실의와 불행을 보게 해준다. 생활 속에서 시시각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영원히 건강한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완미한 인격과 진취적인 신념을 가지게 한다. 물속에 조그마한 백반(白礬)을 넣으면 모든 찌꺼기를 응집시킬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양하면 많은 경박, 불안을 응집시켜 많은 불만과 불행을 없앨 수 있다. 우리는 부모가 우리에게 준 생명에 감사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인생을 체험하게 해줬잖은가. 스승이 우리에게 준 지혜에 감사하여야 한다. 우리 내면을 충실하게 해줬잖은가. 친구가 우리에게 준 우정에 감사하여야 한다. 우리 생명의 여정에서 고독을 벗어나게 해줬잖은가. 순탄하지 못하여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준 것
◆ 풍괘(豊卦) ‘풍(豊)’은 웅대하다, 성대하다 뜻이다. 성대할 때가 또 가장 쉽게 쇠퇴할 수 있는 때이다. 그렇기에 안목 있는 사람은 늘 거안사위(居安思危)한다. 성대할 때에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곤궁에 빠진 사람을 구제한다. 은혜가 후세에 두루 미치도록 조치를 취한다. 바로 “궁하면 홀로 그 몸을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아울러 천하를 선하게 한다.”1) 부귀해져 근본을 잃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태양은 빛을 사방에 늘 비춘다. 대지를 두루 비춘다. 대자연이 우리에게 준 은혜다. 우리의 사업이 성공해 활기찰 때, 은혜에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듯이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곤궁에 빠진 사람을 구제하여야 한다. 은혜가 후세에 두루 미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풍(豊)은 형통하니, 왕이 이르러 근심하지 말고 해가 중천에 있듯이 하여야 한다.” 여기에서는 풍족하고 성대한 것을 상징한다. 형통이다. 군왕은 천하를 성대하고 풍족하게 할 수 있다. 우울할 필요 없다. 걱정할 필요 없다. 태양이 중천에 뜬 것과 같다. 눈부시게 빛난다. 천하에 두루 비춘다. 위험에 처한
충정과 한결같은 마음은 책임 있는 애정을 만든다. 애정은 일률적인 화조풍월(花鳥風月)이 아니다. 길고도 번잡한 세월 속에서 서로 보살피고 함께 난관을 이겨내어야 한다. 충정의 마음과 한결같이 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애정은 천장지구(天長地久)가 될 가능성이 적다. 예부터 지금까지 울리고 웃기는 애정 이야기는 모두 충정과 한결같이 함께 하는 고난과 감동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있던가? 고난이 있기에 귀한 것이고 감동이 있기에 구가할 수 있는 것이다. 애정의 충정과 한결같음은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 같아야 한다. 살아 있을 때 서로 마음이 통하여 헤어지지도 버리지 않고 죽어서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지내지 않았는가. 충정의 애정은 바로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저지하고 방해하는 모든 장애를 돌파하고 바닷물이 마르고 돌이 썩는 영원을 모색한다. 그러나 경화수월의 명예와 복록을 위하여 일찍이 천장지구하자는 맹세를 한 애정을 희생하였던 사람이 몇몇이었던가. 시간의 침식과 사소한 일들의 잠식 아래 자신이 마음속으로 사랑하였던, 암암리에 서로 마음이 통했던 무게를 잃어버린 사람이 몇몇이던가. 어쩌면 한결같이 하여야 장구한 세월을 인증할 수 있고, 충정이
◆ 귀매괘(歸妹卦) 귀매(歸妹)는 누이가 시집가는 것이다. 넓게는 여성이 시집가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누이동생이 언니를 따라 시집가 첩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옛날에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귀(歸)라 했다. 평생의 귀결점이 생겼다는 말이다. 귀결점(귀착점)은 안전한 집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비교적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말이요,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 집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부부에게는 애정이 필요하다. 애정은 일단 확정되면 한결같아야 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 백년해로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행복하여야 한다. 애인(연인)을 찾기 힘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 성공한 사람 뒤에는 여인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떤가. “모든 성공한 여성 옆에는 남성이 있다.” 남성은 여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남성이 사랑하는 여성은 남성의 삶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여성도 자기중심적일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릴 수 있기에 그렇다. 관심을 가지는 남성을 잃어버릴 수 있기에 그렇다. 아름다운 삶을 유감으로 남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여성은 남성을
『논어·자로(子路)』의 기록이다. “자하가 거보(莒父 : 마을 이름)의 읍재가 되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서두르면 달성할 수 없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 자하가 정치하면서 어떻게 하여야 잘 할 수 있냐고 묻자 공자가 한 대답이다. 거창한 것 하나 없다. 간명하다. ‘서두르지 마라’,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어떤 일이든 빨리 끝내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만 능사가 돼서는 안 된다. 반드시 품질을 보증할 수 있고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하게 빠름만을 추구하면 허술하게 된다. 조잡하게 된다. 심지어 오류가 생기고 손실을 입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까다롭게 된다. 청나라 때 마시방(馬時芳)의 『박려자(朴麗子)』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 한 농부가 날이 곧 저물 때 귤 바구니를 지고 성으로 가고 있었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도착할 수 없을까봐 조급해졌다. 그때 앞에서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물었다. “성문이 닫히기 전에 성에 들어갈 수 있겠나요?” 그 사람
◆ 점괘(漸卦) 점(漸)은 점차, 차츰차츰 뜻이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끌어올려 향상시키려 하는 것을 비유한다. 특히 자신의 도덕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향상은, 단번에 이룰 수 없다. 차례대로 첨차 나아가야 한다.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실어주는 것(厚德載物)’을 배워야 한다. 부단하게 자아를 향상시켜 목표를 실현하여야 한다. 조급하게 무모하게 돌진(突進), 분별없이 나아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 전환기 때마다 난관에 부딪치지만 이외의 높은 곳까지 문명의 불꽃을 향상시켜서 신기원을 창출하였다. 거대한 전환기는 조그마한 변화에서 기원하였다. 하찮아서 말할 가치도 없는, 보잘 것 없는 기점에서 무한한 노정을 이끌어내어 다양하면서도 찬란한 역사를 엮어왔다. 기점이 만사만물을 배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점이 무궁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무한한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발단만 보유한다면 모든 것은 공허하다. 다시, 완전한 기점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뚜렷하고 명백하게 착실하고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밟아가면서 탐색하지 않는다면 어찌 내일의 찬란함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인생길에서 기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