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옛날에 궁가항 부류의 거지 항방(行幇)은 중국 어디에나 존재하였다. 일정한 지역을 각자의 기본 활동 영역으로 산재되어 있었고 연결되어 있었다.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길림(吉林) 해룡(海龍) 일대에 ‘대광(大筐)’과 ‘이거(二柜)’ 두 종류의 거지 항방이 활동하였다.
이른바 ‘대광’은 거지 집단이었다. 절름발이, 소경, 병자와 같은 거지가 평일에는 도시에 살다가 봄과 여름에 향촌으로 내려가 양식을 구걸하였다.
양식을 구걸할 때 ‘낙자두(落子頭)’가 무리를 이끌었다. ‘순자(順子)’라 부르는 작은 몽둥이나 ‘흘미(吃米) 팻말’을 손에 들고 갔다. 그 팻말은 지현(知縣)이 준 것으로 ‘황제의 명을 받들어 양식을 구한다’라는 증좌였다고 전한다. 이유가 충분하니 하는 말이 당당했다.
양식을 구할 때 쓰는 도구는 유관(柳罐, 버드나무 잔가지로 엮은 두레박 형태의 용기)이었다. 그래서 ‘대광(大筐)’이라 하였고 우두머리는 ‘광두(筐頭)’라 불렀다.
낙자두는 유관을 들고 무리와 함께 향촌으로 내려갔다. 주로 돈이 있는 천석꾼에게 양식을 요구했다. 그의 조수를 ‘방락자(幇落子)’라 불렀다. 낙자두는 조리 있게 말을 잘했고 대담했다.
황상이 효수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양식을 구할 때에는 사람을 보고 접시를 내놓듯이, 상대의 상황을 보고 행동하였다. 일반 집에 가면 유관을 집문 앞 반석 옆에 놓고 이상한 소리로 내질렀다.
“주인님, 절름발이, 소경이 왔소, 먹을 양식 좀 주시오!”
그런데 세력 있는 향신 대문 앞에 가면 유관을 대문에서 3척 떨어진 곳에 놓았다.
세속은 권력이나 재력을 따지는 성질이 있다. 강자를 두려워하고 약자를 업신여긴다. 사회 하층에 속한 거지가 사람에게 구걸할 때에도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랐다. 분수에 따른 것일 터이다.
구걸해온 양식은 모두 광두가 분배하였다. 안으로는 개방의 가문을 관리하고 밖으로는 관부와 왕래하였다. 일종의 지방의 ‘인물’이었다.
매번 얻어온 양식은 대광에 속한 거지가 반 년 동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였다. 큰 수레를 이용하여 도시로 끌고 간 후 광두가 등급에 따라 분배하였다. 광두는 우두머리이니 도리로 보아 당연히 두 몫을 가져갔다.
‘선자(扇子)’는 한 손에 죽통〔竹筒, 송대의 범중화(范仲華)가 남긴 것이라 전한다〕을 들고 다른 손에는 신발바닥을 들고 애처롭게 부르짖으며 갈비뼈를 때리면서 구걸하는 거지다.
‘요자(舀子)’〔‘회자(擓子)’라고하기도 한다〕도 있다. 벽돌을 들고 자기 머리를 치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 거지다. ‘파두(破頭)’도 있다. 칼로 자기 머리를 찍고 구걸할 집의 대문 앞에 드러누워 양식을 구걸하는 거지다. 그들은 낙자두와 한 통속이었다. 대광이 향촌으로 내려가 양식을 구걸하는 골간으로 각자 일정한 양을 분배받았다.
‘상부(相府)’(맹인 거지), ‘소락자(小落子)’(평상시에 작은 유관을 어깨에 메고 일반 집에 가서 간장, 짠지와 같은 것을 구걸하는 미성년의 어린 거지), ‘흘미적(吃米的)’(여성 맹인 거지)은 공헌이 그리 많지 않고 능력이 많지 않아 각자 반씩 분배받았다.
분배할 때 먼저 함께 먹을 양식을 남겨두고서 모두에게 입을 옷을 제공하였다. 남포(藍布) 옷 밖에 낡은 옷을 걸치는데 ‘음양저(陰陽底)’라 불렀다.
이런 절름발이, 병자, 맹인인 거지는 서로 운명을 같이 했고 서로 협력하였다.
큰 대오가 향촌으로 내려가 양식을 구할 때 개를 끌고 길을 안내하는 맹인 거지는 ‘연간(軟杆)’이라 불렀다.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다가 구덩이를 만나면 ‘공(空)’이라 외치며 뒤따라오는 맹인 거지에게 다리를 높이 들라고 알려주었다. 그를 ‘경간(硬杆)’이라 불렀다.
그들이 대부호에게 양식을 구걸하는 근거는 궁가항의 조사 숭배 전설과 비슷했다. 옛날에 공자가 진(陳)나라에서 곤경에 빠지자 안회(顔回)를 보내어 범단(范丹)에게 산처럼 쌓인 쌀과 밀을 빌린 후에 후세에 대련을 붙인 집에서 빚을 대신 갚도록 했다는 게 구걸하는 근거였다.
대광 구성원 중에 사람이 죽으면 관 안에 흑사 사발을 4개 넣어주었다. 말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마 한 가닥을 넣었다. 말꼬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내포하는 뜻은 이렇다. 죽은 자가 죽기 전에 한 평생 집집에서 밥을 얻어먹었기에 다음 생에는 역참 사이에서 편지를 전달하는 역마로 태어나 전생에서 입은 은혜를 갚으려 한다는 의미였다. 민국 초기에 정부가 대광을 금지하면서 사라졌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