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동업조직인 항방(行幇)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전국적인 조직이었다.
곳곳에 흩어져 존재하였고 대부분 각자 나름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사승(師承) 관계를 대단히 중히 여겼다. 그 사승 관계란 방주(幇主)를 잇는 관계였다. 방주는 모두 ‘도맡아 처리하는’ 권위를 가지고 자신에게 충직하며 믿을 수 있는 도제에게 건네주었다. 계승자는 도처에서 기반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안휘(安徽)성 육안(六安)현 거지 항방의 거지 두목 둘은 개봉(開封)에서 온 이삼고(李三顧)〔별명은 이호자(李胡子)〕와 녹현(鹿縣)의 기달개(祈達開)〔별명은 기노오(祈老五)〕 사형제로 청나라 도광 연간의 거지 임(林)에게서 사승되어 내려온 제6대 거지 두목이었다.
그들은 하남에서 안휘까지의 강호를 횡횡하며 기반을 닦았고 육안현에서 개방을 건립하였다. 이호자가 가끔 성황묘(城隍廟)에서 뱀을 부리며 약을 파는 것 이외에 그 둘이 매일 헤프게 쓰는 비용은, 주로 혼례식이나 장례식에서 얻어온 위로금과 고리대를 놓은 채권자를 대신하여 빚을 받은 후에 나눈 돈이었다. 이것이 주요 수입원이었다.
그 거지들이 빚을 받아내는 방식은 채권자보다도 흉악했다. 현지인들은 “거지 두목은 무술을 한다, 돈을 달라면 안 줄 수 없다”라는 말을 하였다.
도만(桃灣)의 농민 축근생(祝根生)이 지주 종정성(宗鼎成)에게 소작료를 갚지 못하자 빚을 대신 받아주는 거지 서림(舒林), 장흥방(張興榜)에게 시달리다 견디다 못해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할 정도였다.
또 마선(麻線)이라는 거지는 늙은 향신(鄕紳) 반몽초(潘夢初) 집에 찾아가서 구전을 받을 요량으로 돈을 요구했으나 반 씨 집안에서 관부와 결탁하여 그를 잡아다가 곤장 40대를 때렸다. 이에 거지들이 앙심을 품고 반몽초가 외출하는 틈을 이용해 길에서 그를 구타했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7/art_17393213561326_b06624.jpg)
이외에 그들은 어린이나 소녀를 꾀어내어 팔아먹거나 홀로 길을 가는 손님을 협박하여 강탈하는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으면서 폭리, 횡재를 도모하기도 했다.
그것은 거지들이 너무나 가난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를 행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런 사람들은 거지라는 이름을 가지고 범죄행위를 하는 깡패이며 악인이지 결코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항방(行幇)이야말로 떠돌아다니는 악을 행하는 철저한 범죄 집단이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