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공항에서 출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보라. 얼굴이나 머리모양, 입고 있는 옷 등으로 제주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모두 엇비슷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제주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제주 사람이 쓰는 말이 곧 제주어다.」 ▲ 제주어 길라잡이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연구센터에서 발간한 제주학총서 '제주어 길라잡이' 첫 장에 나오는 제주어에 대한 설명이다. 위 설명은 제주 사람과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구별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안에도 지역에 따라 문화와 언어에 차이가 나듯 서로를 더 잘 이해해보자는 취지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제주를, 그리고 제주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선 제주의 역사, 문화도 중요하지만, 제주어를 우선 알아볼 필요가 있다.' ◇ 예나 지금이나 제주어는 어려워 몇 해 전 제주지방경찰청에서는 이색적인 교육 풍경이 연출됐다. 교육 내용은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 기법이나 신종 범죄 수법 등이 아니라 다름 아닌 '제주어'였다.
여순사건은 제주4.3과 공통점이 많다. 두 사건 모두 제대로 된 증거 없이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과거엔 ‘무장폭동’ 및 ‘반란사건’이라는 오명으로 불렸다. 관계자의 친족들은 ‘빨갱이’라고 불려지면서 차별을 받기도 했다. 제주4.3은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2014년부터는 국가추념일로도 지정되는 등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여순사건은 제16대 국회 때 잇따라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그때마다 무산됐다. 올해 겨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갈 길이 아직도 멀다. 역사는 진실을 밝히고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이 진실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는다면 역사의 정의는 없다. 동포인 제주도민을 죽일 수 없다고 국가에 맞선 이들과 진실을 규명하려 애쓰는 그들을 제주가 기억하고, 도와야 하는 이유다. 여순사건 73주년을 맞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세차례로 나눠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여수시 만흥동 '만성리 형제묘'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유족들은 부역혐의로 총살당
▲ 안동우 제주시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제주시 간부공무원 파면 징계 발표와 함께 사과하고 있다. [제이누리DB] #제주지법은 14일 상습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전 제주시 국장 A(59)씨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제주시 국장으로 일하던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자신의 사무실 등에서 부하 여직원에게 갑자기 입을 맞추고 껴안는 등 10여 차례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다른 부하직원들에게 ‘피해자가 평소 불성실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달라고 하는 등 2차 가해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시는 A씨를 4월 파면했다. #서귀포경찰서 소속 B경장은 지난 3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돼 제주지법으로부터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의 범행은 성매매 업소 여성이 “업주가 돈을 주지 않는다”고 검찰에 고소하면서 드러났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조사하면서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고객명단을 살피던 중 현직 경찰신분이 발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B경장에겐 정직 3개월이 징계가 내려진 것
▲ 제주시가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제주 옛모습'에 실린 제주시 산지천에서 물을 긷고 빨래를 하는 모습. 이 사진집에는 고 김홍인 선생이 촬영한 3천여 점의 사진 가운데 추려낸 200점이 실려있다. [연합뉴스] 옛 제주도심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산지천은 향수 어린 추억이 담긴 곳이다. 누군가는 산지천 인근에서 은어 낚시를 하던 추억을, 또 다른 이는 산지천 빨래터에서 빨래하고 물을 길어 집으러 나르던 고단했던 옛 삶을 떠올린다. 그뿐만일까. 조상 대대로 일궈 온 삶의 터전이자 탐라국의 중심지였다. 산지천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 제주인의 삶의 터전 산지천 산지천은 한라산 북사면 해발 720m 지점에서 발원해 제주도심을 지나 바다로 빠져나간다. 산지천은 '산지'(山地)라는 말 그대로 '산이 있는 땅에 흐르는 내(川)'라는 뜻이다. '산저천'(山低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산지천 하류에 있던 '금산(禁山) 아래를 흐르는 내'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외에도 '산짓내'
▲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의 한 주택에서 10대 남학생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변을 당한 중학생 A군의 사연이 여전히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들고 있다. 한 남성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그의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보호하려고 애썼던 게 그 아들이다. A군 어머니는 22일 한 언론에 “B씨가 내 아들을 먼저 죽이고 나를 죽이겠다고 지속적으로 협박했다”면서 “아들이 걱정돼 늘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아들은 자기가 제압할 수 있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고 눈물을 쏟았다. 이어 “가정폭력을 당할 때마다 아들이 나를 안심시키기 바빴다”면서 “피해자 진술을 하러 경찰서에 갈 때도 아들과 함께 갔다”고 말했다. A군은 지난 5월 가정폭력이 일어났을 때도 부서진 TV와 컴퓨터 등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부서진 유리조각까지 모아 비닐봉지에 담았다고 한다. 나중에 수사 기록용으로 제출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의젓했던 A군은 결국 자신의 집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 11일 오전 10시 25분께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인근 해안에서 폐그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해양보호생물 붉은바다거북이 발견됐다. 폐어구에 걸려 다리가 절단되고, 탈진해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제주해양경찰서] 전래설화 ‘별주부전’의 주인공 바다거북은 예로부터 학, 사슴과 더불어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이러한 명성에는 이유가 있다. 붉은바다거북은 수명이 약 70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00년 이상이라는 설도 있다. 전세계에 7종이 있는 바다거북은 주로 열대 및 아열대 해역에 서식한다. 일부 종은 온대해역에도 분포한다. 제주바다는 푸른바다거북과 붉은바다거북의 서식지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25분께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 인근 해안. 폐그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붉은바다거북이 발견됐다. 이 거북은 등껍질에 상처가 있었고, 탈진해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 거북은 특히 왼쪽 앞다리가 잘려있는 상태였다. 김병엽 제주대 돌고래연구팀 교수는 “폐어구에 감긴 채 헤엄쳐보려고 계속 발을 움직이다 그물이 점점 꼬이고 조여져서 다리가 절단된 것 같다&rdqu
“제가 만난 대부분의 예멘인들은 제주에 들어온 것 자체를 감사하게 여겼어요.” 제주시 할랄 음식점 ‘아살람’을 운영하는 하민경(42)씨는 2018년 3월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위해 자신이 무용 연습실로 쓰던 100㎡ 규모의 공간을 흔쾌히 내줬다. 그는 여기서 알게된 예멘인 모하메드 아민 알마마리(39)씨와 이듬해 4월 결혼식을 올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씨는 “지금은 대부분의 예멘인이 뭍지방으로 떠났다”면서 “현재 남아있는 예멘인들도 처음에는 언론사들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했지만 이후 내전 관련 트라우마 때문에 취재 요청을 거절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하씨는 “그들은 제주에선 주로 어업 등 1차산업에 취업했다”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어선에서 일하고 있는 예멘인 2명을 바다에 던지기도 하고, 고용주가 말을 못알아듣는다는 이유로 예멘인들을 집단 구타하는 등 차별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예멘인에 대한 편견이 가중되는게 싫어 경찰에 신고조차 못했다고 하더라”면서 “하지만 대부분의 예멘인들은 그런 차별을 받았음에도 제주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하씨는 “뭍지방으로 떠난 예멘인도 5~6일씩 받는 휴가를 이용해 제주를 다시 찾는다”면서 “전쟁 중인
▲ 제주관광공사 전경. 사실 치욕이었다. 지방공기업이라지만 그래도 요즘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5년만에 어렵사리 신입직원을 뽑았더니 낭패였다. 한 합격자가 "임금이 낮다"며 입사를 포기했다. '제주관광의 중추' 역할을 해오던 제주관광공사가 초유의 경영위기 국면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땅한 수익이 없어 독자생존의 길이 요원한데다 '시어머니' 같은 제주도정의 등쌀을 벗어날 방법도 없어 미래로 갈 묘수도 찾지 못하고 있다. 입사포기자 사례만 있는게 아니다. 14일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낮은 임금’을 이유로 입사를 포기한 신입직원 사례 외에 최근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도 지원자가 없어 재공고를 했다. 공사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급여 문제는 물론 공사의 불투명한 미래요인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기업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고용 안정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업무강도, 높은 임금 등으로 인기 있는 직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방공기업인 제주관광공사에선 5년 동안 4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제주관광공사의 직원 만족도는
제주를 여는 창! <제이누리>가 제주학연구센터와 '제주의 말과 글 되살리기' 장정에 다시 나선다. 오는 9월 30일까지 진행하는 '아름다운 제주의 말과 글 제주어 찾기' 공모전이다. 올해로 9번째다. 제주어(語)의 진면목을 찾고, 우리의 젊은 세대들조차 쓰지 않아 사라져가는 언어가 돼 가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전국 단위 공모전이다. 제주학연구센터와 <제이누리>가 주최.주관하고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제주도교육청, 연세대 제주총동문회가 후원하는 이번 공모전은 9월 30일까지 공모전 공식사이트(http://jnuri2021.webjejuns.com)를 통해 접수 받는다. <제이누리> 사이트 메인페이지 왼쪽 배너를 클릭하고 들어와도 된다. 전국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응모 가능하다. 공모는 일반과 학생 두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다. 대학생은 일반 부문으로 응모해야 한다. 시·기사·수필 등 제주어 글쓰기와 동영상 분야로 1인 2개 작품까지만 응모 가능하다. 다른 대회 입상작과 본 대회 1~8회까지의 대상.최우수상 수장자는 응모가 제한된다. 아름다운 제주말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최근 3년간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재심에서 연이어 무죄 또는 공소기각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을 향해 이제야 단 몇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4·3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선 70여 년 전 제주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주체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규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 남한 지역을 통치했던 미군정이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외치던 시민들을 강경하게 탄압하며 제주를 대학살의 현장으로 이끈 사실이 여러 보고서와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책임을 밝히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작업은 아직 미진한 상황.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5차례의 공동 기획보도를 통해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에 대한 진단부터 이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운동, 대중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최근 3년간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재심에서 연이어 무죄 또는 공소기각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을 향해 이제야 단 몇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4·3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선 70여 년 전 제주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주체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규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 남한 지역을 통치했던 미군정이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외치던 시민들을 강경하게 탄압하며 제주를 대학살의 현장으로 이끈 사실이 여러 보고서와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책임을 밝히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작업은 아직 미진한 상황.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5차례의 공동 기획보도를 통해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에 대한 진단부터 이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운동, 대중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최근 3년간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재심에서 연이어 무죄 또는 공소기각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을 향해 이제야 단 몇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4·3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선 70여 년 전 제주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주체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규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 남한 지역을 통치했던 미군정이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외치던 시민들을 강경하게 탄압하며 제주를 대학살의 현장으로 이끈 사실이 여러 보고서와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책임을 밝히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작업은 아직 미진한 상황.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5차례의 공동 기획보도를 통해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에 대한 진단부터 이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운동, 대중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