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제1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동요 '새싹들이다'를 만든 좌승원 전 제주국제교육정보원장이 18일 오전 3시54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태생인 고인은 제주교육대학 재학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성산초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KBS제주 어린이합창단 지휘를 맡고 있던 1983년 이수지(당시 제주 북초교 5년, KBS제주 어린이합창단)양과 함께 MBC 창작동요제에 참가해 최고상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새싹들이다'는 한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고인의 고향인 제주시 한경면 싱게물공원에도 노래비가 세워졌다. 봉개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뒤 2006년 초대 제주국제교육정보원장을 맡아 2년 후 정년퇴임했다. 유족은 1남2녀로 좌보람·좌으뜸·좌푸름씨 등이 있다. 빈소는 제주중앙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은 20일 오전 8시30분이다. 장지는 제주시 해안동 선영. ☎ 064-786-7440 [제이누리=오신정 기자]
강택상 전 제주시장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강 전 시장은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출신으로 애월중, 제주제일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육군 장교로 복무하다 대위로 전역하고 1979년 유신 사무관제도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제주도 동원계장과 기획계장, 산업경제과장, 재정경제국장, 관광문화국장 등을 지내다 행정자치부로 전출돼 민간협력과장, 제주4.3처리지원단장 등을 역임한 뒤 제주도에 기획관리실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정무부지사 권한대행, 도의회사무처장, 제주도 경영기획실장, 행정부지사 권한대항 등 을 지내고 2008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김태환 지사가 발탁, 제24대 제주시장을 지냈다. 시장 퇴임 직후엔 제주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섰지만 현명관 후보에 밀려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다. 고인의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제3분향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5일, 장지는 애월읍 봉성리 가족묘지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남연숙씨 등이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문태수 전 제주도 정무부지사가 급환으로 21일 밤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출신으로 생전 제주시 총무국장, 남제주군 부군수, 서귀포시 부시장, 제주시 부시장, 제주도 정무부지사 등을 역임하고 1997년 제2대 정무부지사를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쳤다. 2008년부터 21C제주유교문화발전연구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예절입도구현운동’ 추진과 한글축문을 발행하는 등 유교문화 중흥에 노력했다. 2010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향교재단 제23대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재임기간 중 쌓은 공적을 인정받아 새마을훈장 노력장,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4분향실이다. 일포는 23일, 발인은 24일 오전 10시 30분. 장지는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가족묘지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축정 여사와 아들 문용석 제주테크노파크 원장, 문용혁 제주도 에너지산업과 팀장, 문준걸 충남 신양중 교장 등이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문태수씨(전 제주도 정무부지사, 전 성균관 부반장ㆍ향년 88세) 별세, 이축정씨 남편상, 문용석(제주테크노파크 원장)ㆍ故 용철(전 서울경제신문 기자)ㆍ용혁(제주도청 에너지산업과 팀장)ㆍ준걸(충남 신양중학교
㈜한림공원 창업주이자 재단법인 재암문화재단 설립자인 송봉규 한림공원 명예회장이 지난 1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제주시 한림읍 출신인 고인은 1956년 제2대 제주도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 70’ 만국박람회를 찾은 고인은 자신의 고향인 한림도 이에 못지않은 관광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정원과 동경 일대 유명 관광지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귀국한 후 고인은 이듬해 협재굴 일대 10만여평의 모래밭을 사들였다. 그간 수차례 경매에도 팔리지 않던 땅이었다. 한림 관광단지 조성을 구상한 고인은 같은해 5개년 개획으로 한림지구 종합관광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이어 10만여평의 황무지에 돌을 걷어내고 비옥한 흙을 옮겨와 워싱턴야자 씨앗을 뿌리고,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아름답고 희귀한 식물종자 5만여개를 파종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을 길어다 뿌리니 싹이 나고 묘목이 활착했다. 현재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 대표관광지인 한림공원의 시초다. 인근의 협재굴과 쌍용굴도 같은해 9월30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됐다. 이어 1982년 사업 허가를 받고 본격적으로 한림공원 조성
송승천 제주도체육회장이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고인은 제주도체육회 상임부회장, 제주도씨름협회장, 대한전문건설협회 제주도회 회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12월 민선 2기 제38대 제주도체육회장 선거에서 당선돼 지난 2월부터 제주도체육회 회장 임기를 수행중이었다. 고인은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장지는 제주시 천주교 황사평 성지다. 장례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제주도체육회는 도 체육회관 2층 세미나실에 분향소를 마련해 10일부터 12일까지 조문을 받는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제주도가 내게는 행운이자 기회였다. 당선과 더불어 낙선도 있었기에 나는 독선의 해악을 알게 되고 비전과 가치공유의 미덕을 학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첫 선거에서 낙선한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하는 반성과 회한을 내 삶의 성숙을 위한 자양분으로 비축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신조대로 살았다. 그의 신조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였다.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제29대 관선 제주도지사를 거쳐 초대 민선 제주지사를 역임한 신구범. 1942년생인 그는 모진 풍파와 시련의 삶을 뒤로하고 향년 81세의 나이로 2일 아침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는 풍운아이자 좌절한 혁명가, 최고의 기획가였다. 그의 유년시절 기억 하나. 누구나 그렇듯 '제주현대사'였다. 조천읍 신촌리 태생인 그는 초등생 시절 '4.3폭도의 수괴'로 불린 이덕구의 아들과 단짝이었다. 그 단짝은 그 참상의 시기에 홀연 사라졌다. 그 기억을 더듬어 좌.우파로 나뉘어 치러지던 4.3위령제는 그의 지사재임 시절 처음으로 '합동위령제'로 치러졌다. 장년기 기억. 그는 농림부 축산국장 시절 한국마사회의 체육부 이관을 반대하다 당시 6공의 황태자인 박철언 장관에 '찍혀'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2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그는 오현고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4년을 중퇴, 1967년 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로 입문했다. 제주도 기획관,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농무관, FAO(국제식량농업기구) 한국교체수석대표,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농업구조조정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YS정부 시절인 1993년 12월 제29대 제주도지사로 취임했다. 이어 첫 민선 지방선거인 1995년 6·27선거에선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돼 31대 지사를 역임했다. 그러나 98년, 2002년 두 번의 제주지사 선거에선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후 축협중앙회장을 거쳐 친환경 농업회사법인인 (주)삼무와 전시판매장인 삼무힐랜드를 운영했지만 지사 재직시절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 2년여 옥고를 치렀다. 삼무힐랜드는 그의 수감기간 중 문을 닫았다. 축협중앙회장 시절엔 정부의 강제적인 농.축협 통합에 반발, 국회에서 할복사건을 벌여 파란이 일기도 했다. 인생의 굴곡과 고비마다 정면도전을 하며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간다'는 그의 신조를 지켰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제주삼다수와 관광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교역, 제주세
오광협 전 서귀포시장이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서귀포시 호근동 출신인 고(故) 오광협 전 서귀포시장은 제주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탐라대 대학원에서 관광경영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9대 서귀포시장에 당선되면서 초대 민선 서귀포시장을 지냈다. 아울러 삼성여고 초대 교장,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이사, (사)산악인 오희준기념사업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1남 3녀로 빈소는 서귀포시 한빛장례식장 연꽃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제주출신 한국문단의 원로 한기팔 시인이 3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 한기팔 시인은 서귀포시 보목동 출신으로 서라벌예대를 졸업했다. 향토적인 서정을 노래한 제주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75년 시 전문지 ‘심상’ 1월호에 '원경', '꽃', '노을' 등 3편이 추천되면서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1978년 첫 시집 '서귀포'를 발간한 후 '불을 지피며', '서러운 날 바람의 초상', '순비기꽃' 등 40여 년간 시집 8권을 펴냈다. 그는 제주도문화상, 서귀포시민상, 제주문학상, 문학아카데미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서귀포지부장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서귀포지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문화 예술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빈소는 서귀포 한빛장례식장. 발인은 6일 오전 7시다. 장지는 서귀포시 토평동 가족묘지.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문대탄 우리공화당 상임고문이 18일 타계했다. 향년 84세. 문 고문은 1939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과대학 법학과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 제주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문 고문은 문재인 정권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문 정권에 맞서온 대표적 인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는데도 주력해왔다. 가족으로는 배우자 이혜선씨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이중 차남 건식, 장녀 건영, 차녀 건민이 사법시험, 3남 건협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현재 나란히 법조인으로 종사하고 있다. 장녀 문건영씨는 현재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빈소는 제주시 연북로 부민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8시. 장지는 서부시립묘지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김영호 초대 제주연구원장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김 전 원장은 제주교육대학 학장과 제주도 공직자윤리위원장, 제주시자원봉사협의회장, 동원학원 관선 이사장,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 교육.문화계의 원로로 불린다. 그는 민선 1기 신구범 지사시절인 1997년 3월 설립된 제주연구원의 전신인 초대 제주발전연구원장을 맡아 1998년 8월까지 재임하며 연구원의 기틀을 다졌다. 고인의 빈소는 제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 제1분향실에 마련됐다. 장지는 양지공원이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10시 중앙성당 미사)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부동석 제주도관광협회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57세. 27일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병을 앓던 부 회장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 새벽 생사를 달리했다. 고인은 협회장 취임 전부터 오랫동안 관광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착한가게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했다. 제주도배구협회 회장을 역임한 고인은 2019년 김영진 전임 회장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 이후 처리진 관광협회장 보궐선거에 단독 출마했다.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 제35대 관광협회회장에 오른 고인은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를 마친 2021년 2월 제36대 회장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고인의 임기는 2024년 2월까지다. 하지만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현직 회장이 별세함에 따라 관광협회는 당분간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빈소는 부민장례식장 제2분향실. 31일 오전 6시 영결식을 거쳐 발인은 오전 7시. 연락처는 부인 한혜선 010-9491-1696 [제이누리=양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