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Martin McDonagh) 감독의 2022년 작품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는 제목만큼이나 독특하고 흥미롭다. 그해 베니스 영화제를 석권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러 부문에서 최고의 후보에 올랐다. 더스쿠프의 ‘영화로 본 세상’, 이번엔 이 영화를 펼쳐봤다. 영화는 ‘이니셰린’이라는 아일랜드 가상(假想)의 작은 섬에서 벌어지는 파우릭(콜린 파렐)과 콜름(브렌던 글리슨)이라는 두 친구 사이에 절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소 황당하고 엽기적인 사건을 다룬다. 두 인물이 벌이는 짓들은 분명 황당한 코미디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그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에 1922~1923년 터진 아일랜드 내전이란 비극적 역사를 밑그림으로 놓으면 대단히 마음 착잡해지는 비극적 블랙코미디가 보인다. 아일랜드 내전을 깔고 있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영화로 만든 인물은 짐작대로 아일랜드 출신이다. 맥도나 감독은 런던에서 차별받는 아일랜드 출신 가난한 노동자 부모 밑에서 태어나 ‘무학(無學)’에 가까움에도 탁월한 재능을 꽃피운 입지전적인 작가이자 감독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맥도나 감독은 “스토리텔러의 유일한
정부가 656조9000억원 규모로 편성한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보다 18조2000억원 많다. 증가율이 2.8%로 재정통계를 정비한 2005년 이후 가장 낮다. 직전 문재인 정부 시절 증가율(8.7%)은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평균치(5% 중반)에도 못 미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했다”고 밝혔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선거의 해에 긴축예산을 편성한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2017년 6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2022년 100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지난해보다 39조원 줄었다. 세수가 부족한 판에 건전재정 기조를 지키려는 고육책으로도 여겨진다. 그러나 올해 예산(5.1% 증가)도 긴축으로 인식되는데 내년 예산안 증가율을 더 낮춘 것은 긴축 속도가 과한 측면이 있다.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1%대 저성장에 직면한 상황에서 재정긴축이 경기회복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 만능주의’를 배격한다며 ‘긴축 만능주의’로 기우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반도체 경기 침체와 중국 경제의 성장세 둔화 등으로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는 등 불확실
흑인 남학생에게 플린 신부가 동성 성추행을 했다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마침내 흑인 남학생의 어머니인 밀러 부인을 학교로 부른다. 영문도 모른 채 학교에 찾아와 교장선생님이기도 한 알로이시우스 수녀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은 밀러 부인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하고 담담하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도 그녀의 시큰둥한 반응에 당황한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그 끔찍한 의혹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밀러 부인에게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부인께서도 저와 함께 반드시 밝혀야 하는 문제’라고 다그친다. 그런 알로이시우스 수녀에게 밀러 부인은 오히려 눈을 똑바로 뜨고 분노한다. 밀러 부인이 분노한 이유도 밝혀진다. 그 학생이 본래 동성애 성향이 있다는 것이며, 이 문제를 남편이 알면 아마도 아이를 ‘때려죽일 것’이라고 으르렁대듯 수녀에게 퍼붓는다. 또한 아이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흑인인 자기 아들이 요행히 얻은 백인학교 입학 기회를 살려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지, 신부와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렇게 천지분간을 못한 채 아들 신세 망치려드는 알로이시우스 수녀를 질책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꿨다.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한경협으로 흡수 통합했다. 이에 따라 2016년 전경련을 탈퇴한 뒤에도 한경연 회원으로 남아 있던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 계열사들이 한경협 회원으로 승계돼 한경연에 가입하게 됐다.[※참고: 한경협 명칭은 정부가 정관 개정을 승인한 9월 이후 공식 사용한다.] 4대 그룹의 전경련 탈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때문이다. 전경련이 청와대 요구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회원사들이 거액 출연금을 내는 데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자 정경유착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숨죽였던 전경련은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회장직무대행을 맡으며 활동을 재개했다. 전경련은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를 모델로 설립한 기업인 단체다. 경단련이 일본경영자단체연맹과 통합했듯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전경련도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전경련은 그 길을 회피하고 버티다가 윤석열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부활했다. 전경련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설립 당시 이름으로 바꿨다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경협은
100세 너머를 사는 장수노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100세 이상 장수인을 400명 이상 연구해 온 박상철 교수(전남대 연구석좌교수)에 의하면, 첫 번째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걷든가, 텃밭을 가꾸든가, 잠시도 쉬지 않고 손발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장수의 선두를 달린다. 말하자면 남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마치 세월도 이들의 부지런함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왕성한 심신의 활동이, 결국 운동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더불어 뇌의 신경세포도 자극해주므로 치매가 생길 틈도 없애준단다. 그러한 삶의 속도를 유지함으로써 노화에 붙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은 장수인으로 남게 되는 셈이다. 세월보다 한 발 앞서 삶을 박차고 달려나가는 인생 경주의 상급이라고나 할까? 둘째는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점이다. 동네 대소사를 꿰뚫고 있으며,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둔다. 셋째는 솔직하다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가슴에 쌓아두지 않고 할 말이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렇게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게 된다. 넷째 잘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혼자 사는 노인이지만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식들과 동
영화 속에 ‘빌런’이 존재한다면, 영화 ‘다우트’ 속의 빌런은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몫이다. 통상 영화 속 빌런들이 적극적으로 악(惡)을 행한다면,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적극적인 악의 의지를 실행한다기보단 자신도 모르게 인식상의 오류를 저질러 악역이 돼버리는 빌런인 듯하다.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범하는 인식의 오류는 중학생만 돼도 배우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유명한 명제를 지키기 않기 때문이다. 이성적 판단에 따라 주관적 진리에 도달하는 과학적 방법을 정립한 데카르트의 본래 명제는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고,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dubito ergo cogito, ergo sum)’는 삼단논법이다. 데카르트의 가르침은 ‘의심을 하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주관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고, 그러므로 비로소 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데카르트가 말하는 ‘코기토(인식ㆍcogito)’는 2가지로 나뉜다. ‘의심(doubt)’은 감각적 직관에 의한 ‘감성적ㆍ감각적 인식’이다. 이는 사물의 외면적인 느낌과도 같은 것이다. 반면 ‘생각(thi
올해 1%대 경제성장이 기정사실화한 판에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내년에도 1%대 저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국제금융센터가 8개 투자은행의 7월 말 보고서를 집계한 결과, 내년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 평균치는 1.9%에 머물렀다. 2월 2.1%였던 것이 3월에 2.0%로 내려가더니 급기야 1%대로 떨어졌다. 정부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 2.4%와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는 모습이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올해 성장률도 1.1%로 낮게 본다. 내년에도 1%대에 머문다면 2년 연속 1%대 성장이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있는 1954년 이후 처음 나타나는 저성장 기록이다. 2% 수준인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경제성장이 이어지면 기업 도산과 일자리 가뭄을 초래하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려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 2년 연속 1%대 저성장은 70여년의 한국 경제 발전사에 전례가 없다. 한국전쟁을 수습하던 1956년(0.6%), 2차 석유파동 직후인 1980년(-1.6%),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코로나19 사태 첫해인 2020년(-0.7%) 등 5개 연도 외에는 경제성장률이 2% 밑으로
“나가 복시러운 할망이여, 똘네 집에 살앙 ...." 요즘들어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아니우다게, 어머니! 나가 복시러운 거주. 육십이 넘도록 어머니영 고치 사는 똘이, 이 세상에 몇이나 이시쿠과?”. 요즘들어 하루에 한 두 번은 주고받는 어머니와의 대화다. 내가 특별히 어머니에게 잘 하는 것도 없건만... “고맙다, 이! 이 백 설 난 어멍을 제게 죽어불랜 안 해영...”이라는 어머니가, 참으로 송구스럽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미국의 공원묘지에 장사지내던 날, 마치 혼자 된 어린 아이처럼 멍~ 해진 어머니를 모시고 온 지, 어느새 20년이다. “정옥아, 고맙다, 이! 니네 아방을 미국 땅 골충에 묻어 부난, 난 어떵 허코 허멍 우는디..., 이제부터 어머닌 나영 고치 살게 마씸 허멍, 얼른 나 손 심엉 이디로 와 줜...” 요즘들어 어머니가 자주 옛날 말씀을 하신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시면서, 어렸을 적 홀어머니와 같이 살 던 얘기까지 꺼내신다. “나 두릴 땐, 아방이 죽어부렁 두불 시집을 가게 되민, 똘 하나 이신 거 돌앙 강, ‘야이는 아기업개우다’ 허멍 체면을 살려신예! 경 헌디, 우리 어멍은 아방이 일본에 돈 벌레 가당 오꼬시 죽어부러
중학교 2학년짜리 흑인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를 두고 알로이시우스 수녀와 플린 신부는 거칠게 충돌한다. 드러난 사실(fact)은 간단하다. 수업 중에 플린 신부의 호출을 받아 사제관에서 플린 신부를 ‘독대’하고 온 학생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고, 학생이 불안해했다는 것이다. 그럼 사실이 곧 진실일까. 플린 신부는 육식, 포도주, 담배를 즐긴다. 플린 신부가 사제실에서 남학생과 독대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기호(嗜好)에 관한 사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truth)’이 달라진다. 플린 신부를 학생들을 아끼고, 그저 유쾌하고 호탕한 인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실들은 반대로 플린 신부의 성향을 탐욕적이고 쾌락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서 해석하면 플린 신부가 ‘아동 성추행’을 했으리라고 추정할 수도 있고 그것이 알로이시우스 수녀에겐 ‘진실’이 된다. 사실과 진실이라는 말은 비슷한 말 같지만, 실은 정반대 의미를 갖고 있다. 사실은 변하지 않고 고정적이지만, 진실은 유동적이다. 사실은 눈에 보이지만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영역이다. 진실이란 존재하는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다. 해석은 사람마다 주관적이어
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과 경제활동이 담겨 있다. 여러 개념과 수치로 나타나는 것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는 정책 담당자와 정치권의 몫이다. 각종 경제지표와 사회지표가 전하는 의미를 제대로 읽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 정책이 신뢰를 얻고, 정부와 정당 등 정치집단의 실력도 인정받는다. 매달 나오는 통계이지만, 9일 발표된 7월 고용동향은 우리나라 고용시장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먼저 취업자 수 증가폭이 급감했다. 올해 들어 월 30만~40만명을 유지하던 것이 7월에 21만1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던 2021년 2월 이후 29개월 만의 최소 증가폭이다. 정부는 7월에 집중호우가 잦았고, 건설경기가 위축되는 등 계절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점이 적지 않다. 사회 전반의 고령화와 더불어 고용시장도 늙어가고 있다. 20만명대에 그친 취업자 수 증가마저 60세 이상 고령층이 주도했다. 60세 이상 취업자 증가폭이 29만8000명으로 전체 취업자 증가폭을 넘어섰다. 나머지 연령층은 되레 8만7000명 줄었다. 특히 새로 고용시장에 진입하는
올 여름은 특별하게 무덥다. 100세 노인에게는 가혹할 정도다.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오늘 오후 1시 30분 현재, 온도계는 섭씨 32도 너머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에 의하면 햇볕에 의해 기온이 오르고 습도도 높아 체감온도는 35도가 넘는다. 그러면 그렇지! 오, 참을 수 없는 한낮의 무더위여! 전반적으로 올해 8월의 체감온도는 예년의 8월 평균기온보다 다소 높을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 통계를 들여다보면, 지난 7월 10일 오후 1시 21분 제주(북부)의 일 최고기온은 37.3도를 기록하였다. 이는 제주기상청이 기상관측을 시작한 1923년 이후 7월 기록으로는 역대 2위, 전체 기록으로는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참고로, 제주지방기상청의 전체 일 최고기온 최고치 역대 순위 1위는 2022년 8월 10일 37.5도, 2위 1942년 7월 25일 37.5도, 3위 1998년 8월 15일 37.4도, 4위 2023년 7월 10일 37.3도 등이다. 7월과 8월이 키재기를 하듯이 낮 최고기온의 신기록 기록을 주고받는 형국이다. 심리적으로는 7월보다 8월이 더 무덥고, 오늘보다 내일이 한층 무더울 것으로 보인다. 아, 이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극단적인 ‘의심’은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한 채 영화가 끝난다. 플린 신부는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의심을 이기지 못한 채 결국 사임한다. 교구를 떠난 플린 신부가 다시는 사제를 못하게 됐다면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완승’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플린 신부는 다른 교구로 옮겨 간다. 표면적으로 보면 플린 신부의 ‘의혹’을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플린 신부가 교구를 떠났으니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절반의 승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알로이시우스 수녀로선 속 터지게도 플린 신부는 다른 교구로 영전(榮轉)해 이동한다.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사실상의 패배’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플린 신부의 영전 소식을 알게 된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혼란스럽고 참담하다. 그럼에도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플린 신부가 ‘흑인아동 성추행범’이라는 자신의 의심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제임스 수녀를 붙잡고 “나는 그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도 그 사람이 의심스러운 것을 어쩔 수 없다”고 비장하게 말한다. 문득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입증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