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릿 트레인(Bullet Trainㆍ2022)’은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의 신작 액션 코미디 물이다. 제작비 1억 달러를 투자해서 전 세계적으로 2억4000만 달러를 거둬들였다면 흥행에 성공한 셈인데, 우리나라에선 흥행 보증수표라 일컬을 만한 브래드 피트가 주연임에도 흥행에 참패한 듯하다. 왜 일까. 우리나라에서 ‘불릿 트레인’이 실패한 까닭을 말하라고 한다면, 첫번째 ‘왜색(倭色)’을 꼬집을 수 있다. ‘왜색’을 향한 우리나라 관객의 거부감은 제아무리 브래드 피트라고 해도 ‘넘사벽’이다. 우리가 ‘불릿 트레인’의 ‘왜색’에 섭섭했다면, 정작 일본 관객들은 이 영화에 듬뿍 뿌려진 ‘표백제’에 섭섭했을지도 모르겠다. 원작이 일본 소설인데, 영화 속 배역은 대부분 백인 서양인들이다. 원작에 나오는 일본 킬러 대신 백인 킬러가 등장한다고 해서 영화가 산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영화의 주제가 ‘운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운명’을 보는 시각은 동서양이 확연히 다른 편이다. 영화의 원작자는 동양적인 운명관을 배경에 깔고 있는 듯한데, 백인 배우들이 나와서 동양적 운명관을 이야기하고 연기하는 게 조금은 이질감이 든다. 설날 특집
영화 초반에 케네디 대통령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는 것으로 봐서 영화는 베트남 전쟁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저격당하던 시점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비슷한 시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이야기가 정신병원 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수용되어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몰이해와 반인권..... 여기에서는 ‘하이드로테라피 치료(수치료)’라는 요법도 시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발가벗기고, 6~8시간 동안 얼음 욕조에 가두는 무자비한 시술로, 쉽게 말하면 정신 차리게 하는 방법이다.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 1999)’ 영화의 이야기이다. 붙들려오게 된 정신병원 작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던 18살 수잔나 케이슨(위노나 라이더)은 학교에서나, 밖에서나 이해 못할 행동들을 해서 어른들을 힘들게 한다. 보드카 한 병에 아스피린 한 통을 탈탈 털어먹고 나서 잠들었는데, 자살을 하려 했다고 클레이무어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우울증과 자살 시도로 들어왔지만, 의사와 상담하면서는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라는 진단을 받는다. 일
레고랜드 사태가 마비시킨 국내 회사채 시장이 기능을 회복하기도 전에 흥국생명 사태가 해외 채권시장에서 한국 금융회사와 기업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었다. 불과 한달여 사이 국내 채권 발행과 외자 조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금융시장에 혼란을 야기했다. 이쯤 되면 한국 정부의 금융감독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생보업계 8위 흥국생명이 5억 달러어치 신종자본증권(달러 표시 영구채)의 조기 상환을 연기했다가 상환하겠다고 번복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흥국생명의 상환 연기 발표로 한국 채권의 신뢰가 약화됐다. 흥국생명 채권은 물론 다른 금융사와 기업이 발행한 채권 가격도 급락했다. 발행 조건이 나빠져 다른 금융사들이 자금조달 계획을 보류하거나 중단하는 일까지 나타났다. 그러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나서 흥국생명과 모기업인 태광그룹으로 하여금 은행과 다른 보험사들을 통해 5000억원을 조달해 상환하도록 압박했다. 신종자본증권의 만기는 30년이지만, 발행주체 대부분은 5년이 지나면 돈을 일찍 갚을 권리(콜옵션)를 행사해왔다. 따라서 시장에선 사실상 5년 만기 채권으로 여겨진다. 이를 흥국생명이 5년 만에 갚지 않
구명물 밭. 우리 집을 대표하는 재산 제1호에는 할머니의 산소가 자리해 있다. 아, 우리 할머니……. 아버지는 당신의 서럽고 야속한 어머니를 이 밭의 가장 전망 좋은 곳에다 모셨다. 좌청룡 우백호는 아니지만 중문 마을을 병풍 삼고, 대포 마을의 주상절리를 바라보는 위치다. 중문 마을은 할머니의 남편이 살던 곳이고, 주상절리 일대는 대포마을 사람들이 ‘너배기’라 부르는 들판이다. 비교적 넓고 평평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한다. 그곳에는 할아버지의 논이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가 이웃의 논을 병작하고 있었다. 두 논 사이에는 제법 폭이 넓은 수로가 있어서 농로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동네 사람들도 이 지경에서는 지름길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 길을 에둘러서 먼 길을 돌았다. 중문마을과는 역방향인 성천포구로 내려가 배릿내오름을 올라서 산사람처럼 휘적거리면서 집으로 향했다. 아리랑 고개가 따로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러한 정황을 소문으로 듣는 할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할머니의 일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싸〜 하게 썰물처럼 밀려간다. 울퉁불퉁한 바위와
영화 속 V의 캐릭터는 대단히 독특하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비밀경찰로부터 이비(Evey)를 구출하는 등장부터 남다르다. 16세기 복장으로 나타나 검 하나로 3명의 비밀경찰들의 총을 제압한다. V에게 구출된 이비가 깨어난 곳은 위치를 알 수 없는 V의 아지트다. 사방에는 온통 빛바랜 고전 서적들이 쌓여있다. 인사동 고서점 창고 같다. V는 슈틀러 일당을 때려잡는 업무 외 시간은 오직 그 고서를 읽으면서 보낸다. 벽에도 모두 고전 회화들이 걸려 있다. 중세 기사의 갑옷도 있다. V는 중세 기사의 갑옷을 상대로 검술을 연마하는 한편 흑백 브라운관 TV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다룬 영화를 보는 데 몰두한다. V는 대사를 모두 외울 정도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의 덕후다. 그가 몰두하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영화사 박물관에나 소장돼 있을 법한 1930년대 작품이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최근 버전들은 모두 쓰레기로 치부한다. V의 ‘시그널 뮤직’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1812년이다. V가 구사하는 모든 어휘와 문장들은 모두 뒤마나 블레이크, 셰익스피어의 고전적이고 어마어마한 어휘와 문장들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원작을 저술한 앨런
세계유산동굴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동굴에 해를 끼치겠다는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11월 12일 토요일부터 한 달 동안 만장굴에서 미디어맵핑(Media Mapping) 쇼를 선보일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이번 행사는 만장굴 내 공개구간에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소재로 미디어맵핑 공연을 열고 시민들이 표를 구매해서 관람하는 프로그램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미디어맵핑은 프로젝터를 이용해 건물 외벽 등을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의 일종으로 지형 오브제 등에 세밀한 가상현실성을 구현하기 위해 다수의 프로젝션과 조명, 고출력 음향이 설치되어야 한다. 발생하는 열과 소음, 진동때문에 미디어맵핑 대부분은 야외에서 실행된다. 그런데 이런 미디어쇼를 세계자연유산 용암동굴 내부에서 굳이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보존되고 관리되어야 할 용암동굴을 그저 스펙터클을 소비하기 좋은 관람대상이나 상품으로만 이용하는 것에 유산본부의 고민은 없었나? 유산본부 측과 통화가 끝난 뒤, 천연동굴 보존·관리 지침을 찾아보았다. 관리지침 제15조(조명시설 설치 시 고려사항)는 동굴 내 조명시설 설치
맥 머피(잭 니콜슨)는 도박, 폭행,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교도소로 가게 되어 있으나 그보다는 정신병원에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꾸민다. 정신 감정이 끝날 때까지 임시로 있는 것으로 하고 들어온 병원은 무료하기 짝이 없다. 말을 걸어도 대꾸 도 안 하고, 재미있게 지내려고 해도 도저히 상대할만한 사람을 못 찾겠다. 모두들 시키는 대로만 하고, 정해진 일과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고 있는 이곳. 앞으로 긴 시간을 이렇게 지내긴 싫은데, 어떻게 하지? 우리에게는 ‘아마데우스(Amadeus, 1984)’,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 1996)’, ‘고야의 유령(Goya's Ghosts, 2006)’으로 알려진 밀로스 포만 감독이 1975년에 연출한 작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정신병동이라는 공간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맥 머피, 그리고 책임간호사 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정신병원의 변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시기의 정신병동 모습은 어떨까, 관심 가지면서 볼만 하다. 그 외 통제 안 되는 환자
올해로 27번째 기념일을 맞이하고 있는 '농업인의 날'은 대한민국 농업의 활기를 되찾고 농업 종사자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도록 만들어진 법정기념일이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확산하여 활력을 도모하고자 1996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11월 11일로 정한 이유는 '흙에서 태어나 흙과 더불어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삼토(三土)'에 기반을 두었다. 흙 토(土)를 파자하면 열 십(十)자와 한 일(一)자로 볼 수 있어, 11월 11일이 농업인의 날이 된 것이다. 농업인의 날 유래는 왕이 농사를 권장하던 기록이 고구려, 백제 등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나타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농업을 인간 생활의 텃밭으로 생각한다는 뜻을 가진 '농사지천하지대본(農事之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을 들어도 농업이 얼마나 우리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농업을 권하는 농민데이가 제정되었다가, 해방 후 폐지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권농’이 우리 고유의 전통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농민의 날'로 명칭과 날짜를 변경해 지금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돌과 바람이 가득한 제주, 척박한 이 곳에 활기를 띠게 한 것은 제주도민의 땀과 얼이 담긴 농업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2일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사상 초유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단행으로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2%로 여전히 높다. 이로써 미국은 기준금리 4% 시대에 진입했다. 또한 미국(연 3.75∼4.0%)과 한국(3.0%)의 기준금리 차이는 1.0%포인트로 확대됐다. 지난 10월 한국은행이 빅스텝(기준금리 0.50 %포인트 인상)을 밟아 0.25%포인트로 좁혀놓은 것이 이내 되돌아갔다. 그만큼 더 높은 금리(수익률)를 좇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가치가 떨어질(원·달러 환율 상승) 수 있다. 원화가치 약세는 각종 원부자재 등 수입물품의 원화 환산 가격을 높여 국내 물가 오름세를 자극하게 된다. 이런 판에 지난 8~9월 둔화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월(5.7%) 들어 다시 가팔라졌다. 특히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오름폭이 커졌다. 소비자들이 향후 물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 심리, 즉 기대인플레이션율도 높아졌다. ‘물가와의 전쟁’을 선언한 한은으로
시월의 아침 10시. 하늘이 너무 높아서일까, 바람이 솔솔 불어서일까. 오늘은 ‘휴무’라면서 집에 들른 언니가, 불현듯 어머니를 보듬어안는다. 그리고는 전에 없는 애교를 부리면서 “어머니, 어디 가구정 헌 디 어수광?”이라고 묻는다. 물으나 마나, 어머니는 “가민 어디 가느니? 나 몸뚱아리에 구경이 드랑드랑 했져”라고 하실 터이다. 10년도 아니고 20년을 같이 살아온 어머니의 속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내가 아닌가. 그런데 어머니가 달라지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 할망 산에 데려다 도라”고 하신다. 순간, 나와 언니의 눈이 불안스레 마주쳤다. 어머니가 이상하시다. 전에 없는 말을 하시니...... 어른들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전에 안 하던 일을 하시지 않는가. 그래도 어쩌랴. 모처럼 해 본 소리지만 어머니가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어머니는 마치 소풍 가는 어린 애 마냥 자동차 뒷좌석에 얼른 올라 앉았다. 100세 할머니 얼굴에 가을볕이 비쳐드니 잘 익은 감처럼 화사해졌다. ‘봄볕은 며느리 쪼이고, 가을볕은 딸을 쪼인다’ 했던가. 오늘은 어머니와 딸의 입장이 뒤바뀐 모양새다. 아이처럼 천진스런 어머니, 어머니처럼 염려스런 딸. 자동차만 타면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V는 영국 형사재판소 폭파로 슈틀러 정권에 정식으로 선전 포고하고, 곧바로 정권 핵심 인사들을 처형한다. 슈틀러 정권의 나팔수 프로테로를 그의 저택 욕실에서 처형하고, 소아성애에 탐닉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릴리만 주교를 처단한다. 프로테로와 릴리만 주교는 “단결을 통한 힘, 믿음을 통한 단결(Power through Unity, Unity through Faith)”이라는 구호를 내건 슈틀러 정권의 핵심권력자들이다. 프로테로는 선전선동을 통한 ‘단결’의 핵심이고, 릴리만 주교는 정권구호에 등장하는 ‘믿음(faith)’의 중심축이다. 정권의 ‘단결 호소인’과 ‘믿음 호소인’인 셈이다. 이들은 신을 믿는 것처럼 슈틀러를 믿음으로써 대동단결해 강력한 국가를 유지하자고 한다. 그런데 프로테로는 수용소 생체실험의 총감독 출신이고, 릴리만 주교는 생체실험의 참담한 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와선 소아성애에 탐닉하는 인간이다. 악마의 탈을 쓴 인간들이다. 악마의 탈을 쓴 인간들이 떠받치고 있는 정권이라면 그 정권도 악마의 탈을 쓴 정권일 수밖에 없겠다. V는 소아성애의 현장을 급습해 릴리만 주교를 처단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차드 3세」의 유
강원도 춘천 레고랜드가 내년부터 3개월 동안 휴장하기로 했다. 겨울철인 11〜12월 평일(화〜목요일)에 문을 닫는 데 이어 내년 1월부터 3월 23일까지 전면 휴장한다. 방문객이 기대에 못 미치고 불공정 계약 및 문화재 보존 논란, 놀이기구 사고 등 자체 문제 때문이라지만, 레고랜드발 채무불이행 사태가 촉발한 채권시장 경색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레고랜드 사태가 야기한 금융시장 불안은 신용 문제로 귀결된다. 어느 나라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채권은 해당 국가에서 최고의 신용도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강원도가 지역 내 레고랜드를 운영하는 회사가 발행한 채권에 약속한 지급보증 책임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부도 처리됐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발 금리상승 여파로 빡빡해진 채권시장에 지방정부가 보증을 선 채권도 안전하지 않다는 신호를 지방정부 스스로 보낸 셈이다. 전임 최문순 지사 시절 추진한 사업을 부정적으로 본 현직 김진태 지사가 강원도 곳간을 축낼까봐 빚을 못 갚겠다고 한 것인데 채권시장에 미칠 영향을 간과한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회사채 시장 상황은 최근 급속히 악화했다. 역대급 적자에 시달리는 한국전력이 채권을 대거 발행하면서 채권시장 자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