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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행사 취지부터 운영까지 총체적 문제 ... '탁상 행정'이 남긴 결과

 

"도민들이 불편함을 느껴야 자동차 사용이 줄어들고 걷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의 이 발언은 결국 현실이 됐다. 자동차는 접근이 어려웠고,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난 28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제주시 연북로에서 열린 '차 없는 거리 걷기' 행사장.

 

제주도는 이번 행사가 도민의 건강 증진과 걷기 문화 확산, 사람 중심의 보행환경 조성, 탄소중립 달성 등 여러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행사 당일 나타난 문제들은 이러한 대의명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도는 이번 행사에 도민과 관광객, 공직자와 동호회 회원 등 사전 접수된 4000여명을 포함해 전체 1만여명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오 지사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제주와 탄소중립 실천이라는 대의를 위해 도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했다.

 

그러나 행사 진행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들은 과연 이러한 대의명분이 도민들의 불편과 혼란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행사 당일 연북로가 부분 통제되면서 연삼로를 비롯한 주변 도로로 차량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일부 구간에서는 극심한 차량 정체가 발생해 운전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사전에 행사 소식을 접하지 못한 운전자들은 갑작스러운 도로 통제에 당황했고 안내 요원들과의 실랑이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 운전자는 "주말 아침 중요한 거래처 약속이 있어 급히 가던 중 연북로가 막혀 돌아가야 한다니 황당하다"며 "도민들에게 불편을 주면서 이 행사를 꼭 해야 하는 건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교통 혼잡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안전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도로를 막기 위해 설치된 중앙선 분리봉이 일부 철거되었고 이를 통해 억지로 유턴하는 차량들이 늘어나면서 교통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졌다. 또 통제 구간을 우회하기 위해 운전자들이 좁은 골목길이나 농로로 몰리면서 차량이 뒤엉켜 혼란을 가중시켰다. 

 

 

연북로는 차량 이용자들이 주로 찾는 상권이 형성된 곳으로 도로 통제는 곧바로 상인들의 생계에 타격을 주었다.

 

조명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오전에 찾아오기로 한 손님들이 모두 취소되거나 오후로 미뤄졌다"며 "행사로 인해 오전 장사는 완전히 망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주유소는 아예 문을 닫았고, 가구점은 개점 휴업 상태였다. 드라이브스루로 운영되는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도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

 

상인들은 "도로를 막아놓고 걷기 행사를 하면 우리는 어떻게 장사를 하라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연북로에는 도내 최대 규모의 장례식장이 있어 상주와 조문객들의 불편이 심각했다.

 

상복을 입은 한 조문객은 "조문하러 오려는 손님들이 길이 막혀 헤매고 있어 당황스럽다"며 "장례식장 근처에서 이런 행사가 열릴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행사 취지 중 하나였던 자전거 이용 활성화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 전용으로 개방된 2차선 도로에는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한 자전거 이용자는 "평소에도 자전거 도로가 부족해 불편한데 이렇게 잠깐 열린다고 해서 이용자가 많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연북로가 주말에도 관광객과 도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도로이며 대형 프랜차이즈 상가, 영화관, 장례식장 등 주요 시설이 밀집한 곳이라는 점에서 이곳을 통제하고 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도평동 주민 최모씨는 "차라리 해안도로를 통제해 걷기 행사를 진행하고, 걸으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연북로는 걷는 동안 볼 수 있는 경관이 모델하우스와 공사 현장뿐이라 걷기의 즐거움을 느끼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연북로에서는 '차 없는 거리'에 대한 홍보와 안내보다 부동산 모델하우스와 분양 홍보물이 더 눈에 띄었다.

 

 

행사에서는 왕복 4㎞를 완주한 참가자들에게 탐나는전 상품권 5000원권을 지급했다. 그러나 현금성 상품권을 지급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걷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데, 굳이 상품권을 줄 필요가 있느냐"며 "그 돈을 차라리 교통 대책이나 행사 개선에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안내 부족으로 인해 상품권 지급에 대한 혼란도 발생했다. 출발 지점과 반환 지점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일부 참가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반환 지점인 메가박스 측에서 출발한 참가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꼈다.

 

도남동 주민 정모씨는 "출발 지점을 몰라 반환 지점에서 출발해 걸어왔다"며 "하지만 걷기 행사 등록을 안해줘서 다시 반환점을 돌아 여기로 걸어왔다. 오늘만 2만보 걸었다"고 개탄했다. 

 

 

행사 참여 공무원들에게 식대 1만 원을 지급한 것도 뒷말을 낳았다.

 

제주도청 소속 공무원에게만 식대가 지급되고 행정시 공무원에게는 지급되지 않으면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주시 공무원인 박모씨는 "같은 공무원인데 도청과 시청 직원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작은 돈이라도 차별을 받는 느낌이 들어 서운하다"고 말했다.

 

또 일부 공무원들은 "전임 시장이 추진하려던 '관덕정 차 없는 거리' 행사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막으면서, 도지사가 추진하는 행사는 단숨에 성사되는 것을 보며 허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과연 '걷기의 즐거움'만을 남긴 행사였을까? '탁상 행정'의 뒤엔 여전히 혼란과 불편이란 긴 여운만 남아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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