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이 빚어낸 걸작 ‘바벨(2007년)’은 도무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모로코와 미국, 멕시코, 그리고 일본이라는 동떨어진 4개 나라에서 벌어지는 동떨어진 사건들을 보여준다.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 이 4개 나라의 동떨어진 인물들을 엮는 건 모로코 어린아이가 호기심에 쏴본 총알 한방이다. ▲ 우리는 자신이 어떤 ‘연쇄반응’의 고리 속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 일본 사업가가 모로코로 사냥 여행을 간다. 이 젊은 일본 사업가는 모로코의 현지 가이드에게 사냥총을 팁으로 선물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사냥총을 선물받은 모로코 가이드는 양들을 공격하는 자칼을 쫓아내기 위해 사냥총이 필요했던 양을 치는 친구에게 그 총을 판다. 사냥총을 산 양치기는 아들에게 그 총을 맡기고 양들을 잘 지키라고 당부한다. 이 소년은 총을 쏴보고 싶지만 자칼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좀이 쑤신 소년은 자칼 대신 멀리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조준하고 발사한다. 물론 나쁜 뜻은 없다. 그 총알은 관광버스를 타고 가던 미국인 젊은 부부(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 2022년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등 큰 선거를 두 번 치러야 한다. 지금처럼 여권 대선 후보들이 민생 현안을 뒷전으로 미룬 채 선심성 돈 퍼주기 경쟁에 열을 올려선 곤란하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에도 초슈퍼예산 편성을 예고했다. 정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년 예산안은 약 600조원. 올해 본예산(558조원)보다 7.5% 많은 규모다. 올해 총지출 증가율(8.9%)보다는 낮지만, 2020~2024년 중기 재정운용계획에 잡아놓은 2022년 총지출 증가율(5.7%)보다 1.8%포인트 높다. 정부 예산안은 관례대로 8월말 짜여 정기국회 개원에 맞춰 9월 3일 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움직임을 보면 전체 규모는 600조원을 넘어서 61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약 400조원이었던 예산이 불과 5년 만에 200조원 넘게 불어나는 것이다. 당초 내년 예산안은 600조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는데, 올해 두 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여당의 기류가 바뀌었다. 2차 추경을 감안한 올해 전체 예산 규모는 지난해 본예산(512조3000억원)보다 1
미국에 건너가 맨땅에 헤딩하는 제이콥은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악착같이 모은 돈을 모두 털어넣고 은행 융자까지 얻어 아칸소 허허벌판에 땅을 마련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농장주’의 꿈을 안고 그는 가족들을 이끌고 아칸소 촌구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농장주인을 향한 제이콥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 제이콥은 자식이 ‘노예’의 삶이 아닌 ‘주인’의 삶을 살게 하고 싶어 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아칸소 벌판에 땅을 마련한 제이콥은 등골 빠지는 중노동에 시달린다. 제이콥 자신만 힘든 것도 아니다. 자신의 중노동은 그렇다 쳐도 사람 구경조차 어려운 아칸소 구석에 따라온 아들 데이비드와 딸 앤의 형편도 딱하다. 주변에 인가조차 없으니 함께 어울릴 또래가 없을 수밖에 없다. 학교가 끝나면 마지못해 시간을 때우는 학교 친구의 집에는 술주정뱅이 아빠가 상주한다. 주정뱅이답게 언행이 대단히 비교육적이다. 무한경쟁시대의 막이 오른 1980년대 미국은 사교육 열풍이 불어 소위 ‘헬리콥터 맘’들이 극성스럽게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나르기 시작하던
▲ 정부가 집단면역 달성 시점으로 잡은 11월까지 백신접종률을 최대한 끌어올린 뒤 일상을 회복하는 위드 코로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앞으로 100일이 코로나 방역의 골든타임이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7월 초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하자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최고 수위인 4단계로 강화하고,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집합금지’ 등 사적 모임을 제한하는 비상대책을 취했는데도 확산 차단에는 역부족이다. 방역 조치를 강화하면 2~3주 후 효과가 나타났던 1~3차 유행과 다른 양상이다. 전파력이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하며 코로나 사태의 정점과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자 방역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민생고와 국민 피로도를 감안할 때 방역 강도를 더 높이기 어려운 만큼 방역과 일상의 조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감염경로를 추적하기 힘든 환자의 비율과 양성률이 높아지는 등 유행 확산의 우려가 큰 가운데에서도 위ㆍ중증 환자나 사망자 숫자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소상공인ㆍ자영업자를 비롯한 경제적 약자의 고
가장 제이콥의 농장 분투기는 실로 눈물겹다. 낯선 이국땅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10년간 모은 돈을 쏟아붓고 대출까지 해서 척박한 땅을 장만한다. 가진 돈을 모두 부었으니 당장 네 식구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 지겨운 병아리 감별을 계속해야 한다. 이른바 ‘투잡’이다. ▲ 모든 근로자가 자신을 일터의 주인으로 느끼는 되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농장을 마련한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을 하고 헐레벌떡 돌아와 맨손으로 땅을 일군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농업용수 확보다. 가진 돈이 넉넉하다면 업자를 불러 우물을 팔 수 있겠지만 제이콥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포클레인도 아니고 달랑 삽 한자루 들고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솜털 뭉치같은 병아리만 만지던 제이콥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팔을 쓸 수 없어 혼자 옷도 못 입는다. 사투에 가깝다. 그런 아빠를 딱한 눈으로 보는 데이비드에게 제이콥이 비장하게 말한다. “공짜로 할 수 있는데 왜 돈 주고 우물을 파?” 정말 제이콥은 공짜로 우물을 판 것일까. 만약 우물을 파는 데 투입한 노동력과 시간을 다른 곳에
‘미나리’의 주인공인 병아리 감별사 제이콥의 꿈은 다소 불안해 보인다. 아칸소의 황무지에 자기의 농장을 일구고 싶어 한다.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모은 돈을 모두 털어넣고도 모자라 은행대출까지 받는 무리를 감행해서 아칸소에 농지를 매입하고 농장주의 꿈에 부푼다. 요즘 말로 ‘영끌’ 농장이다. ▲ 제이콥의 욕구는 1단계에서 갑자기 5단계로 직행해버린 느낌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미나리’의 주인공인 병아리 감별사 제이콥은 ‘농장 주인’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과 꿈 사이의 간극이 당황스러울 만큼 크게 느껴진다. 1950년대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Maslow)가 발표한 ‘욕구 5단계설’은 오랫동안 설득력을 가져왔던 심리학의 고전이다. 매슬로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욕망은 5단계로 이뤄지는데, 1단계는 ‘생리적 욕구’가 지배한다. 간단히 말하면 일단 먹고살아야 하고, 비바람을 피할 집이 있어야 한다. 그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안전 욕구’를 느낀다. 1단
▲ 시장에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따랐다가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볼 것이란 불안감이 팽배하다.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자찬할 때가 아니다.[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 정부가 7월 2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한 뒤 내놓은 대국민 담화문 제목이다. 제목은 거창했지만, 내용은 무책임했다. 경제부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 금융위원장, 경찰청장의 발표를 요약하면 ‘주택공급은 충분한데 집값이 더 오르리란 기대심리와 투기 수요, 불법거래가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과 전셋값 급등의 원인을 주택공급 부족이 아닌, 국민의 과도한 수익 기대심리 탓으로 돌렸다. 투기수요와 실거래 띄우기 같은 불법행위가 주범이란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집값 띄우기 등 부동산 교란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례적으로 부동산 관련 브리핑 자리에 경찰청장을 참석시킨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 4년 3개월, 유례가 없는 26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이 안정되지 않은 것은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격은 수요와
영화 ‘미나리’에서 5살짜리 꼬마 데이비드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데이비드가 등장하는 분량이나 영화를 이끌어가는 역할 모두 할머니 순자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능가하는 듯하다. 나이 어리다고 조연상 자격이 안 된다면 조금은 억울한 일이다. ▲ 바람은 하늘의 뜻일 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데이비드의 존재감은 영화 포스터에서도 나타난다. 남녀 주연배우들을 모두 제치고 포스터에 단독으로 등장한다. 포스터에서 데이비드는 대형 성조기가 벽면을 덮은 농장 건물 배경의 풀밭 위를 나뭇가지를 들고 걸어오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나뭇가지다. 데이비드가 소중하게 들고 있는 구부러진 나뭇가지 하나에 영화의 핵심 주제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제이콥은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근근이 모은 돈과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합쳐 아칸소 외진 곳에 척박한 땅을 산다. 그렇게 농장주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다. 농장을 건설하려면 우선 물이 문제다. 우물을 파주겠다는 전문가가 두개의 나뭇가지를 들고
▲ 전력 공급이 부족해질 위기에 처하지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정비 중이던 원전을 전력 생산에 투입하기도 했다. 아이러니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정부청사와 공공기관에 낮 시간 중 30분씩 돌아가면서 에어컨 가동을 멈추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기업들에는 전기 사용을 줄이면 보상금을 주는 ‘수요반응(Demand Response)’ 제도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여름 더울 때 에어컨을 끄고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데도 생산라인 가동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은 전력 공급이 부족해질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에어컨 가동중단이나 전력사용 감축 요청은 2013년 이후 8년 만의 이례적 조치다. 여유 전력을 나타내는 전력예비율은 1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일부 발전소가 고장 등으로 멈춰 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정전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평소 20~30%를 유지하던 전력예비율이 7월 둘째주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위험주의보다. 올여름 전력수급 불안은 2017년 대선 공약인 탈(脫)원전의 아집에 갇힌 문재인 정부가 자초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영화 ‘미나리’는 미국에 이민 온 한 한국인 가정을 보여주지만 이름만 ‘한국인 가정’일 뿐, 그들이 보여주는 가족관계는 전형적인 한국인 가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은 한국적이라기보다는 ‘미국적’이고 ‘세계적’이다. ▲ 과거 욕망과 니즈의 ‘서열화’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장치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나리’가 미국과 세계 각국의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 가정의 모습이 ‘미국적’이거나 ‘세계적’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반면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라는 ‘국뽕’에 불을 지피는 엄청난 ‘버프’에도 국내 흥행이 기대에 못 미쳤던 건 한국 관객들이 보기에 ‘미나리’ 가족의 모습이 왠지 ‘한국적’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듣게 되는 ‘가장 한국적인
▲ 때마다 노사간 대립으로 치닫는 최저임금 결정 제도를 방치하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사진은 12일 공익위원의 안에 반발하며 전원 퇴장하고 있는 사용자위원들.[사진=연합뉴스]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13일 새벽에야 가까스로 결정됐다. 올해(8720원)보다 5.1% 많은 시간당 9160원이다. 이번에는 조금 달라지나 기대했는데, 노사 양측은 변함없이 벼랑 끝 전술로 버티다가 결정된 뒤에도 반발하는 구태를 답습했다.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35차례 결정과정에서 노사가 합의한 경우는 5분의 1인 단 7회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다. 하지만 위원회 앞에 붙는 ‘사회적 대화기구’다운 합리적 근거에 입각한 제안과 협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노사가 요구하는 인상안의 격차가 큰 데다 주장을 굽히지 않아 법정시한을 넘겨 허겁지겁 투표를 통해 공익위원 중재안대로 결정해왔다. 이번에 노사 양측이 제시한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 인상률은 23.9%(1만800원) 대 0
‘미나리’는 미국에 이민 간 한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는다. 제목은 어디에 갖다 심어놓아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미나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제목만 봐선 미나리처럼 강인한 한국인 이민 가정이 미국에서 억척스럽게 뿌리내리는 희망찬 이야기를 짐작하게 한다. ▲ 명분이 사라져도 방향이 바뀌진 않는다. 또다른 명분을 내세워 욕망을 향할 뿐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속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급파’된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분)는 한국에서 미나리 씨를 가져와 딸네 부부가 아칸소주 어디쯤에서 일구는 농장 한편에 뿌려 가꾼다. 씨앗과 열매는 통상 외국여행 반입이 불가한데 이 문익점 같은 할머니는 어떻게 미나리 씨앗 한움큼을 ‘밀반입’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공항 검색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미국의 생태계는 한 세대도 못 견디고 붕괴될지도 모르겠다. 순자가 밀반입한 미나리는 과연 그 이름답게 아칸소에서도 잘 자란다. 그러나 정작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가정생활은 그다지 순탄치도 못하고 정말 미나리처럼 미국땅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