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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이제는 다 살았다 (1)

아침이 되면 마당으로 나가서 대문을 지키듯 앉아 계시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대문 밖으로 나가서 집 주변의 길가를 살펴보아도 계시지 않는다. 이럴 수가.... 발끝을 올려서 시야를 더 넓혀 사방을 휘둘러보지만, 안 보인다. 이 정도면 어머니의 걸음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최대치인데....

 

덜컥 겁이 났다. 지난번에 어머니를 잃어버렸을 때 119가 가르쳐준 어머니의 가능한 동선을 훑어봐야 할까 싶다. 자동차를 끌고 그 당시 어머니가 쪼그려 앉아 계시던 동쪽으로 향했다. 세상에! 어머니가 한 집 건너 이웃해 있는 펜션 앞에 동그마니 앉아 계시지 않은가. 마치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초췌한 모습이다. “어머니! 무사 여기 왕 이추룩 앉안 이수광? 어머니 잃어부러시카부덴 막 걱정되연, 애가 타게 촞아댕겸수게!” 그러자 어머니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 나왔다. “나, 이제는 죽어지민 조키여! 무사 나만 영 오래 살아점신고 이?”

 

“어머니, 그게 무신 말이우까? 이제 백살이난 막 오래 살아진 거 닮아도, 요양원에 가민 백 다섯 난 할망도 이수다. 대포 부택이 어멍은 백두 살이라도 막 정광해영, 동네 이디저디 돌아댕기멍 재미나게 살지 안 햄수광? 경 허난, 어머니도 나영 집에 강 백 두 살꼬지만 살게 마씸. 어머니 덕분에 나가 살암수게. 오늘도 어머니 못 찾아시민, 울멍실으멍 경찰서여 소방서영 촞아 강, 우리 어멍 찾아줍센 빌멍 외멍 소정헐 꺼 아니우꽈?”

 

 

그런데, 요즘 들어 어머니가 왜 이러실까? 밤중에도 가위눌린 듯 비명을 지르며 ‘정옥아, 나 살려도라’던 어머니가, 이제는 ‘다 살았져’라고 신음하신다. 낮에도 호흡이 힘들 때마다 ‘나 살려도라’던 우리 어머니의 목청 높은 소리가, ‘이제는 죽어지민 조키여’라고 맥없이 가라앉는다. 그러고는 계속 졸거나 주무신다. 마치 한 살 난 아기와도 같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삶의 원을 하나씩 그리고 가는 것 같다. 어머니는 100년의 원을 그려야 하므로, 그만큼 마지막 선도 길어지는 것일까. 많이 아프지는 말아야 할 텐데....

 

어제는 뜬금없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도순(중문동 도순마을)서 대포에 시집을 와신예. 막 부재집 똘이난 밭도 하나 물령 왔주만은, 워낙 부지런허난 미녕(명주)도 차민 동네 일등, 일을 해도 놈한티 지진 안 했져. 경헌디. 아방이 일본 강 돈 벌어 오켄 허멍, 먼 바당에 세워진 일본배를 타젠 큰갯물 포구에서 거룻배에 탔단, 오꼬시 너울에 불련 바당속에 빠져부러신예. 우리 아방은 대포 일등 청년이난 어떵어떵 일본 가는 큰배에 올라갔주만은, 아기 업은 동네 아지망이 살려도렌 외울르멍 허우적대난, 다시 바당에 뛰어들어가신예... 불쌍헌 우리 어멍... 아방이 바당 소굽에서 영영 못나와부런. 어멍은 시신 어시 아방 영장을 허난, 큰 보름만 불민 아방 신던 신발이라도 초자보젠 바당에 강 이디저디 헤매멍 다녔주... 어멍이 물질헐 줄 알아시민, 물에 들어강 바당 소굽을 콜콜이 솔펴볼건디.... 경 해연, 나가 물질을 배워진 거 닮아. 생각해보민 물질 덕분에 니네들 키우고, 바당 덕분에 재미나게 살아졌져. 고란 보난, 아방이 도와준 거 닮다. 촘말로 우리 아방이 날 도와줬구나. 다들 살암시민 살아진댄 허주만은, 나가 이제꼬지 살아온 걸음걸음은 다 아방 덕분이여... 우리 아방이 어멍은 울렸주만은, 막둥이 나를 살려준 셈이주.... 우리 어멍 이름은 임하용, 아방은 김광용인디... 혼 세상 사는 거, 잠깐이여. 이젠 나도 갈 때가 된 거 답다....”

 

‘어머니’를 부르며 부둥켜 안아본다. 세상에! 아기처럼 작으시다. 파드득 거리는 작은 새처럼 세게 안으면 부서질 것 같다. 어깨도 팔도 손도 앙상하다. 눈물이 난다. 한 세상 살아내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렇게 진액이 다 말라버렸을까. 그저 숨을 쉴 정도의 기운만 남아 있는 듯, 하루 종일 졸거나 주무시는 우리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두고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어머니는 오래 전에 뵈었던 모습 그대로, ‘어머니’하고 부르면 ‘아고, 니 누게니? 우리 영재 벗이구나’하며 두 팔을 벌리실 것 같다. 혼자서 1남2녀를 키워내신 어머니는, 93세의 저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구나. 폐암으로 고생을 하셨다. 81세까지 물질을 하면서 숨을 참아내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세상에 장하지 않은 어머니가 어디 있으랴만, 남편 없이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의 삶 앞에서는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진다.

 

같이 밥을 먹는 친구 인숙이의 어머니도 몇 년 전에 93세로 돌아가셨다. 영정 사진 속 어머니는 촌에서 농사짓는 어머니라고 하기엔 어딘가 모를 위엄이 있으셨다. 어머니는 6.25 참전용사이신 남편의 전쟁트라우마를 말없이 견뎌내셨단다. 술이 거나하시면 한 밤 중에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태어난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라고 한 후에 차렷 열중쉬어를 시키는 남편은, 아침이면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어질어졌다. 그러므로 모정으로 상처를 덮어주고서 거칠은 삶을 함께 다독여 가는 게 어머니의 숙명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딸들이 자라서 어머니가 되고, 그 어머니를 닮아서 가슴이 따뜻하고 온유한 아내들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고향마을을 떠나온 내게, 친구의 어머니와는 참 오랜만의 해후다. 그런데도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고,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인 듯 다정하고 편안하시다. 아마도 내 어머니가 살아 계신데다, 대포 마을 어머니들의 삶이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서로 헤아릴 만큼 비슷하였기 때문이리라. 한 분 두 분,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우리들을 보니, 어느새 우리도 어머니를 닮았다. 예순 살 환갑을 지나, 어머니가 걸어가신 인생의 뒤안길을 따라가는 우리들. 귀밑머리가 희어져 있다.

 

장례식장에서 두어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집에 와 보니 여전히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신다. 다행히 아침 식사는 좀 하셨고, 점심에는 ‘완전균형영양식’이라는 식사대용 음료를 드셨다. 손녀가 ‘할머니가 식사를 잘 못하실 때 드시면 좋다’며 한 아름 안고 온 선물이다.

 

어머니의 2남 7녀 중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둘째 딸의 손길이 느껴진다. 어쩌면 지상의 마지막 선물이 될는 지도..... 저녁에 흰 죽을 쑤어드리면 간장에 찍어서 좀 드실 거다. 어머니는 가게에서 사온 양조간장의 들쩍지근한 맛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하얀 쌀 죽 위에 점점이 뿌려드리면 맛있게 드신다.

 

“어머니, 먹엉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댄 허주만은, 생각해 보십서. 먹으민 죽을 리가 어수게. 먹는댄 허는 건 살아 있다는 표시 아니우꽈? 경허난 홑설 실퍼도 드시곡, 기운 어시민 더 드시곡, 아명해도 입맛이 어시민 무신거 해주민 먹어짐직 허댄 골읍써 양! 어머니가 살아사, 나가 사는 거우다 예! 어머니 어시민, 나 혼자 울어정 어떵 살아갑니까게... 어머니가, 어머니 돌아가시난 그추룩 설웁게 울었던 거 생각해영, 호다 아무거나 홑썰씩만이라도 먹어주십서 예! 이추룩 가을빛도 좋으난 홑설 이시민 미깡이 노랑허게 익어갈 건디, 그 미깡도 맛보곡 허멍 오래오래 사십서 예!”

 

이렇게 먹기 싫다는 어머니를 붙들고, “드시라”고 애태우는 이유는, 임종징후의 첫 단계가 먹는 데 무관심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요양보호사 표준교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임종징후가 전개된다; ① 대부분 누워 있게 되며 음식 및 음료 섭취에 무관심해진다. ②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③ 맥박이 약해지고 혈압이 떨어진다. ④ 숨을 가쁘고 깊게 몰아쉬며 가래가 끓다가 점차 숨을 깊고 천천히 쉬게 된다. ⑤ 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점차 피부색이 파랗게 변한다. ⑥ 대소변을 의식하지 못하고 실금하게 되며 항문이 열린다.

 

우리 어머니도 언젠가 내 곁을 떠나시겠지만, 백 살이시니 임종의 때가 그다지 멀지는 않으리라. 끝까지 함께 있으면서 온유하게 대해드리고,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시도록 더욱 뜨거웁게 사랑하고자. 가능한 한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많이 들으면서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으로 기억하리라. 어머니가 얼마나 우리를 헌신적으로 키워내셨는지, 매사에 얼마나 최선을 다해 오셨는지,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머니가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운지를 진솔하게 이야기해 드리자. 그리고 어떻게 최선의 삶을 살아내셨는지를 기록하고 기념해야 하겠다.

 

 

오늘도 친구 정심이네 잔칫집에서 고깃반을 한 접시 가득 받아 왔다. 친구 추자가 ‘어머니에게 드리라’면서 돼지고기를 얼른 얻어다가 남모르게 싸준 것이다. 혹여 고기가 상할까 봐 급해지는 마음.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고시절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오는 나.

 

정신없이 주무시고 계시는 어머니를 깨워서, 여봐란 듯이 고깃반을 접시에 담아 드린다. “아이고, 이거 미신 고기가 영 먹음직 허니?”라고 좋아하시는 어머니. “친구네 잔칫집에 가난 어머니 찍새랜 허멍 이추룩 고기를 하영 싸줍디다”. “아고, 게무로사 이 쓸데 어신 늙은이 어서 죽어불랜 안 해영, 이 귀헌 고기를 영도 하영 보내시냐?” 참, 백년을 사용해 온 어머니의 이빨은, 아직도 갈비를 뜯으실 만큼 튼튼하시다. “아직은 나 이빨이 대깍허다”는 게 은근한 어머니의 자랑이시다.

 

친구 덕분에 늦은 점심을 맛있게 드신 어머니께서 한 말씀을 하신다. 마치 나에게 세상살이를 당부하시듯 새삼스럽게 진지하시다. “난 이, 니가 너무 억척 떨멍 각박허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보란 듯 번지르르 허게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놈의 대동으로, 니네 벗들이영 어우러질 만큼만 허리 패왕 살아가라! 부지런허민 하늘이 다 도와주는 거난, 썩엉 어서질 육신 놀리지 말앙, 호다 부지런허게 일허곡! 살당 보민 다 살아진다. 혹시 이웃에 밥 못 먹는 사름 어신가 홑썰 배려보곡..., 동녕바치도 박접허지 말앙 밥은 멕영 보내곡... 이신 돈 젭져놔동 아이들 너무 어시 키우지 말곡.... 돌아오멍 살 거 아니난 니 몸 너무 험허게 쓰지 말곡 이! 이게 우리 어멍이 나 시집 올 때 고라준 소리난, 니도 고슴에 새기멍 혼 세상 너무 저들지 말앙 살아가라.니네 아방(남편), 참 고마운 사름이여.... 그 덕분에 나도 영 오래 살았저 이!”

 

문득, 김종두 시인이 병상에서 보내주신 시집을 펼쳐본다. ‘사는 게 뭣 산디’의 첫 번째 시는 ‘제주여인 1’이다.

 

“시집 왕 보난 돌렝이 호나,

살아갈 일 생각호난 귀눈이 왁왁호여도,

우리 할망 살아온 시상 고슴에 새기멍 살았수게.

조냥호여사 밥 먹은다 호다 멩심호영,

이실 때 애끼곡 젭저 놨당, 어신 듯 존디멍 살라.

올레 밖까지 좇아 오멍 고라주던 우리 어멍의 혼 시상.

아명호믄 못사느냐. 조름 붙이지 마랑 탕근도 졸곡 물질도 호멍,

시집 어른 뜻받앙 살암시믄 살아진다.

아-, 탐라 할망들의 삶이여, 제주 여인의 삶이여“.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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