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의 100세는 만 나이가 아니라서 대통령의 지팡이를 기대할 순 없는 노릇. 어떻게 하면 청려장처럼 깜짝 선물을 어머니에게 전해드릴 수 있을까? 3월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이 고민은, 막내딸이 자기 손으로 생신상을 차리고 싶다는 말로써 일거에 해결됐다. ‘어머니의 생신축하 현수막을 아파트 입구에 내걸면 어떨는지... 백세라면 오가는 사람들도 축하의 미소를 보내주지 않을까요?’라는 아이디어와 함께. 그래, 어머니의 이름이 김성춘(金成春)이니, 봄을 이루는 새싹과 햇살, 때늦은 유채꽃과 벚꽃들도 축복의 퍼레이드를 펼쳐줄거야! 우리는 모두 막내의 제안에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동생이 디자인한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더 행복한 웃음으로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신다. 오, 딸들이 무색하도록 저리도 고우신 어머니의 백세 미소라니! 어머니가 100년을 살아내셔서 가장 기쁜 자식은 누구일까? 아마도 막내이리라. 오래전, 오십을 훌쩍 넘긴 큰언니가 어머니에게 떼를 쓰는 것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한 적이 있다. 아, 내가 언니 나이쯤 되었을 때도 어머니가 저렇게 언덕이 되어줄 수 있을까? 첫째인 큰언니와 일곱째인 나 사이에는 14년의 터울이 있다. 막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글래디에이터’는 재미와 흥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에서 상당 부분 일탈해 있다. 하지만 ‘미장센(mise-en-scene)’ 역시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왜곡이라기보다는 보정(補正)에 가깝다. ‘글래디에이터’를 제작할 때 자문역으로 참여했던 로마사를 전공한 다수의 역사학자는 ‘미장센’ 문제 때문에 중간에 자문역을 내던지거나, ‘엔딩 크레딧’에 본인 이름이 오르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게 아니었다는 건 흥미롭다. 로마사 전공 역사학자들은 코모두스 황제가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역사 왜곡은 눈감아줄 순 있어도 장면 구성의 왜곡은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콧 감독과 역사학자들이 부닥쳤던 ‘미장센’의 문제는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검투사 시합의 ‘사실성’이었다고 한다. 검투사들의 무기나 복장은 철저히 고증을 따랐지만 문제가 된 지점은 검투사들이 경기장에 광고판을 들고 입장했다는 역사적 사실의 채택 여부였다. 로마시대 검투시합에서 검투사들이 경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요즘의 ‘샌드위치맨’처럼 몸에 광고판을 메거나 들고 관중석을 돌았던 건 로마시대 기록과 프레스코
▲ 강석봉 제주도 장애인복지과장 얼마 전 장애인단체들의 지하철역 시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물론 행위의 적절성에 대한 공방도 중요하겠으나, 장애인에게는 삶,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우리가 주목했으면 한다. 장애인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불편한 점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이라고 한다. 동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번쯤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사회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제주지역 등록장애인은 21년 12월 현재 3만6876명(심한 장애인 1만4000명, 심하지 않은 장애인 2만2876명)으로 매년 1.6% 증가 추세이며, 2026년까지 4만7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등록장애인 중 65세 고령장애인의 50% 수준이다. 유엔은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선언했으며, 우리나라는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해 올해로 42회째를 맞이한다. 제42회 장애인의 날 슬로건은 ‘장애의 편견을 넘어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이다. 장애가 편견과
▲ 한국경제가 위기 국면을 돌파하려면 신구 정권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하지만 양측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협치가 필요할 때다.[더스쿠프=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한국은행 총재 공석 상태에서 금융통화위원회가 14일 기준금리를 연 1.50%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국내 물가가 10년여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데다 미국이 금리인상과 양적 긴축 등 쌍끌이 긴축을 예고한 상황에서 금리인상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써 금통위가 합의체 의사결정기구로 총재 한 사람에 의해 통화정책이 좌우되지 않음을 입증했다. 이번 금통위는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총재가 공석인 상태에서 열려 회의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다. 신구 권력간 갈등으로 지명이 늦어진 이창용 총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19일에야 열린다. 각종 경제지표는 금통위에 강력한 인플레 파이팅을 요구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로 10년 3개월 만의 최고치다. 물가 상승세는 일시적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수입물가도 7.3% 뛰었다. 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국내 다른 품목의 물가 상승을 압박한다. 해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허정옥 전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이사장의 ‘어머니의 100세 일기’입니다. 고령화=장수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의술의 발전으로 우리 삶이 연장되긴 했지만 그만큼 삶이 더 풍요로워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장수인생이 꿈이라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 노년의 삶을 보장할만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허 이사장의 어머님, 그 분의 삶을 빌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다시 성찰하고 미래 한국사회 노년의 삶을 다시 점검해봅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1923년생이시니, ‘세는나이’로 백 살이 되셨다. 만나이로는 99세시니, 백수(白壽)가 되신 거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백(白)이 됨을 뜻한다. 아기가 엄마배 속에서 보낸 10개월을 한 살로 치는 우리들의 나이 셈법은, 한국이 세계를 대표한다.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인 ‘살’은 ‘살다(生)’에서 왔을 것이다. 엄마는 아기가 잉태되었을 때부터 대화를 시작한다. 태아를 생명체로 여기고 세상으로 나오기 전의 사전학습, 소위 ‘태교’가
코모두스는 게르만족과 대치 중인 전선의 군막(軍幕)에서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교살하고 황제 자리에 올라 로마에 입성한다. 아버지를 죽인 코모두스의 로마 입성 행진은 화려하고 장엄하기 그지없다. 유럽정복에 나선 히틀러가 베를린 개선행진 행사의 모델로 사용했다는 그 유명한 장면을 천재 감독 리들리 스콧이 재현해준다.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로마에 장엄하게 들어온다. 그 장엄함은 아버지를 죽이고 돌아온 코모두스가 지구 끝까지 정복하고 돌아온 개선행진인 줄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로마 시민들이나 원로원 모두 뭔가 석연치 않고 찝찝해한다.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 의원들의 냉랭함에 코모두스는 뻘쭘하고 불안하다. 정통성을 의심받는 독재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카드가 3S 정책(Sportsㆍ ScreenㆍSex)이다. 시민들에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정치보다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3S를 제공해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게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골자다. 가령, 전두환 정권도 기획했던 3S의 원형은 포르투갈 독재자 안토니우 살라자르(Antonio Salazar)의 1930~1960년대 독재정치를 떠받쳐
▲ 물가관리는 윤석열 정부의 첫 시험대이자 새 정부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중대한 숙제다.[더스쿠프=뉴시스]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리터(L)당 2000원을 넘나드는 기름값에 운전대 잡기가 겁난다. 10만원 들고 나가 장바구니 채우는 것도 힘들다. 찬거리를 사다 보면 1만원짜리 지폐가 잔돈처럼 여겨질 정도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 4%대 물가상승률은 2011년 12월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물가 오름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봉쇄가 풀리면서 전 세계 소비가 동시다발적으로 늘었는데 글로벌 공급망이 차질을 빚었다.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에너지, 원자재, 곡물 수급체계 전반이 흔들렸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하자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긴축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3월 금리인상에 이어 5월 초 양적긴축에 돌입하면서 추가로 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중반 미국 금리가 3.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현재 1.25%이니 앞으
▲ 이경호 제주도 재난지원팀장 은나라 시대 부열이라는 신하가 고종 임금에게 간언한 말 가운데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미리 준비되어 있으면 근심, 재앙이 없다'라는 뜻으로 현재 태풍 등 여름철 재해대책을 준비하는 사전대비 기간(3월10일~5월14일)에 적합한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민안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에 재난 발생 초기에 대응하고 수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전에 대비하고 예방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태풍 등 자연재해 발생은 막을 수 없으므로 큰 피해가 발생하면 운이 안 좋았던 것으로 치부하고 신속한 피해 복구에 치중되었으나 현재는 예방과 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인명과 재산피해를 현저히 줄일 수 있으며 예산 또한 이 부분을 중요시하여 투자되고 있다. 지난 2007년 9월 최악의 피해를 남겼던 태풍 '나리'(13명 사망, 피해액 1307억원)를 겪으면서 우리 제주의 방재대책은 큰 변화가 있었다. 여름철 짧은 시간에 집중호우가 자주 내리는 섬 지역 특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하천 상류 지역에 일시적인 빗물을 가둬둘
황제이자 아버지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살해한 코모두스에 의해 처형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 막시무스는 황야에서 정신을 잃는다. 노예상인이 막시무스를 ‘주워’ 북아프리카 검투사 에이전시에 넘긴다. 로마 최고의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에게 시골 검투경기 정도는 ‘껌’이다. 훈련이나 연습경기도 건너뛰고 곧바로 프로 데뷔한다. 막시무스는 지금의 모로코나 알제리 어디쯤으로 보이는 사막의 장터에 흙으로 지어진 조악한 원형경기장에서 데뷔한다. 노예상인들이 주워오거나 사오거나 사냥해온 노예 검투사들이 서로를 아무 이유 없이 죽고 죽이는 살육극을 기대하는 관중들의 눈빛이 폭력을 갈망하는 ‘욕정’으로 이글거린다. 경기장에는 이미 살육자들이 기괴한 가면과 복장을 하고 어마무시한 무기를 휘두르며 희생양들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줄지어 선 검투사들의 모습은 사형 순서를 기다리는 죄수들 같다. 이제 곧 지옥문이 열릴 것이다. 한 선수는 덜덜 떨며 흙바닥에 오줌을 질질 싸고 있다. 인간이 즐거움을 위해서 다른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오줌 싸던 선수는 문이 열리자마자 철퇴에 맞아 죽는다. 차례차례 배가 갈라지고, 목이 잘리고, 머리
▲ 코로나 피해 보상을 위한 재원은 적자국채 발행 없이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원이 부족하면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는 편이 낫다.[더스크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 19일 만에 회동한 3월 28일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국고채 2년·3년·5년물이 일제히 20bp(1bp=0.01%포인트) 넘게 치솟았다. 미국발 금리인상 및 통화긴축이라는 외부 요인에 2차 추가경정예산으로 적자국채가 대거 시장에 쏟아질 것이라는 내부 우려가 가세한 결과다. 윤석열 당선인은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위한 50조원 규모의 2차 추경 편성 방침을 공식화했다. 당선인 측은 본예산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지만, 지금까지 세출 구조조정으로 수십조 재원을 마련한 역사는 없다. 결국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조달할 테고, 이는 채권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릴 것으로 보고 시장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예산의 지출 구조조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본예산 중 절반은 교부금, 채무상환, 법정부담금(연금·건강보험), 사회보장지출 등 지출 근거와 요건이 법으로 정해진
명장(名匠) 리들리 스콧이 만든 ‘글래디에이터(Gladidatorㆍ2000)’는 명장의 작품다운 명품이다. 그해 아카데미 영화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을 휩쓸어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럴듯하게 버무리는 재주를 지녔다. 사기꾼의 자질이기도 하다. 분명히 이어붙였는데 그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실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참고: 선녀(仙女)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것으로, 성격이나 언동 등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의미.]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AD 180년께, ‘망조’가 깃들기 시작하는 로마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게르만 원정에 나서 막시무스 장군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들(코모두스)이 아닌 충직한 장군 막시무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분노한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당연히 막시무스 일가족을 몰살시키려 한다. 아내와 아들은 무
▲ 협치가 실종된 분노의 정치는 정치혐오를 넘어 국민을 절망시킨다. 신구 권력 모두 국민을 바라봐야 할 때다.[사진=뉴시스] 대한민국은 정치가 국민의 삶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권 행태를 걱정하는 특이한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회동 불발에 이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 한국은행 총재 후보 지명에 대한 반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법무부 업무보고 보이콧 등 사상 초유의 신구 권력 힘겨루기가 연속적으로 나타나며 국민을 신물나게 한다. [※ 참고: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8일 저녁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찬을 겸한 첫 회동을 갖는다. 대선이 치러진 지 19일 만으로,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려 성사된 만남이다.] 대내외 경제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세계는 신新냉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 여파로 원유와 밀 등 곡물, 각종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며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과 성장둔화란 2중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물가상승률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연내 6차례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