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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릿 트레인 (6)

어느 직종이든 ‘베테랑’은 직업병을 얻기 마련이다. 발군의 해결사 ‘무당벌레’도 직업병에 시달린다. 매사에 불안하고 자신의 업무수행 중에 어이없이 죽어간 사람들에게 느끼는 죄책감도 상당하다. 일선에서 물러나 정신치료 상담을 받던 중 인력소개 에이전트 ‘마리아’가 의뢰하는 ‘가방 하나 가져오는’ 매우 안전하고 간단한 일을 수락한다.

 

 

무당벌레는 이번에야말로 결코 살인은 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신념으로 총칼은 모두 버려두고 폭죽ㆍ수면제 따위만 챙겨서 탄환열차를 탄다. 정신치료 상담사 ‘하비 박사’는 무당벌레에게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문제는 무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가르친다. 무당벌레는 하비 박사의 가르침대로 가방 주인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운 가르침은 사회에 나오면 잘 먹히지 않는다. 가방 주인 ‘레몬’과 ‘탠저린’에게 하비 박사의 가르침대로 대화를 시도한다. “지금 우리들 사이에 벽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벽에도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창문과 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눈을 껌뻑이던 레몬은 5초 이상 들어주지 않는다. ‘무슨 개소리냐’며 총을 꺼내 든다. 무당벌레는 탠저린과도 대화를 시도한다. “화부터 낼수록 이해는 느려진다”는 하비 박사의 말을 들려준다. 이번에도 탠저린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무슨 헛소리냐’는 외침과 발길질뿐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은 씨도 안 먹힌다. 그럼에도 무당벌레는 이 무식한 상대들에게 분노해서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지 않는다. 같이 욕질을 하거나 주먹질ㆍ발길질을 하지 않는다. 그들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돈가방을 ‘하얀 사신’이란 잔인한 킬러에게 가져가지 못하면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래서였는지 적으로 만난 무당벌레와 레몬은 마지막에는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정도의 ‘베프’가 된다. 마법 같은 이해의 힘을 보여준다.
 

 

이해라는 개념을 사회과학에 처음 도입한 인물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다. 그가 도입한 이해의 독일어는 verstehen으로 개념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상대의 입장이 돼보는 것으로 단순하다.

그 개념이 영미권에 under-stand로 소개됐다. 꽤 그럴듯한 번역이다. 말 그대로 ‘상대보다 낮은 곳에 서는 일’이다. 나를 낮추고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곧 이해다. 굳이 막스 베버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일이 곧 이해다.

역지사지는 춘추전국시대 도학자 양주(楊朱)의 가르침이다. 하루는 비 오는 날 양포가 즐겨 입던 흰옷을 벗고 검은 비옷을 입고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기르던 개가 양포를 보고 무섭게 짖었다고 한다. 주인도 못 알아보고 으르렁댄다는 이유로 양포가 몽둥이를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양포의 형 양주가 ‘동생아.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봐라. 네가 기르던 저 흰 개가 검둥개가 되어 돌아왔다면 너라면 안 놀라겠느냐’고 쏘아붙였다. 

대통령이 기자의 무례를 문제 삼아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고 대통령실 출입문에 아예 ‘가림막’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얌전히 발표를 받아 적는 기자들에게 익숙했던 대통령이 갑자기 ‘슬리퍼’를 신고 와서 고함치며 따지는 기자에게 많이 놀란 모양이다. 주인을 몰라보고 짖어대는 개에게 화가 나서 몽둥이를 든 양포의 심정인 듯하다. 

그러나 양주의 말처럼 하얀 개가 갑자기 검둥개로 나타나면 기자도 놀라서 소리 지를 법도 하다. 누가 개이고 누가 주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무당벌레의 말처럼 서로 화부터 내다보니 이해할 여유가 없어지는 모양이다. 레몬은 무당벌레에게 ‘f×××’을 쏟아내며 화를 냈지만 무당벌레는 화내는 레몬을 이해했기 때문에 둘은 결국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둘이 똑같이 서로에게 화냈다면 아마 둘 다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가림막’은 쳐졌다 하니 그 벽이 모든 것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무당벌레의 말처럼 그 벽에도 서로를 볼 수 있고 필요할 때 서로 오갈 수 있는 문이라도 있는 가림막이었으면 좋겠다.

북방 흉노족 막겠다고 쌓은 거대한 만리장성은 결국 중국을 폐쇄하고 발전 기회까지 봉쇄해 버리고 말았다. 무엇이든 ‘담을 쌓는다’는 것은 대개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도소 담장 같은 학교에도 개구멍은 있지 않은가.

양주는 ‘내 머리털 한 올을 뽑으면 천하를 구할 수 있다 해도 나는 내 머리털 한 올도 뽑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극단적인 위아론(爲我論)의 거성(巨星)이었다. 그런 철저한 이기주의자 양주도 역지사지하는 아량은 베풀 줄 아는데 ‘오직 국민, 오직 국익’을 외치는 대통령에게 적어도 양주만큼의 ‘역지사지’를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기대일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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