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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27) '망상'으로 시작된 역할극 ... '셔터 아일랜드'

1954년 어느 날, 연방 보안관인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또 다른 형사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보스턴을 출발해서 인근 섬으로 향하고 있다. 셔터 아일랜드라는 섬에 고립된 정신병원에서 환자 한 명이 사라졌다는 제보 때문이다.

 

안개를 뚫고 도착한 둘은 그곳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병원을 둘러본다. 넓은 정원에서는 산책하는 환자들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테디를 보고 모두 아는 척을 하는 게 느낌이 좀 안 좋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병원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독립된 몇 개의 병동으로 구분하고, 가장 심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성처럼 되어 있는 특수 병동에 있게 된다. 어린 자녀 셋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 여기에 들어온 레이첼 솔란도라는 여인이 특수 병동에 있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테디 일행은 경찰과 병원 책임자 코리 박사(벤 킹슬리)로부터 레이첼이라는 여인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지냈던 특수 병동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레이첼 솔라도는 퇴역군인의 부인으로 1952년 어느 날, 어린아이들 셋을 연못에 빠뜨려 죽인 사건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정신질환자로 판정 났고 이곳 셔터 아일랜드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점점 미궁에 빠지는 수사

 

영화는 정말 난해하다. 단순히 공포영화인가 해서 봐도 무섭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부분은 없다. 테디의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단서를 찾게 되고, 결론으로 가면서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결국 그 여인의 행방도 못 찾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묘연한 상태로 끝이 나버린다.

 

테디가 자주 보게 되는 부인 돌로레스(미쉘 윌리엄스)의 환영은 자꾸 나타나는지, 레이첼이 한 것처럼 연못에서 죽은 채 떠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은 누구인지, 그 여인이 기거했던 방에서 나온 "4의 법칙, 67은 누구인가?"라는 쪽지의 의미, 테디가 섬 어디를 가든 찾아내는 경찰, 무언가 숨기는 듯한 의료진들.....

 

관객들은 영화의 끝부분까지 보면서 ‘뭐지?’, ‘뭔가 이상한데?’라는 느낌을 받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관람을 마쳐야 한다. 그게 감독이 노린 효과였다. 보는 이들은 레이첼이 저질렀다는 살인 사건의 전말을 알아야 하고, 이상한 느낌을 받는 이유를 풀어헤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조금의 단서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관객들을 힘들게 하는 오만한 영화다.

 

정신의학의 두 치료법, 뇌수술과 약물치료

 

존 코리 박사는 테디와 함께 병원 복도를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박사의 설명은 어려우면서도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내용이라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코리 박사는 요즘 정신의학계는 전쟁 중이라며 한쪽은 상태가 심각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수술 치료를 신봉해서 뇌엽절제술을 하려 한다. 그들을 농담으로 정신외과(Psychosurgery)라고 부른다. 정신을 다루는 분야인 정신의학에서 수술이라고 하니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사실 정신세계는 물리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정신분석과 거기에 적합한 약물로 해결하기 때문에 외과라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이들과 다른 쪽은 정신약물학(Psychopharmacology)을 믿는 부류인데, 그들은 정신의학 분야에서 가장 힘든 질환 중의 하나인 조현병 치료에 나온 ‘쏘라진(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신약에 흥분해 있다고 설명한다.

 

코리 박사의 이 설명은 몹시 흥분한 테디에게 주사를 주려는 네이링 박사가 “괴물이 나타나면 처치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얘기하는 것, 마지막 부분에서 “어떤 것이 낫겠나? 괴물로 평생을 사는 것과 착한 사람으로 죽는 것 중에.....”라며 테디가 척에게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하는 장면과 연결해서 봐야 할 내용이다.

 

역할극을 통해 나아지기를 바라는 시도

 

셔터 아일랜드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섬 이름이다. 단어 그대로 닫혀진, 혹은 밀폐된 섬이라는 뜻이다. 제목을 통해 뭔가 음산한 느낌을 주게 하고, 그만큼 사람이 나오기 힘든 섬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 거기에서 사라진 레이첼이라는 여인을 등장시킨다.

 

레이첼과 죽은 그의 남편, 그리고 익사시켜서 죽인 세 자녀, 환영으로 나타나는 테디의 부인 돌로레스, 화재 사고로 부인과 함께 죽었다는 세 아이들..... 이들은 사실 같은 인물들이었다. 정신질환으로 세 자녀를 익사시켜 살해한 부인을 죽이게 된 앤드류 레이디스라는 사람은 한순간에 벌어진 사고에서 제 정신을 잃어버렸고 2년 동안 셔터 아일랜드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런 정황을 안타까워하는 코리 박사는 의료진들을 설득해서 형사인양 하는 앤드류를 중심으로 ‘역할극’을 했던 것이다. 동료 형사인 척도 이 병원의 의사였다. 코리 박사는 왜 이런 설정을 했던 것일까? 그것은 코리 박사의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다. 코리 박사는 자기가 말한 것처럼 쏘라진 같은 약물치료로 완치할 수 있다는 정신약물학 추종자였고, 되도록 뇌 전절개술을 안 하면서 치료하고 싶었던 것이다.

 

역할극(또는 역할놀이, Role play)은 심리 치료에서 실제 사용하는 방법으로 당사자로서 하고 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게 하며 환자를 치료하려고 한다. 혹은 상대방이나 다른 역할을 주어서 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바를 말하게 하면 당사자가 힘들어하는 부분이 객관화되어 치료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코리 박사는 이 점을 이용해서 테디, 아니 앤드류가 부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유도하려고 했다. “4의 법칙, 67은 누구인가?”라는 쪽지도 코리 박사가 일부러 침실 바닥에 흘려 놓았던 것. ‘4’는 앤드류를 비롯한 네 가족을 의미하고, ‘67’은 자기를 포함한 입원해 있는 환자 수다.

 

그것을 인지하게 되면 치료는 상당히 빨라지는데, 이 역할극을 반복해서 했는데도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배를 타고 보스턴을 출발해서 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자기의 정신세계에서 만들어낸 ‘망상(妄想, Delusion, Paranoid)’에서 시작된 것이다.

 

함께 온 동료 척 형사는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던 시한 박사였다. 아마 앤드류는 연방 보안관 이외에도 매번 역할극을 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거기에 맞춰 병원 의료진들은 행동했고.....

 

앤드류가 겪는 상황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인한 망상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현병일 가능성이 더 높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테디와 함께 계단에 앉아있는 척 형사, 아니 시한 박사는 멀리 있는 의사들에게 고개를 흔든다. 도저히 가망 없으니 뇌엽절제술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 듯.

 

셔터 아일랜드는 유명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 아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갱스 오브 뉴욕(2002)’, ‘디파티드(2006)’, ‘아이리시맨(2019)’ 등 수십 편의 작품들을 쏟아낸 감독이다. 그가 작업한 영화들을 보면 로버트 드니로와 여러 작품들을 같이 한 것이 특징이며, 이번 셔터 아일랜드의 디카프리오와도 몇 번 영화를 찍었을 만큼 서로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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