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1시쯤 제주시 용두암 해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잔뜩 움츠렸지만 서로 부둥켜 안듯 손을 붙잡고 관광을 즐기는 일군의 무리들이 있다.
추위와는 거리가 먼 열대지방 베트남에서 날아온 38명의 관광객들이다.
제주로 여행을 온 가족들과 신혼 및 노년부부들이다.
◆옆에서 지켜보니=제주를 찾은 베트남 관광객은 20일 제주에 도착,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를 둘러봤다.
여행 도중 쓴 경비는 일인당 베트남화로 1300만동. 한화로 65만원이다.
일정은 한림공원, 서귀포 주상절리, 천지연폭포, 산굼부리 등지를 둘러보며 이틀간의 관광일정을 갖고, 3일차에 인삼센터와 면세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들이 제주행을 선택하게 된 데는 K팝 열풍이 컸다. 이날 제주를 찾은 젼웬옥진(27·여)은 K팝 열풍에 매료돼 쇼핑을 목적으로 제주에 왔다. 그녀는 "'드라마 ‘여인의 향기’와 '꽃보다 남자'를 통해 제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가 한국의 패션, 화장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는 항공·여행업계 등 뿐만 아니라 업계 곳곳에 ‘관광특수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쇼핑을 하면서도 매장 직원이 골라 든 물건에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최고"란 말을 쏟아냈다. 그만큼 ‘한국산 명품 쇼핑족’도 있다.
하지만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할인매장을 이용, ‘알뜰쇼핑’을 즐기고 싶어 하는 관광객이 더 많았다.
한 관광객은 "여행 일정에 쫓겨 자유관광을 할 수 없다보니 면세점과 정해진 상가를 돌아야 했지만 솔직히 대형 마트를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 젊은 여성의 경우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입고 나온 옷이나 액세서리 등을 사는 풍경이 종종 목격됐다.
잠탄드룩(28·여)은 "한국제품은 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 하다"며 "특히 애프터 서비스가 다른 제품에 비해 뛰어나다"고 말했다.
몇몇 베트남 관광객은 한국화장품을 손꼽았다.
매장에서 한국화장품을 고르던 한 베트남 관광객은 "베트남에선 한국인 화장품이 단연 인기“라며 ”동양인 피부에 맞고 품질도 최고“라고 칭찬했다.
이번에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구매목록 순위는 화장품과 의류, 홍삼 제품 순이었다. 오히려 해외 명품 브랜드인 루이뷔통·샤넬 등은 이들의 구매목록에선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베트남관광객이 느끼는 불편은?=정작 자유쇼핑을 원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베트남 출국 전 이미 정해진 관광지 순례와 쇼핑매장에 들를 수 밖에 없는 빠듯한 일정 때문이다.
의사소통과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이들을 불편하게 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 돼 가이더가 없으면 곳곳에서 벙어리나 다름 없는 신세였다.
진옥란(65·여)씨는 “‘물 한잔 달라’는 말도 가이드를 통해 겨우 했고,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은 손·발짓으로 겨우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 관광객은 "숙소를 이용하는데 수건이 하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건을 필요로 해서 가이드를 깨울 수 없어 수건 한 장으로 세면을 해결했다“고 말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도 이들의 고충.
베트남 음식은 신맛·단맛·짠맛·매운맛 등 여러 맛이 동시에 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한국의 전골과 찌개는 그 맛이 아니었다.
여러 향신료를 사용해 맛을 내는 베트남의 음식과는 달리 한국 음식은 이들의 입맛을 끌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이번 베트남 관광객도 "생선요리는 괜찮았지만 전골의 경우 약간 싱거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한국, 제주를 찾은 초행자에게는 또 제주 음식의 오묘한 맛이 낯설기도 하다.
진옥란은 "10여 년 전 제주를 찾았다"며 "솔직히 맛을 잘 못 느끼겠다. 음식이 싱거워 조미료와 간장을 넣고 겨우 끼니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건 ‘좋아요’=열대지방에서 살던 그들이기에 제주의 기후는 예찬에 가까웠다.
이들은 이구동성, “4계절을 느낄 수 있는 건 축복”이라고 부러워했다.
특히 이들은 한라산 어리목 입구 등반로에 쌓인 눈을 보곤 감탄사를 연발했다.
젼웬옥진은 "제주를 찾아 4계절을 모두 본 것 같다"며 "너무 낭만적인 곳이다. 의사소통은 힘들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고 전했다.
고려홍삼은 예상대로 인기 구매물품이었다.
웬탄쥬(35)씨는 "고려홍삼은 품질이 좋아서 많이 샀다"며 "가족들에게 나눠 주려고 홍삼을 가장 많이 샀다"고 말했다.
해녀가 물질하는 낯선 풍경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웬반딘(72)씨는 "여행하면서 해녀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에 대한 질문에 잠 탄 드룩은 "베트남도 하롱베이가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 됐다. 제주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바다는 단연 으뜸"이라고 평했다.
이들은 23일 오후 9시 제주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며 본국으로 돌아갔다.